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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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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는 용감한 사람이다. 그의 기사를 검색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87년 대전에서 출생.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글을 쓰면서 살았다. 왜 고등학교를 때려 치웠는지는 모르겠다. 학폭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는지, 하도 책을 많이 읽어 인생무상을 조기에 알게 됐는지, 공부 수준이 따분했거나 시시해 보였거나 자기한테 전혀 필요 없는 것들만 가르친다고 여겼든지. 하긴 이런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찌감치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일찌감치 자기 인생을 글 쓰는 데다 묶어버렸다. 그리다가 스물세 살 때 검정고시를 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들어가 서사창작을 전공, 졸업하기 전인 2013년 스물여섯 살에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다. 근데 언제 졸업했는 지는 모르겠다. 예종이란 곳이 나이 많은 만학도가 워낙 많은 곳이고, 재학 연수도 일반 대학처럼 딱 입학해 4년 후에 졸업하는 곳도 아니라서(이이가 다닐 때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 시절엔 확실히 그랬다). 하여간 2017년 학기까지 마치고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2017년에 신동엽문학상, 2020년 문지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아 필명을 드높였다. 이 책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 두번째로 실린 <초파리 돌보기>가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21년 12월에 책을 찍은 문학과지성사가 화들짝 놀라서 즉시 연두색 스티커를 만들어 책 앞표지마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수록”이 들어 있다고 알렸다. 젊은작가상은 문학동네에서 주는 거라 미리 알지 못해서 그랬을 거다.
언제부터 작가들의 바이오는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도 이해하겠다. 그럼에도 굳이 작가들의 개인사를 좀 알고 싶은 것은, 작품 속에 자주 작가의 삶이 용해되어 있어서 작품 속 어떤 장면이 소위 ‘자전적’ 이야기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었거나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들의 경우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막 가져오는데, 활동중인 사람들의 경우엔 조심스럽다. 그래서 점점 작가 소개를 줄이고 있는 것. 근데 오늘은 좀 길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벌써 닷새 이상이 흘렀다. 특히 단편집의 경우에 며칠만 지나가도 스토리가 머리 속에서 막 뭉개져 제대로 된 독후감을 쓰기가 난감하다. 이럴 때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임솔아가 살아온 세월이 소설만큼, 또는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을 수 있어서 좀 길게 썼다. 나쁜 의도는 전혀 없으니 작가 본인이나 주변인이 이 글을 읽어도 넓게 양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싫으면 (비밀)댓글로 귀띔해주시고.
소설집, 재미있게 읽었다. 읽고나서 곧바로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기록했다. 단편소설집에 별 넷이면 내가 내리는 거의 최상의 평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 읽을 당시, 읽은 후의 ‘느낌’ 말고 지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인 <초파리 돌보기>는 생각나지만, 닷새 전엔 처음에 실린 <그만 두는 사람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책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 홍성희의 해설을 컨닝해 비슷하게 옮길 수도 없잖은가 말이지.
헛소리를 좀 하자면, 왜 그간 독후감을 쓰지 못했을까? 오늘 일 때문이었다. 아침 아홉시 반에 예약하고 치과 가서 어금니 뽑았다. 전에 신경치료 한 건데 치은염인지 치주염인지 하여간 잇몸이 점점 내려앉아 음식물을 전혀 씹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뽑고, 임플란트를 하거나 앞뒤 이로 연결시키는 브리지를 하거나 나중에 결정해야 한다. 이를 뽑으면 술 못 마시잖아? 그래서 강제로 못 마시기 전에 얼른얼른 듬뿍 마셔 두느라고 어떻게 하다 보니 날마다 천국이었다. 생각을 좀 해보셔. 독후감 쓰는 거 하고 술 마시는 거 하고, 뭐가 중헌디? 당연한 이야기 아녀?
나는 자주 말했다. 요즘 우리 소설은 한 배에서 나온 씨 다른 형제 자매 같다고. 한 번 읽고 이런 느낌이 드는 작가의 책은 다시 찾지 않는다. 주로 섬세한 감각으로 호소하는 작가들의 경우가 이 부류에 든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읽은 박민정 독후감에서도 똑 같은 말을 했구나. 임솔아도 이들 같지 않아서 좋다. 맞다. 내가 우리 소설 읽기를 게을리해서 그렇지 좋은 작가는 늘 새로 등장한다.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돌입하는 임솔아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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