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리:플레이
이은용 지음 / 제철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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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정보 없이 책을 골랐다. 읽고 나서 독후감 쓰려니 난처해진다. 과하게 우울하다. 아빌리파이정, 프로작, 자나팜, 로라제팜, 스탈녹스, 뉴프람, 리탄. 모두 우울증 치료제. 이 책 말고 다른 소설에서도 들어본 약물들이다. 그나마 진통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은용은 1992년에 나서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19년에 데뷔했으며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백상연극상을 받았으나 2021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아주 오래 전에 예종 연극원 출신 트렌스젠더가 신문에 나온 적이 있다고 기억한다. 가족의 이해와 지원으로 수술을 받아 여성의 삶을 시작했다는데 이이는 아닌 거 같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감안하면 전혀 아닐 것이다. 이은용의 생전 사진을 구했으나, 그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예가 아닌 것 같아 아예 저장하지 않았다.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학교 5년인가 6년 선배가 있었다. 철학을 전공한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척추후만증이 있었다. 지금은 멸칭이 된 질환으로 당시에는 꼽추라고 불렀다. 대기업 공채에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일곱 명 뽑는 최종 면접 응시자 여덟 명 가운데 유일하게 낙방했다. 외모도 예쁘장하게 잘 생겼지만 그렇게 됐다. 연애도 했다. 결혼하려고 여자 집에 갔더니 장모 후보자께서 한 말씀하셨다. 자네가 똑똑하고 잘 생기고 품성 좋은 남자라는 건 아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아가씨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내 딸인가? 여사님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단다. 선배는 이별을 택했다. 조금씩 망가졌고, 내가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 연락이 끊겼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극작가 이은용이 내 자식뻘이다. M to F 트랜스젠더이다. 내가 이이의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네 책임이 아니다, 이랬을 거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겠나 싶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렇다.

  부모가 이렇거늘 당사자라면 어땠을까? 이은용은 그걸 연극으로 말했다. 시스젠더에 포위된 삶을 살며 받아야 하는 차별 행위와 격리의 눈길을 견디다가, 익숙해지다가, 결국 우울의 벼랑 위에 서게 되는 삶. 시스젠더의 일원으로 함부로 이들의 감정을 여기에 쓸 수 없다. 예가 아닐 듯해서이지만, 이것조차 다른 의미의 차별일지도 모른다. 사는 게 그렇다. 쉬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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