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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제도 ㅣ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0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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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uko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출판사 은행나무의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가 다와다의 삼부작을 모두 출간한 것이 의외다. 다와다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올라서 만약 정말로 노벨상을 받게 되면 졸지에 대박을 칠 것 같아서? 설마. 하긴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니 모를 일이다.
독자는 이 <태양제도>를 읽기 전에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에 어른거리는>을 먼저 읽어두는 것이 좋다. 좋아도 훨씬 좋다. 아니면 이들이 왜 Hiruko와 Susanoo의 모국으로 떠나는 여정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Hiruko와 Susanoo는 일본 창세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다. 신화 속 히루코는 蛭子, 거머리다. 일본 열도를 만든 여신 이자나미가 남신이자 오라비이기도 한 이자나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동침하자고 꼬여 낳은 딸. 이 때문에 1번 신의 노여움을 타 허약하고 살이 거머리처럼 흐물흐물한 육체를 지녀 부모가 갈대로 만든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떠내려 보낸다. 모세 같지? 이게 중요한 포인트. 작중 Hiruko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북유럽에 와 공부를 하는 동안 모국, 누가 봐도 일본이 틀림없는 나라는 쿠릴열도에서 이탈해 바다 속으로 사라졌거나 태평양 중심 쪽으로 확 이동해 버렸거나, 재수 없이 한 방에 일본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바다로 흘러온 거대한 쓰레기 섬에 새롭게 정착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원래대로 있는데 Hiruko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모국에서 멀리 떠났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Hiruko의 신세를 다와다 요코는 신화 속에 버려진 거머리 여신 히루코와 병치하고 있다.
Hiruko는 언어를 공부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하기 힘들어 자기 스스로 ‘판스카’라고 하는 언어를 만들어 쓰고 있는데, 이 판스카를 쓰면 스칸디나비아 사람들과 상당한 수준의 대화가 통한다고 주장한다. 뭐 전생에 여신이었으니까. 이 판스카어 때문에 덴마크의 젊은 언어학자 크누트와 친해지고 드디어 3부에서는 같은 침대에 오른다. 기대하지 마시라, 하나도 안 야하다. Hiruko가 유럽에서 모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는다. 프랑스 아를에서 스시 요리점을 동업했다는 나이 든 남자. 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독일에 유학하고 있으며 지금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이 진행중인 인도인 아카슈. 여행중에 만난 그린란드 출신 에스키모(이누이트족이라는 말보다 에스키모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나누크는 독일에 공부하러 왔다가 나이 많은 여자 노라와 맺어졌지만 이제 정이 떨어진 상태. 이들과 함께 Susanoo를 찾아가는 것이 1부. 실어증에 걸린 Susanoo의 치료를 위하여 덴마크 병원까지 각자 알아서 출발해 도착하고, 병원에서 엉뚱하게 나누크의 성격만 개조하고는 Hiruko와 Susanoo의 모국으로 다 함께 떠나기로 하는 것이 2부이다.
내 경우엔 1부 <지구에 아로새겨진>까지 읽고 말았으면 더 좋았겠다. 하여간 Hiruko와 Susanoo의 모국을 향해 떠나기로 결정한 이들은 2부 마지막에 배를 타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대신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도 경유하는 항로를 타기로 한다. 좀 미친 거 같지? 3부에 나온다. 왜 이런 미친 결정을 했는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중동의 이슬람 국가와 해적으로 유명한 수단, 소말리아를 스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언제 어디서 폭격을 맞거나 납치를 당할 지 누가 아느냐는 것. 그렇다고 희망봉으로 둘러가도 서부 아프리카를 둘러싼 지역에서 해적들의 습격이 없는 게 아니라 이 역시 안심할 수 없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할까? 거기에 대해서 3부는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배를 타고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하여 타게 된 네덜란드 국적선 ‘발트의 빛’ 호는 선명船名처럼 코펜하겐을 떠나 독일의 뤼겐 섬, 폴란드의 슈체친과 그단스크,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우리가 쾨니히스베르크라고 알고 있는 옛 프러시아 영토), 라트비아의 리가,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러시아 본토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핀란드의 헬싱키로 향한다. 도대체 발트해에서 어떻게 해로로 일본에 가겠다는 거야?
작품 자체가 신화 속 등장인물이 되살아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히루코는 Hiruko로 변했지만 여전히 몸이 흐물흐물해져 갈대로 만든 배에 태워 멀리 흘려보낸, 쉽게 말해 버려진 딸이어서 Hiruko의 유럽 유학은 배우기 위하여 다른 나라에 머무는 유留가 아니라 버릴 목적으로 흘린 유流학이었던 셈이다. 언어를 공부하는 Hiruko가 애타게 찾은 Susanoo는 신화 속에서 히루코의 동생 스사노오이며, 무시무시한 완력과 잔인한 성격을 지닌 신으로 피륙 짜는 여인을 위협하다가 와중에 베틀의 뾰족한 곳으로 여인의 음부를 찔러 죽게 했다. 이 소설을 이성에 입각해 읽으면 Susanoo는 못해도 90살은 되어야 하지만 시간도, 환경도, 태양제도라고 일컫는 섬나라도 전부 비정상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편이 좋다. 작품의 전제 역시, 세상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씩, 하나씩 전부 이상 작동을 하는 바람에 세슘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이 몽땅 바다에 스며들어 먹을 수 있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으며,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온난화가 극에 달해 육지 면적도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등장인물 나누크의 고향 그린란드 역시 빙하가 거의 몽땅 녹아버려 주민들은 사냥 대신 농사를 짓는 상태인데, 그건 1부에서만 그런 모양이라서 발트해 주변의 항구도시인 뤼겐 섬, 슈체친과 그단스크, 칼리닌그라드, 리가, 탈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도 손상없이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고, 생선요리도 다양하게 잘들 먹는다. 뭐 그렇다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태양제도로 가려고 발트해 연락선을 탄 거야?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갔다가 거기서 다와다 요코가 20대 초반 대학 다닐 때 타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배로 갈아타야 하건만, Hiruko와 Susanoo는 국적이 없으니 당연히 여권이 없고, 여권이 없으니 비자도 없고, 비자가 없으면 러시아 영토를 한 발자국도 밟을 수 없다. 얘네들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흥분하지 말라. 신화 속 갓난 아기 히루코는 갈대로 만든 배에 태워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멀고 먼 곳으로 버려졌다. 근데 Hiruko가 무사히 모국으로 돌아가면 거머리 아기 히루코 마음이 좋지는 않겠지? 히루코가 어디로 가든지 자기 발을 딛고 선 곳이 자기 집이었을 터. Hiruko도 러시아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가 집이라고 선언한다. 그걸로 끝이다.
<지구에 아로새겨진> 한 편만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책 속에는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작가의 언어를 향한 그리움에 관한 시도로 읽는다면 꽤 근사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독일에서 무수한 폐차가 나오는데 그걸 아프리카에 수출한단다. 아프리카로 가면 폐차의 부품을 떼어내 잘 굴러가는 승용차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얼핏 생각하면 좋은 일 아니냐고 하지만 이렇게 만든 차는 시동만 걸어도 불완전 연소한 매연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와 지구 온난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문제는 화석연료. 방사능 오염의 위험이 있는 원자력도 더 이상 가동하면 안 됨. 그러면 남은 것은 청정에너지. 당연히 문제가 있다. 비싸다. 하긴 아무리 비싸봐라, 한남동, 청담동, 성북동, 평창동 사람들은 여전히 빵빵하게 에어컨 돌리면서 산다. 죽어나는 건 그저 없는 사람들뿐. 나라 단위로 봐도 마찬가지. 이미 산업화가 막바지에 접어든 유럽, 아메리카, 동아시아 같은 곳에서는 비싸도 화석연료를 감축할 수 있겠지. 그러나 아직 기아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 개발 도상에 있는 나라는 그럴 여력이 없는데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라고? 자기들은 첨단으로 발전하는 동안 실컷, 몇 백년 동안 질리도록 석유와 석탄을 태운 건 지나간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돈 없고 힘없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는 인류가 망할 때까지 이렇게 살라고?
이건 해결할 수 있다. 소위 선진국이 후진국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정도로 대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 그런데 여기에 더도 아니고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선진국이 미쳤냐, 그걸 공짜로 해주게. 그럴 일 없다. 그러면서 없는 사람, 없는 나라가 부르주아, 있는 나라가 수백 년 간 했던 것처럼 싼 연료를 사용해서 발전 좀 해보려는데 왜 하라, 마라를 이야기하느냐 말이지. 다와다 요코의 Hiruko 3부작에 나오는 것처럼 바다에 거대한 쓰레기 섬이 생기고 바다 생물은 이곳에서 유출된 미세 플라스틱으로 멸종을 하거나, 차례차례 폭발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물질이 스며들어 멸종을 하거나, 부지런히 배출한 화석연료 가스로 인해 평균온도가 한 10도 올라 남북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지구가 아니라 해구가 되어 인류마저 멸종을 하는 단계까지 가야 비로소, 억지로, 그나마 각성을 할 거 같다. 말발타살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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