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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 1916년 공쿠르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5
앙리 바르뷔스 지음, 김웅권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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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바르뷔스의 책이 번역해 나왔다고? 6년 전 이이의 <지옥>을 흥미롭게 읽었으나 <지옥> 말고 다른 작품이 아직 소개되지 않아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는 위스망스도, 폰 카이절링도, 스트린베리도 읽기 전이라 기묘하게 세기말적이고 유미주의적이기도 한 바르뷔스의 작품이 깊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휴대폰에 <포화> 발간 알림을 보았을 때는 <포화>가 <지옥>과는 아주 상반된 성향의 작품이란 것을 몰랐다. 전혀 몰랐다. 새롭게 <지옥> 독후감을 읽어보니 역자 오현우가 “바르뷔스는 에밀 졸라를 계승한 극명한 사실주의풍의 작품 세계로 프랑스 문학사에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라고 쓴 것은 인용했었다. 당시에 <지옥>은 에밀 졸라 류의 사실주의/자연주의와 완전히 다른 지점에 있는데 왜 난데없이 졸라를 가져와 비교를 했을까, 궁금했나 보다. 그런데 <포화>를 읽어보니 가히 졸라와 비교한 것이 이유가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대표적 졸라 시리즈인 루공-마카르 총서의 첫번째 작품 <루공가의 행운>이어서 두말할 것 없이 비교할 수 있는 바, 앙리 바르뷔스가 <포화>의 20장에서 묘사한 1차 세계대전의 돌격 장면은, 말 그대로 무조건 적인, 인간이 아니라 짐승 수준이라서 졸라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인간짐승’의 단계로 내려선 미친 인간 군상이 눈이 뒤집혀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생생한 장면을 그렸다. 이 정도면 졸라를 계승했다고 해도 언짢지 않을 수준이라 인정할 수밖에. 졸라도 작품당 최소 한 장면은 인간에 의한 무지막지한 질주의 장면을 묘사한 것과 같이.
신학 학위를 가진 개신교도이자 저널리스트, 연극 컬럼니스트 프랑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파리 인근 아니에르-쉬르-센에서 태어난 앙리 바르뷔스는, 어릴 때부터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극도의 진보, 극좌 편향을 지닌 시인, 소설가로 활동했다. 서른다섯 살 때인 1908년에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옆방에 들어온 하녀, 레즈비언 커플, 사촌 커플, 성인 남녀 커플의 관계를 훔쳐보는 세기말적이고 유미적인 <지옥>을 읽어보면, 이이가 1918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흥분한 유럽의 좌 성향 인텔리겐치아들이 대거 소비에트로 몰려갈 때 이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가서 소련 여성과 결혼하고 볼셰비키에 입당한 것이 언뜻 이해가지 않을 수 있다. 유미주의야말로 볼셰비키라면 당장 두드러기를 유발시킨 알레르기 인자가 아닌가 말이지. 그러나 하여간 그랬다. 그 당시 소련으로 간 유럽 청년들의 상당수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한 반면 바르뷔스는 이후 소련과 프랑스를 왔다갔다 하며 지낸 것으로 보이는데(책의 연표에도, 위키피디아 영어판, 프랑스어판에도 나오지 않는다. 프랑스어 판은 구글 번역한 우리글로 읽었다.), 1923년에는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한 최초의 문학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공산주의, 공산주의면 무조건 몽땅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탈을 쓴 (볼셰비키를 비롯한 권력 독점) 독재형 빨갱이 치하에서 문학 등 예술에 복무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 가당치 않은 일이라 교조적인 뻔한 글(<러시아>, <스탈린 전기> 등)을 생산하다가 1935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7차 인터내셔널, 이때는 코민테른이라 불렸겠지만, 하여간 이때 폐렴에 걸려 숟가락 놨으니 향년 61세.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8월에 시작해서 1918년 빼빼로데이 11월 11일에 끝난다. 앙리 바르뷔스는 아빠한테 진보 좌파적 교육을 골수로 받아, 당시 사회주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바르뷔스 역시 전쟁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그룹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놀랍게도 정말로 전쟁이 벌어지자 무려 마흔한 살의 나이로 자원 입대, 그것도 사병으로 입대해 2년 동안 최전방을 누빈 역전의 노병이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기념비적인 대하소설 <티보가의 사람들>을 보면 진보 청년들의 1차대전 개전 직전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는데 주인공 자크 티보처럼 적극적 반전 입장에 있던 사회주의적 청년 말고 파리에 몰려 있던 나이롱 사회주의자들은 바르뷔스처럼 진짜 전쟁이 터지니까 제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가 서둘러 자원 입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티보가의 사람들>, 이거 명작이다. 꼴랑 1부 “회색 노트”만 줄창 읽지 말고 전권을 통독하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하여간 최전선에 투입된 바르뷔스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자주 부상과 후송을 반복했던 모양이다. 책에서도 나오는 조치 가운데 하나로 나이 들어 무릎 쑤시는 꼰대 병사들한테 조금 수월한 임무를 주게 하는 조치가 떨어져 1916년까지 일선에서 대치하다가 1917년 6월에 제대했다. 그런데 이 작품 <포화>를 발표한 것이 1916년. 아직 제대하기 전의 일이다. 독자는 이제부터 독자의 권리로 추리를 시작한다. 아직 제대를 하지 않고 일선 부대 소속이면서 본문만 48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다른 곳을 모르겠고 눈과 손목과 손가락은 부상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야전병원의 침상 위에 있을 것. 바르뷔스는 전쟁 중에도 수첩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전투 장면을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걸 적절하게 짜깁기해 소설형식으로 1916년에 신문에 발표하고, 발표가 끝난 후에 한 권의 단행본으로 찍었는데 그게 1916년 공쿠르 상을 받았다.
그래서 <포화>는 마치 르포르타주와 소설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실제 전쟁은 우리의 <고지전>이나 헐리우드 판 <1917>처럼 늘 전투가 벌어지는 건 아니고, 오랜 대기와 고생스러운 행군, 그리고 며칠 동안, 길어봤자 1박2일이나 2박3일동안, 물론 잠은 한숨도 안 자거나 못 자면서, 진짜로 생과 사를 가르고, 당장 총알이 내 심장을 꿰뚫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세로로 두 쪽이 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처음엔 밀려서 뛰어나가다가 나중에 눈이 휙 돌아가는 바람에 거의 반쯤 미친 상태로 발악하는 심정이 아니면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악을 쓰며 뛰다가, 반 이상은 다행스럽게도 순식간에 죽어버리거나 신체의 상당한 부분이 절단당했음에도 아직 죽으려면 두어 시간은 남은 상태가 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저 달려가는 행위를 일컫는다. 살아남는 것은 용감해서도 아니고, 비겁해서도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아 포탄의 파편이나 기관총, 소총이 자기 몸을 관통하지 않고 그냥 비껴 지나간 덕택일 뿐이다. 병사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비단 같은 사람일 뿐으로, 내가 전장에 나온 이유와 정확하게 같은 이유로 우연히 저편에서 나를 표적으로 하고 있는 적군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도 적이 될 수 있으니, 이 자연이라는 적은, 나와 적군 모두에게 공통된 적이며, 정말로 피할 수도 없고, 그나마 조금의 인정도 없는 신적인 적이라서 가공할 폭력을 동반하여 이 모든 쇠조각의 폭포와 자연의 폭력을 다만 운이 좋아 명을 보전한 대가로 며칠 간의 휴가가 주어기도 하건만, 그 휴가라는 것이, 전쟁과 전투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후방에 계신 신사 숙녀들이 낭만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처럼 허망함이라니. 심지어 어렵게 휴가 받아 찾아 가 고향집 창문을 통해 바라본 조금 여위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의 옆 자리에 앉은 내가 아닌 병사, 나 말고 다른 수컷을 훔쳐보는 심정. 다 그런 거지. 다 그런 거야. 그런 걸 직접 목격하지 못하는 행운을 기대할 수밖에.
한 노병은 수색 임무 중에 머지않은 곳에서 포탄이 터져 당분간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고, 두 귀 다 거의 절단된 상태에서, 완전히 잘라지지 않아 너덜너덜하게 간신히 매달려 있다. 이게 웬 장땡이야! 이제 자기는 틀림없이 후송될 것이고, 야전병원을 거쳐 후방으로 보내져 수술을 받은 다음에, 조금 나이가 들긴 했겠지만 아직 어여쁜 티가 가시지 않은 간호사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적어도 석 달 동안 입원을 해야 할 것이고, 퇴원을 해도 위로 휴가가 적어도 세 주일 또는 한 달 이상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노병한테는 전쟁이 끝난 거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번 전투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죽는 건 더더욱 아니며,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할지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제발 경미한 장애만 가질 정도의 부상만 입게 해주소서. 저도 병사로 낯짝이 있지, 아주 경미해서 얼핏 보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경미한 장애는 기대도 하지 않겠으니 그저 의병제대와 아주 적은 금액의 상이연금을 받게만 해준다면 메피스토펠레와의 계약서에 피를 묻혀 서명이라도 하겠나이다.
전쟁 장면을 나열해서 썼지만 <포화>는 기본적으로 반전 소설이다. 앞부분은 늘 읽었던 그저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이 르포 형식으로 나열되는 느낌이어서 지루했다가,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다가 하는, 하여간 그런 상태였는데, 중간 부분부터 진짜 전투 예비단계로 접어들면서 관심이 집중되며, 앞에서 이야기한 20장 “포화” 작품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의 챕터의 자연주의적 세밀화가 등장할 때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전쟁소설보다 리얼한, 심지어 졸라의 <패주>나 적을 만나 사격을 하는 도중에도 바지에 똥만 싸 갈기는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보다 훨씬 리얼한 전쟁의 비참함을 그대로 노출시킨 장면은, 혀 끝까지 포르노라고 하고 싶었다가 꿀꺽 다시 삼켰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건 작가가 직접 전쟁, 전투를 경험하고 본 것과 일부 들은 것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추악하지 않은 전쟁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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