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의 값 : 잎이와 EP 사이 - 백승연 희곡 반올림 42
백승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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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연은)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즈음해서 처음 써 본 희곡이 덜컥 연세춘추 오화섭 문학상에 당선되는 바람에 그때부터 글 동네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방송국, 영화판, 신문사, 잡지사,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며 잡다한 글쓰기를 계속하다 본격적으로 문학에 입문한 지는 얼마 안 됐다.”라고 하는데, 이게 언제 업데이트한 정보인지 모르겠다. 환갑이 넘은 작가이니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꽤 됐다.”라고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2005년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에서 아동문학 부문 장원을 한 적이 있다. 책방에 작품을 검색해보면 단행본 두 권, 공저 한 권이 뜬다. 청소년과 아동문학에 전념하는 거 같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졸업을 앞두고 한 번 써본 희곡을 투고했는데 이게 학보사 주최이긴 하지만 문학상을 받았으면, 그거 참, 고민했겠다. 비록 학창시절 내내 문과대학을 기웃거리며 보냈다고 해도 졸업 후 직업 선택 같은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거 같다. 속내야 모르겠지만 이이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야 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니까 사회의 첫발은 문학이 아니었을 듯. 그래도 언젠가는, 하면서 계속 꿈을 키웠겠지. 그러다가 2007년에 동화 <한눈팔기 대장, 지우>를 출간하고, 청소년용 단편소설 <잎이와 EP 사이>를 출판사에 투고했다가, 출판사로부터 장편이나 본격적인 단편으로 다시 써보라고 권유를 받았다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2018년이 되었을 때야 백승연은 그걸 희곡으로 만든 <함수의 값: 잎이와 EP 사이>를 세상에 보였으니 세월도 무심하지 극작가는 어느새 54세가 되었구나. 또 6년의 세월이 더 흐른 다음에 한 독자의 눈에 띄어 읽혔다.


  책가게의 작가소개 끝 무렵에 “요즘은 희곡과 돌, 나무, 새 그리고 또다시 수학에 눈을 반짝이며 지내고 있다.”라고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요즘엔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치는 모양이지만, 방정식이 나오고 미지수 x, y, z가 새로이 등장하는데, 이 알파벳들이 그동안 끝도 없이 고생시키던 덧셈과 뺄셈, 곱셈의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은혜로운 혜택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수학적으로 날 샌 거다. 그때부터 수학은 실질적인 삶과 영영 이별을 하고 누가누가 더 머리가 좋은 지 단기필마의 검법을 다루기 시작한다. 나이 쉰이 넘어 다시 수학이라는 두뇌경연의 무대에 뛰어들다니 놀랍기도 하다. 작가가 취미로 수학을 하는지 무슨 사연이 있어 본격적으로 수학을 공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에는 취미생활로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간이 저 17세기 프랑스 사람 피에르 드 페르마.

  책의 제목으로 “함수의 값”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극 중에 수학 강의가 등장하는 건 아니고, 함수가 수학의 정밀함이라는 이상세계를 설명하는 데 가장 수월하다고 여긴 듯하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윤이수가 이 수학의 이상세계, 오직 딱 하나, 순정한 한 점, 딱 한 곳 말고는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벼랑 끝 속에 살고 있다. 수학 말고는 다른 것엔 조금의 관심도 없는 아이. 당연히 이수의 지난 시간 속에 여러 일이 있어서 지금의 이수가 생겼을 것이고, 작품은 그것을 쫓는다. 네 살 무렵 이수가 아닌 은표라는 이름이었을 때, 자기가 만든 레고 블록 성 속에 자그마한 초록 인형을 한 인격체 삼아, 이름을 ‘잎이’라고 했다. 은표의 어린 시절에 아주 드물게 친절했던 놀이교구선생은 ‘잎이’를 알파벳으로 EP라고 하자고 한 적이 있어서 함수의 값이 잎이와 EP 사이가 되었을까? 하여간 그렇다. 혼자 레고 블록 성 속의 잎이와 놀던 때, 옆방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지금 당장 도장 찍고 나가! 돌이킬 수 없는 부부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엄마는 나이는 좀 들었지만 돈은 무지하게 많은 남자와 얽혀 재혼을 했고, 은표도 새로이 윤이수가 되었으며, 수학특기생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최고 명문의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자사고의 여학생 기숙사에서 만난 룸메이트 강서인. 이 아이는 시골에서 기차 타고 올라온 이른바 ‘사배자.’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검색해보니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등록금 비싸기로 악명이 높고, 그렇다고 돈만 많아서 들어갈 수도 없는 자사고이지만 나름대로 사회에 어필하기 위해 소수 학생을 사배자 전형으로 뽑기도 하는 모양이다. 서인이 이 줄을 타고 입학했으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온갖 학원을 섭렵하고,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를 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게 됐으니 이게 경쟁이 되겠어? 입학하기 전에 기숙사 입소할 때부터 잔뜩 주눅이 든 상태인데, 같은 방 아이는 오직 수학만 풀고 있으니 점입가경이었겠지. 이 자사고라는 곳이, 나는 말로만 들어봤는데, 어마어마한 모양이다. 학생들 본인이나 극을 달리는 엄마들의 치마바람. 나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 모르지만 <스카이 캐슬>이란 거 있었다고? 이 속에도 당연히 소외자들이 있을 터, 이들이 바로 이수와 서인이다.

  이수는 그렇다고 치고, 시골에서는 동네 신동이었지만 자사고에 들어와보니 이건 애초에 어디다 대 볼 수도 없이 처지는 수준. 그러나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과 동네 희망의 상징인 서인은 이 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비집고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갈등은 애초에 처음부터 둘의 관계가 시작할 때부터 존재했으니 피할 수도 없었을 것. 세상 모든 일이 시작부터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라 퇴로를 확보하는 게 삶의 지혜이겠지만 아직 미숙한 청소년이니 기대할 수 없겠지. 그리하여 사건이 터진다.


  무대는 앞에 말한 사건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무대를 둘로 나누어 한편은 과거, 한편은 현재. 과거와 현재를 통과하는 곳에 교복 상의가 있어서 과거를 갈 때는 재킷을 입고, 현재로 올 때는 벗어 흰 티셔츠 차림이 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다니는 인물 ‘잎이.’ 잎이는 주인공 이수의 페르소나로 생각하면 된다.

  희곡을 읽을 때 흥미를 돋우는 것은, 독자마다 다 자기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나도 마찬가지다. 실제 무대에서는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머리 속에서는 내 마음대로다. 1층과 2층으로 나눌 수도 있고, 해변과 바닷속으로 가를 수도 있고, 지구별과 트리팔마도어 행성으로 구별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연상해가며 작품을 읽고 있는데, 난데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 분량이 현재보다 과하게 많은 거 아냐? 만약 진짜 무대에 올려 무대를 반으로 나누면 한쪽에 앉은 관객들은 목 좀 아프겠는 걸?

  그럴 수밖에. 많은 문제들이, 주로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더 그런 거 같은데, 과거 속에 숨겨져 있으니 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옛 일을 추적하는 장면이 더 많겠지. 내가 만약 진짜 무대의 연출자라면 어떻게 처리할까? 조명 색깔을 바꾸어 형광등이면 현재, 백열등이면 과거, 뭐 이런 식도 괜찮을 거 같고, 극작가 지문대로 교복 재킷을 입으면 과거, 흰 티셔츠면 현재, 이것만 가지고도 좋을 거 같다. 그럼 과거와 현재 어느 경우라도 무대 전체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나만의 무대 꾸미기. 그럴 듯하지 않으셔? 그럴 듯하면, 당신도 한 번 해보지 않으시겠나? 다만 오직 대학입학과 좋은 직장, 고수익 또는 고 연봉을 위한 스펙 쌓는 모습을, 그것도 젊디젊은 청소년들이 그러는 꼴을 보는 게,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하여간 나는 안타깝고, 불쌍하고, 그 학생들의 어미 아비들이 역겹고 그랬다. 그냥 살라고 하면 안 되나? 내가 내 새끼들한테 이 자사고 학생들의 부모처럼 해주지 못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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