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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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스 페일리(1922~2007)는 우크라이나 출신 사회주의자 유대인 이민 부부 굿사이드 집안의 늦둥이 막내딸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언어가 좀 복잡하다. 우크라이나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했고, 그쪽 유대인이라 당연히 이디시어도 썼으며, 사는 곳이 미국이니 영어는 저절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언어사용만 복잡한 게 아니라서, 이이의 커리어를 보면, 먼저 시인으로 시집을 출간했고, 이어서 평생 세 권의 단편집만 낸 단편소설 전문 작가이며,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강사를 지냈으니 교육자이기도 하고, 1950년대에는 반핵운동, 이후에 반베트남전, 반이라크전 등 조금 진하게 반전운동에 참여했다가 며칠이기는 하지만 철창에 갇혀 나랏밥 먹은 전력도 있다. 당연히 페미니스트로 스스로 임신중단을 경험했으며 임신중단권을 계속 주장했다. 원래 이름은 그레이스 굿사이드. 열아홉 살 때 영화 카메라맨 제스 페일리와 결혼해 노라와 대니를 낳았으나 이혼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그랬는지 이후 굿사이드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페일리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84세에 유방암 치료를 받았지만 죽었다. 그 나이에 뭐하러 고생스럽게 치료를 받았는지.

  평생 세 권의 단편집과 몇 권의 시집만 내고도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단편소설을 위한 펜-멜러머드 상 등 숱하게 많은 상을 받았으니, 이만하면 작가/시인으로 한 평생 원 없이 살다 갔다고 봐도 좋겠다. 이 책의 서문 격으로 2007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같은 제목의 단편집을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개글 “그레이스 페일리의 중독적인 ‘씹는 맛’”으로 시작한다. 무라카미가 뉴욕에서 열린 페일리의 낭독회에 직접 참석해서 페일리를 만난 소감 등을 쓴 것인데, 원래 미국 단편소설을 지극하게 애정하는 무라카미답게 거의 열광적으로 페일리를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의 영향으로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지극히 의식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우익 편에서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가담해왔다. 또한 두 아들을 혼자 힘으로 길러낸 강인한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최근에는 페미니즘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p.6)

  이렇게 주장했다.

  와, 무라카미가 정말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 맞아? 유대인 정체성을 의식한 건 맞는데, 나머지는 다 틀렸다. 어떤 우익이 반핵, 반전 시위를 하고 낙태권 합법화를 주장하나? 페일리는 부모부터 사회주의자였으며, FBI는 이이를 공산주의자로 판단해 무려 30년 동안 그레이스 페일리 파일을 보관했다. 모르지, 2007년 앞뒤로 일본에서는 공산주의자를 우익이라고 불렀는지도. 두 아들? 49년생 노라가 대니의 누나니까 남매. 왜 유난을 떠느냐 하면, 서문에서 먼저 무라카미가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다 믿고 책을 읽었더니 읽으면서 “우익 운동가”가 이런 의견을 낼 수 있으니 미국이 참 다양한 나라이기는 한 모양이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은 게 웃겨서 그렇다. 무라카미 상, 나오기만 하면 영락없이 나를 웃겨줘. 고맙습니다.


  본문만 269쪽에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무라카미는 앞에서 인용한 서문 격의 잡문을 통해 “열성적인 독자는 그것을 소중하게 숙독하고 맛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는데, 질 좋은 오징어를 씹듯이 몇 번이고 곰곰이 맛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 (p.8~9) 라고 주장한다. 2007년에 번역했으니 원작이 미국에서 출판되고 30년이 넘은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그렇다는 말이다. “질 좋은 오징어 맛”이 이 책의 핵심이라는데, 나도 “씹는 맛”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질 좋은 오징어 맛”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일본산 오징어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래봤자 고릿고릿한 냄새의 오징어 조직이 이 사이에 틀림없이 박혀 있을 터. 내가 말하는 “씹는 맛”은 말 그대로 “씹는” 재미. “씹다.” 영어로 chewing. 이게 내 의견이다.

  첫번째 작품 <소망>에서 화자는 새로 지은 도서관 계단에 앉아 있다가 전남편을 만난다. 27년동안 같이 살다가 헤어진,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속 좁은 말을 하는 버릇이 있는 남자. 말들이 막힌 관을 뚫는 배관공의 와이어처럼 정말 좁다랗게 생겨서 귓속을 파고 들어 목을 타고 거의 심장 부근까지 와 닿곤 했던 쪼잔한 남자. ‘나’는 이디스 워튼이 쓴 두 권의 책 <환희의 집>과 <아이들>을 빌렸다. 50년 전에 뉴욕에서 살던 사람이 27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책. 그레이스 페일리는 카메라맨 제스 페일리와 25년을 살고 5년 별거한 후, 30년만에 이혼했다. 화자는, 그리고 작가 자신도 역시 지금 남편이든 전남편이든 한 남자하고만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았고, 한 평생이란 것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으며, 그래서 그랬나? 한 남자의 됨됨이를 도무지 알지 못했다. 페일리는 몰랐겠지. 전남편도 함께 사는 동안 한 여자의 됨됨이를 도무지 알지 못했다는 걸. 그래, 그래. 결혼생활이란 건 평생을 살아도 서로 됨됨이를 알지 못하는 것들이 그냥 부비면서, 그러다가 나중엔 기대면서 사는 거야. 아니면 그냥 부비다가 끝나버리거나.

  이러다가 딱 결론에 다다른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2년 전에 심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이날, 오늘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걸 발견한 후, 누가 나를 평가하려 할 때 자신은 플라타너스 나무와 달리 뭔가 절절하게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방금 빌린 책 두 권을 반납하기로 결정한다.

  원래는 <환락의 집>이 별로 재미가 없었음에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어보려 했던 것이지만 그냥 때려치우고 말았다는 것. 즉, 지금까지의 것들을 그냥 씹어버린 거다. 내가 말하는 씹는 맛이란 이런 것. 무라카미는 이것을 질 좋은 오징어 맛이라 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표제작인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이었다. 주인공은 알렉산드라. 병원에 입원해 임종의 침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종종 들르는 작가 여사님. 아마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 이이에게 애인이 생긴다.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가느라 탄 택시의 운전수, 데니스. 데니스는 그룹에서 보컬로 활약하기도 하고, 몇 사람이 뭉쳐 몇 명의 아이들을 공동으로 키우기도 하는 좀 별난 자유주의자이고 가끔가다가 입이 험해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진짜 작가의 아버지 아이작 굿사이드 선생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먹고 살기에도 팍팍한 와중에 의과대학을 마쳐 의사로, 배고픈 이민자에서 한 방에 미국 중산층으로 점프한 이력을 지녔다. 젊었을 때 숱한 문학작품을 읽어 그쪽으로도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때? 작가 직업의 알렉산드라 입장에서 거 참 골치 좀 아프겠지?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알렉산드라에게 딸이 지은 또는 생각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고, 딸이 이야기를 하니, 곰곰이 듣고 있다가 자기 주장을 죽 펼치면서 이야기를 자기 말대로 고쳐보란다. 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원을 모른 척하기도 그래서 그렇게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아이고, 저걸 어쩌나, 아무리 마흔이 넘었다고 해도 긴 장화 안 신고 (침대 위의)만리장성을 넘어가면 생기는 현상 있지? 글쎄, 있을 게 없는 거야. 그렇다고 데니스 손잡고 시청 호적계로 쪼르르 달려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이제 정말로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건데 알렉산드라는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안 알려드리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혹시 그냥 씹고 넘어가지 않을까? 혹시 그렇다는 말이다, 혹시.

  벌써 반백 년 전에 쓴 단편을 모은 책이다. 무라카미가 일본어로 번역한 지도 20년 가까이 흘렀다. 여전히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새롭게 눈이 번쩍 뜨이기를 바라는 건 조금 무리인 듯. 가끔 이런 작가들이 있는데, 실제보다 조금 과대 포장되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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