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페이지터너스
보리스 사빈코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빛소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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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스 빅토로비치 사빈코프. 복잡한 인물이다. 1879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바르샤바 지역 군사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생폭동 또는 학생 파업에 가담해 1899년에 퇴학당한 후 나중에 베를린과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했다. 일찌감치 사회주의 혁명에 뜻을 두어 숱하게 체포, 구금, 유배, 탈출을 반복한 그는 1904년 러시아제국 내무부장관 비체슬라프 폰 플레베와 1905년 모스크바 총독 새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왕자의 암살, 폭탄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세바스토폴 감옥에서 간수와 옷을 바꿔 입고 유유히 탈출에 성공한다고, 이때 대신 감방에 머문 간수가 사빈코프로 오인받아 교수형을 받았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오는데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여간 이 테러 이후 사회주의 혁명당 테러리즘 분과는 점점 힘을 잃었고 사실 테러의 필요성이나 지지도 현격하게 줄어든 상태였다. 탈옥 후 프랑스로 망명을 떠난 사빈코프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군에 입대했지만 1917년 2월 혁명 이후 급하게 러시아로 귀국했다. 1917년 2월 혁명, 율리우스력으로는 3월 8일에 발생한 혁명으로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러시아 공화국이 들어섰으나, 사실상 정부는 무주공산. 유럽 각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서로 권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하여 급거 귀국길에 올랐으며, 그 유명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봉인열차도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인데, 같은 기차를 타지는 않았지만 레닌, 트로츠키, 제르진스키와 동시에 러시아 땅을 다시 밟았다.

  1917년 러시아 공화국의 임시정부에서 남서부 (내전) 전선의 위원과 잠깐 전쟁부 차관보로 지내기도 한 사빈코프는 쿠데타에 가담한 혐의로 관직에서 떨려나가고 사회주의 혁명당에서도 퇴출당한다. 이후 10월 혁명을 거쳐 볼셰비키가 권력을 차지한 다음에는, 도무지 뜻을 같이 할 수 없는 볼셰비키에 저항하는 무장세력, “조국과 자유 수호 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건 엄연히 반혁명 세력으로 혁명의 대세를 무시한 대가로 조직은 와해되고 사빈코프도 다시 유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폴란드와 소련의 전쟁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폴란드 정부에 의하여 다시 추방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계속했다. 역시 정점을 찍는 그의 뻘짓은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에 가담해 볼셰비키에 맞서 싸웠다는 점일 것이다. 볼셰비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도 명색이 테러리즘을 주장하고 실천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선봉에 섰던 아나키즘의 대표적 인물이 어찌하여 러시아 부르주아 잔재들과 뜻을 합칠 수 있었는지, 나도 이 대목에서 헛웃음만 나왔다.

  영국의 비밀정보국과 은밀한 협력을 하고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존경의 찬사를 보내기도 한 사빈코프를 소련 비밀경찰은 내버려둘 수 없었을 터. 1924년에 소련 보안당국은 한때 사빈코프의 공모자들을 이용하여 그를 소련으로 유인해 체포, 기소하여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으나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10년형으로 감형, 모스크바 루비얀카 감옥에 구금했다. 이곳에서 공식적으로는 사빈코프가 교도소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해 삶을 마감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스탈린이 사빈코프를 과하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자 국가안보부 요원들이 그를 창밖으로 집어 던진 거 아닌가, 이런 의혹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보리스 빅토로비치 사빈코프는 전형적인 귀족출신의 혁명가였다. 젊은 시절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테러리즘에 경도하다가 정작 혁명이 발생하여 콩고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걸 볼셰비키들이 다 차지할 것처럼 보이니까 여태 자신의 투쟁 대상이었던 부르주아, 귀족들과 합세해 반혁명 세력으로 당당하게 백군의 기치를 들고 내전에 임한 인물. 그는 러시아 지역에서 테러의 중요성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스스로도 더 이상 테러작전을 수행할 동력을 상실했던 1909년에 롭쉰이라는 필명으로 <창백한 말>을 출간하여 테러리즘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비록 사빈코프가 적극적으로 주창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무정부주의를 지지하면서 볼셰비키 소비에트에 반대하느라 정신없었던 인물을 우리는 한 명 알고 있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의 조지 오웰. 결국 오웰의 의견이 옳은 것으로 판명이 되긴 했지만 당장 프랑코 파시스트군과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적이 눈 앞에 도사리고 있는데 오히려 총구를 거꾸로 들고 볼셰비키만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린 일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사빈코프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아무리 그렇다고 백군에 가담해?


  그러나 작품 <창백한 말>은 제법 근사하다. 문장이 간결하다. 암살용 비수 같다.

  작품은 모스크바가 고향인 러시아 출신의 테러리스트가 쓴 일기 형식의 기록이다. 일기니까 화자는 당연히 ‘나.’ ‘나’는 190X년 3월 5일 저녁에 대영제국 국민이자 엔지니어, 조지 오브라이언이라는 이름으로, 터키와 러시아를 여행할 목적이라는 명목 하에 1등칸 열차를 타고 도착했다. 3킬로그램의 다이너마이트를 직접 들고. 폭탄을 가지고 왔다는 건 작품 초반에 등장인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금 ‘나’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모스크바 총독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공을 처단하기 위하여 ‘나’를 연모하는 화학자 에르나도 조직원의 한 명인데, 이이가 맡은 일이 폭탄을 만드는 것이며, 작품 속에서도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폭탄제조 광경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하늘색 눈동자에 굵게 땋아 내린 숱 많은 머리카락을 가진 에르나를 ‘나’ 조지는 “오래 전에 내게 몸을 맡긴 여자”라고 소개한다. 에르나는 조지를 사랑하지만 조지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젊은 장교의 스무살 먹은 젊은 아내이자 분방한 사랑을 향유하고 있는 옐레나라는 여성한테 빠져 있다. 그래도 조지는 에르나와 키스하고, 함께 잔다. 물론 언젠가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는 에르나의 기대도 냉담하게 무지르고 만다. 조지에게 삶에서 중요한 건 없다. 어떻게 보면 거의 완벽한 허무주의자. 그래서 테러리즘에 그토록 빠져들 수 있겠지.

  조지를 팀장으로 하는 테러 소집단은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지와 에르나, 그리고 세 명의 승용마차 마부 표도르, 바냐, 하인리히. 공장 직공 출신 대장장이였던 표도르는 아내가 황제의 공권력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하인리히는 대학에 다니다가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테러리즘에 합류했고, 바냐는 종교적 이유로 좀 복잡하다. 에르나는 사는 일이 수치스럽다는 것이 내세우는 이유다. 조지는 앞에서 말한대로 허무주의자. 그는 테러의 대상인 모스크바 총독을 전혀 증오하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에 대하여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총독은 오직 그에게 반드시 죽여야 하는 대상일 뿐. 무엇을 위해? 테러 자체와 혁명을 위해. 테러 자체를 위한 테러. 이게 조지의 삶의 이유. 실제로 중앙위원회에서 안드레이 페트로비치라는 노 혁명가가 페테르부르크에서 3등 열차를 타고 직접 모스크바에 도착해 조지에게 총독 암살을 당분간 미루라고 해도 그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일단 살인의 마음을 정하고 그것이 테러 자체를 위한 일이라고 단정했으면,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걸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인물이다.

  이런 조지가 변해야 <창백한 말>은 끝난다. 어떻게 변할까? 그저 힌트만. 종교적 이유, 사랑과 희생에 관한 성서적 담론을 입에 달고 다니는 바냐. 그리고 조지가 사랑하지만 결코 조지만 사랑하는 건 아닌 유부녀 옐레나. 이 두 명을 통해. 그리하여 결국 중앙위원회에서 임무를 준 테러를 깨끗하게 거절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뻔한 내용이지만 거기까지 끌고 가는 문장의 힘이 단단하다. 여지없이 암살자의 칼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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