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소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3
미하일 조셴코 지음, 백용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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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보로프 박물관에서 외관장식 담당 예술가이자 모자이크 작가로 일하던 우크라이나 출신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894년에 태어나 거의 64년을 살다가 63세로 죽은 러시아 작가, 동화작가, 풍자작가. 1953년에 직접 쓴 자서전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이라 했지만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낳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득시글거린다 한다. 그까짓 것 알 필요 없으니 궁금해하지 마시라.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조셴코는 하여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성장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제적을 당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전선에서 방독면을 쓰지 않은 채 독일군이 살포한 독가스를 흠뻑 마셨고, 당연히 호흡기 부상을 당해 돌아와 러시아 혁명을 눈 앞에서 지켜본다. 혁명 후 내전시기에 붉은 군대에 입대해 활약해보려 했지만 전에 당한 부상이 또 문제를 일으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문학에 뜻을 두어 나름대로 풍자문학에 이름을 떨치기도 했으나 예술도 당의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1946년 즈다노프 독트린이 발표된 즉시 본격적인 비판을 받아, 저 유명한 1938년 앞뒤로 스탈린에 의하여 저질러진 무지막지한 숙청도 무탈하게 견뎌낸 조셴코는, 즉각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스탈린이 죽은 후인 1958년이나 되어서 연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러면 뭐해, 몇 달 지나지 않아 7월 22일에 그만 숟가락 놨는데.


  《감상소설》 역시 풍자문학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초판 출간이 1927년. 이미 소비에트는 스탈린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런 시절에 함부로 펜을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가는 일쯤 각오해야 마땅하다. 내 생각으로 조셴코 역시 일찍이 레닌 시대부터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날 샌다는 걸 알아채고 일찌감치 우회작전을 펴지 않았나 싶다. 《감상소설》 초판 서문에는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을 신경제정책과 혁명이 절정일 때 썼다고 말한다. 이어서 계속 주접을 떨기를:

  “독자들은 진실한 혁명적 내용, 거대한 주제, 지구적 과업과 영적 페이소스, 한마디로 충만하고 고상한 이념을 작가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중략) 작가는 마음속 깊이 아픔을 느끼며, 이 감상소설집에는 영웅적인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바이다.”

  즉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 에피소드를 통해 혁명과 사랑의 음모를 소비에트적 감성과 유머감각에 입각해 묘사하려 한다. 사실 이 길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볼셰비키라는 토착적 공산주의 체제, 세상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독재체제에서 작가가 진지하게 현상을 해석하고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심장에 스스로 총알을 박아 넣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면회 없는 10년 유배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던 시절이니까. 실제로 조셴코와 뜻을 같이했던 “세라피온 형제회” 회원들은 훗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정식 소비에트 작가로 활동하면서 1937년부터의 ‘대숙청’ 시기를 다른 작가들에 비해 그나마 덜 희생당하며 지났으니 그것도 틀린 방법은 아니었을 터. 조셴코는 실제로 처남 부부가 체포되자 처조카를 데려와 양육하고 이 시기에 작가동맹 레닌그라드 지부의 간부회 임원으로 선출되며 이듬해는 심지어 “노동의 붉은 기치” 훈장까지 받는다.


  이런 시절에 아무리 풍자 작품이라 하더라도 책을 출간하는 일에는 담대한 각오가 있어야 했나 보다. 조셴코는 중판 서문에 난데없이 이 책 《감상소설》은 사실 콜렌코로프라는 소부르주아 가정 출신의 우익에 속한 작가가 썼으며 그는 현재 개조되고 있는 중이라고, 개조가 된 후에 작가들 사이에서 주목할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 말한다. 자기는 그저 진짜 작가 콜렌코로프의 집필을 지도해주었다고.

  3판 서문에서는 한술 더 떠서, 조셴코는 주로 맞춤법상의 오류를 교정하고 이데올로기를 바로잡는 것만 했으며, 작업을 콜렌코로프의 것이라 당연히 원고료 전부를 이반 바실리예비치 콜론코로프가 받았다고 적는다.

  4판 서문은 놀랍게도, “신경쇠약, 이념적 동요, 큰 모순과 멜랑콜리, 이 모든 것은 ‘발탁된 책임자’인 콜렌코로프의 몫으로 돌려야 했다. 작가 자신, 즉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들이자 형제인 조셴코는 오래전에 이 모든 것을 극복하였다. 현재 그에게는 모순이 없다.”라고 하며, “무방비 상태의 작가에게 주먹을 쳐들기 전에 이 복잡한 정황들을 기억해주시기를 훌륭하신 비평가들께 간청드리는 바”라고 하는데, 행여 이런 서문(들)가지고 정말 콜렌코로프라는, 조셴코한테 지도를 받은 작가가 있어서 그가 이 책 《감상소설》을 썼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듯하다. 이 모든 것들도 몽땅 다 풍자라고 해야 마땅할 듯하다. 쉽고 간단하게 말해서, 이런 책을 썼지만 괜히 삐딱하게 읽어서 나를 골로 보내지 말라는 애교쯤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참 살기 힘든 시절을 보낸 건 이해한다.


  1927년에 출간한 《감상소설》에는 여섯 단편이 들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는 여섯 단편과 함께 “첫 소설”이란 부제로 두 작품을 더 실었다. 전부 화자인 “작가”가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등장인물의 배경 같은 것을 먼저 설명하고, 이야기, 초판 서문에서 말한 대로 주변의 별스럽지 않은 서민을 등장시켜 혁명과 사랑의 음모를 묘사한다. 막판에 가면 결론으로, “그게 다 사람 사는 것이지 뭐.”

  《감상소설》의 초판이 나온 다음해, 미하일 불가코프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왜 난데없이 불가코프를 입에 올리느냐 하면, 1927년과 28년이면 같은 시대인데, 아무리 풍자소설과 모더니즘 소설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스타일이 다를 수 있을까, 턱이 떨어질 정도라서. 《감상소설》의 단편, 좋다 ‘풍자단편’이라 하자, 이 풍자단편이 나온 시기를 모른 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언제 쓰인 것 같나요? 하고 물어보면, ‘혁명’이나 비슷한 단어만 없으면 푸시킨 시절 같은 걸요, 라고 대답할 것 같다. 잘 봐주면 디킨스까지?

  물론 이건 조셴코 탓이 아니다. 이 정도를 쓰고 나서도 세 번이나 서문을 고쳐 써야 할 만큼 몸을 사려야 했던 시기였으니. 다만 아무리 좋게 읽으려 해도 문제는 스타일이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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