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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대 얼굴 ㅣ 더봄 중국문학 전집 11
거페이 지음, 심규호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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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한자어로 하면 도화桃花. 우리나라에서는 복숭아 가지를 귀신 쫓는 용도로, 꽃의 살煞, 즉 도화살은 “여자가 한 남자의 아내로 살지 못하고 사별하거나 뭇 남자와 상관하도록 지워진 살”이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다. 이건 예전 식으로 살을 푼 것이고, B급 문화를 대변하는 나무위키는 “매력을 어필하는 능력, 일종의 매력 살”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하다. 그러면 거페이가 말하는 “복사꽃 그대 얼굴”은 무엇일까? 화끈하게 가르쳐드리지. 책의 1장 “육손이”에 등장하는 잘 생긴 외간남자 장지위안을 말하는 거다. 남자가 얼마나 멋있게 생겼으면 뻣뻣한 털이 숭숭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복사꽃이라고 했을까? 궁금하지?
거페이는 1964년생, 올해 환갑을 맞은 용띠 아저씨로, 올 여름에 <봄바람을 기다리며>를 아주 즐겁게 읽었다. 그래서 책 읽은 바로 그날 검색해 거페이가 쓴 “강남 삼부작”이란 것이 있어 중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마오둔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이 삼부작 가운데 첫 권이 바로 <복사꽃 그대 얼굴 人面桃花>. 두번째 권 <산하는 잠들고 山河入夢>과 세번째 권 <강남에 봄은 지고 春盡江南>. 거페이가 마음에 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봄바람을 기다리며>가 중국 남자 작가들, 류전윈, 옌롄커, 쑤퉁, 위화 같은 이들만큼 심한 과장과 거친 묘사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국판 고난의 행군이었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현대사 속의 사람들을 그렸으면서도 그랬다. 이런 차별성이 마음에 들어 서슴없이 <복사꽃 그대 얼굴>을 집어 들었는데, 아이고, 이 책은 안 그러네.
중국에서 복숭아 나무, 복숭아 꽃 그러면 1번이 도연명의 무릉도원이요, 2번이 유관장의 도원결의를 떠올린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근데 도연명, 이이의 성 도陶는 항아리 ‘도’니까 무릉도원, 동정호의 남쪽 호남 무릉에 복숭아 정원이 있는 별천지, 유토피아, 율도국하고 관계없지만, 도연명이 작가 거페이와 한 고향인 장시성 사람이다. 저 먼 시절에 초나라 땅, 장강 이남이며, 원나라 시절 이전부터 희극戱劇(알기 쉽게 얘기해서 ‘차이니즈 오페라’)로 이름을 낸 지역이기도 한데, 이곳의 작은 고을 푸지普濟의 지주 루칸 선생도 희극을 즐기며 도원명의 무릉도원을 꿈으로 알고 살았다. 이 양반이 약 2백 무畝, 2백 마지기를 소작주고 자기 손으로는 노동하지 않는 천생 지주였지만, 알고 보면 이이의 꿈이 별유천지비인간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거였는데, 누구나 똑같이 일하고, 소출은 n분의 1로 나누며, 똑같이 지은 집에서 같은 품질의 음식과 의복을 향유하며 사는 거였다. 동리의 모든 집과 집은 지붕이 있는 통로로 연결하고 통로를 따라 장강에서 끌어온 물이 흘러 같은 물을 마시며 사는 거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삼부작의 제1권 <복사꽃 그대 얼굴>의 막이 올라가자마자 이런 꿈을 꾸고 있던 루칸 선생은 멘탈 디스오더, 미쳤다. 양저우揚州의 교육기관 부학府學에서 파면당해 푸지로 돌아온 아버지는 향리에 은거해 (쉬운 얘기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서당 훈장질로 먹고 살던 딩수쩌와 시서를 즐기며 친밀하게 지내다가 50세 생일 선물로 딩 선생한테 받은 장려 한유가 그린 진품 “도원도桃園圖”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믿을만하진 않다. (1957년에 베이징시와 장쑤성이 합동으로 도원도를 감정한 결과 위작으로 밝혀졌다고 원주에서 밝힌다. 그러나 이걸 믿어야 할지, 원주 역시 소설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식의 원주가 속속, 과한 빈도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루칸 선생이 딩수쩌와 이상은李商隱의 시 “무제 2”를 논하다가 ‘금두꺼비’를 ‘금매미’로 읊어 두 양반이 서로 귀싸대기를 후려 갈기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딩수쩌의 앞니가 쑥 빠지는 지경을 목격하더니 이 일 이후로 미쳤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이때 까지는 금두꺼비면 어떻고 금매미면 어떠랴, 독자들은 생각하리라. 그러나 천만의 말씀. 1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상은의 시 속에 나오지도 않는 금매미가 아닌 진짜 실물, 작은 호박으로 눈을 해 박은 순금 매미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게 사연이 참 많다는 말이지. 사랑하지만 한 순간도 성적인 터치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떠나는 남자가 여자한테 남기는 정표로. 게다가 순금이다, 순금.
루칸 선생의 무남독녀 외동딸 이름이 슈미秀美. 맞다. 일용 엄마하고 같은 이름이다(이 독후감은 탤런트 김수미 씨 별세 닷새 전에 썼다. 고인도 웃고 넘길 거 같다). 루 선생은 실성한 상태에서 계속 다락방에 머무르기만 했다. 1년에 한 두 번씩만 밖에 나와 세배를 받을 뿐 하루 종일, 일년 열두 달 다락방에서 기와 모양 그릇, 와병을 쓰다듬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하루는 다락방에 불을 싸질러 선생이 평생을 읽던 서책과 도원도와 와병을 몽땅 태울 뻔했다가 억지로 두 개를 건졌으니 가장자리가 검게 탄 도원도와 이 와병. 이후 억센 사내들을 불러 다락방을 다시 고쳤고, 해가 바뀐 1901년의 늦봄. 마당엔 복사꽃이 분분한 시절에 등나무 가방을 든 루칸 선생이, 이게 웬 일이니, 이 날이 열다섯 살 슈미가 세상에 태어나 두번째로 월경을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자기 발로 다락방을 걸어 나와 마당에 혼자 서 있는 딸 슈미한테 자기는 떠난다고, 말하고, 갔다가, 금방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푸지에 비가 올 거야.” 두리번거리다가 헝겊으로 만든 우산을 펼쳐보지만 다 헤진 우산이 살만 남아있어, 다시 뒤로 돌아, 그냥 갔다. 그리고 날이 바뀌기도 전에 정말로 푸지엔 비가,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슈미가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었다.
실성한 가장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는 엄마. 그리고 집안의 회계이자 청지기 바오천. 이런 와중에 노파가 찾아온다. 그리고 하는 말이:
“붉은 보라빛 상서로운 구름이 동남쪽에서 날아와 나리 발 밑에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기린으로 변했어. 그러자 당신네 나리가 그걸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갔지. 하늘로 올라가면서 손수건을 한 장 떨어뜨리는데…”
하면서 더러운 손수건을 내민다. 손수건 가를 따라 이집 하녀 시췌가 수놓은 것이 확실한 지라, 갔네, 갔어, 그런데 어디로 갔나?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푸지에서 제일 가까운 대처 메이청에서 어머니의 동생 장자위안이 불쑥 나타난다. 드디어 나왔다, 장자위안. 앞에서 말한 순금 매미를 남기고 떠날 사람. 어머니는 슈미더러 처음엔 외숙이라고 부르라 했다가 금방 외삼촌이라 부르면 된다고 한다. 근데 장자위안은 그냥 사촌오빠라고 부르면 좋겠단다. 원 참, 족보가 이러면 어떻게 해? 가족 중에 ‘추이롄’이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다. 저장성 후저우가 고향인데 초년 팔자가 드세 기구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다섯 군데의 기원妓院, 기생집과 네 곳의 시집을 거쳐 루칸 선생이 몸값을 치르고 데려왔다. 이 방면에 워낙 빠삭한 여자라서, 슈미에게 귀띔을 하기에, 생각해봐라, 엄마는 완溫씨고, 남자는 장씨거늘 어떻게 남매일 수 있겠니?
그럼 뭐야? 뭐긴 뭐야, 혼외 연인이지. 그러나 하나 더. 장지위안이 무엇을 남기고 떠날 거라고? 맞다 금으로 만든 매미. 작은 호박으로 눈알을 해 박은. 아빠 루칸 선생은 이상은의 시 “무제 2”의 금두꺼비를 금매미라 했다가 크게 싸움을 하고 절친끼리 의절을 한 사람. 장지위안 역시 무릉도원, 유토피아, 율도국을 꿈꾸는 사내다. 그 역시 개개인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 혼인하고 싶으면 누구와 혼인하면 되는 세상, 그게 아빠와 딸이라도, 엄마와 아들이라도 관계없는 세상을 꿈꾼다. 다만 루칸 선생과 다른 점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을 바꾼다는 변법變法과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설파하며, 정말로 그것을 위해 계를 짜고 열성분자로 활약 중이다.
세상에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아빠와 절교했지만 슈미가 선생으로 모시는 딩수쩌의 심부름으로 옆동네 샤좡에 사는 쉐 거인(擧人: 가장 낮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 쉐쭈옌의 집에 갔더니 거기 장지위안이 있던 거다. 쉐거인의 집 앞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연못에 낚시를 늘인 곱추가 있었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장쑤성에서 가장 유명한 밀정이었다. 스토리가 되려니까 슈미가 장지위안을 쉬쭈옌의 집에서 만났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나중엔 쉬쭈옌이 자기 집에서 잡혀 목이 잘리고 몸뚱이는 장강의 백사장을 뒹구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추포하러 온 관군이 과거 합격 동기라서 관아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대신 단칼에 죽게 하는 관용을 베풀긴 했지만 이걸로 장지위안의 변법과 혁명은 사실상 종을 치게 되고, 세 불리함을 부인하지 못하는 장지위안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금 매미를 남기고 밤길을 나서, 불과 며칠 후 장강의 얼음에 박힌 발가벗은 주검으로 발견되고 만다. 세상에 변법, 법을 바꾸고 혁명을 하는 게 쉽나 어디? 이렇게 1장 “육손이”는 막을 내리고 더욱 드라마틱한 2장 화자서로 넘어가, 또다른 유토피아, 율도국의 비극을 맞는다. 3장은? 유토피아, 무릉도원을 직접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주인공,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야 작고 초라하게 도화만발한 장면으로 삼부작의 1권 <복사꽃 그대 얼굴>은 막을 내린다.
4장이 일종의 에필로그인 셈. 내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너무 긴 에필로그를 뽑는다. 거의 한 권 수준이니 원 참. <복사꽃 그대 얼굴>에서도 4장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었다. 하긴 2권, 3권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도 3부작 끝까지 달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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