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하양 걷는사람 시인선 101
안현미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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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보니 안현미의 시집을 세 권째 읽는다. 《곰곰》과 《이별의 재구성》에 이어 《미래의 하양》까지.

  드디어 안현미, 아현동에서 탈출했다. 뭐 탈출은 벌써 했겠지. 형제 같은 바퀴벌레 떼가 비키니 옷장 바닥을 점령한 채 그들과 한 방에 살았던 궁상스러운 시절에서. 순대국밥 먹으러 가면 주인 아줌마가 혼자 왔느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고마웠던 외로운 시절에서. 세월이 가면 먹고 사는 건 좀 필 수 있어도 외로운 건 결코 좋아지지 않는 것인데 시인은 그것도 좀 나아졌을까? 《미래의 하양》 속에서 시인은 그동안 3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시 작업에 몰두하기도 작정을 했던 것 같다. 근데 생각했던 것처럼 돌아가면 그건 세상 사는 일이 아니지. 시는 잘 써지지 않고, 실업급여를 받아도 밥상 위의 반찬은 여전하고, 한강 상류 북한강, 북한강 상류 동강, 동강 지류 주천강, 주천강 옆댕이에서 살며 탁구 좀 쳤던 것 같기도 하고,


  가계도


  아버지는 술을 물처럼 마시고

  어머니는 물을 술처럼 마셨다   (전문. P.51)



  이런 가계도의 핵심인 부모 모두 세상 하직한 것 같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엄헬레나 여사한테 헌정하는데, 혹시 몰라, 시인의 엄마 이름이 엄헬레나인지도. 왜냐고? 이런 시를 보아 그렇다는 거지 뭐.



  엄헬레나



  1 9 4 2 9 1 6 – 2 0 2 4 2 1 1


  부잣집 딸로 태어나 탄광으로 시

  집온… 딸 셋을 낳은…… 실향민

  의 딸 엄…헬레나…과부는 아니었

  지만 과부 같았던… 장성 제1광업

  소 급식사이자 세탁부였던…엄…

  헬레나…… 닥치면 겪는다… 닥

  치면…엄…헬레나…… 헬레나…

  닥치면 겪는다…… 탄광촌… 판

  잣집… 공용 변소… 닥치면 겪는

  다… 엄…헬레나… 0명의 아들과

  0명의 남편 그리고 자신도 모른

  채 엄헬레나로 죽은… 어쩌다 마

  지못해, 의무적으로 전화하면 자

  꾸 어디니이껴 묻던 엄헬레나…

  엄…헬레나… 어디니이껴… 어디

  니이껴… 어디 계시니이껴……   (전문. P.64)



  안현미가 강원도 태백 생이거든. 장성광업소가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 있거든. 뭐 아닐 수도 있다. 생활력 강한 옆집 아줌마이거나 시인(또는 시인의 부모)와 막역한 사이라서 평소 이모라고 불렀던 사이일 수도 있지만 뭐 어쨌거나 엄마와 비슷하지 않았겠나 싶다. 이 시집에서 부모 말고 딱 한 명 더 출연하는 친척으로 고모도 있다. 서울 고척동에서 살아 ‘고척동 고모’라고 부르는데 정말 고모라서 안씨 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냥 ‘고모’라고 부르는 시인의 의지가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척동 고모


  그녀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고통은 공기와도 같았다 고통과 함께 밥 먹고 고통과 함께 잠들고 고통과 함께 출근했다 한 명의 남편과 네 명의 자식들마저 그녀를 떠났을 때도 고통만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사람들은 고통이 그녀를 병들게 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통을 파먹으며 여태껏 살아남았다고 했다 한번 물어봐요 일생 억척스럽게 살아남느라 고통스러웠는데 고통이라면 지긋지긋하지 않아요?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 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녀는 말했다 일생 함께 울어 준 것도 웃어 준 것도 고통인데 이제는 피붙이 같다고 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여성)은 두고 가도 고통만은 함께 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문. P.58)


  지금 호적 파는 데 맛들였냐고? 아니, 아니. 이 시집에서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안현미 만의 독특한 어법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침 시인의 친척, 그러니까 저 위에서 인용한 “가계도”의 일원인 고척동 고모가 눈에 띄어 가져왔다. 시에 관해서 쥐뿔도 아는 게 없는 번인이…, 본인이… 굳이 이 시 <고척동 고모>를 말할 것 같으면, 시 한 자락에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시어 “고통”이 열두 번 출현한다.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 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도 반복해 등장한다. 이 시집에서 이렇게 같은 시어, 시 구절을 반복하는 것들이 세어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지하게 많다. 반복 ‘구절’이 이 시 <고척동 고모>에서는 리듬감 있게, 쉬운 말로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횟수만큼 나와 읽는 맛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시 ‘단어’ 그러니까 시어 “고통”은 뭐가 그리 좋다고 저렇게 열심히 쓰셨나 그래?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고통이 면역이 된다는 잘못된 지식 또는 진짜 육체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시인 작가들의 착각이다. 그래서 미국에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주드 세인트 프랜시스’라는 이름의 남자가 면도칼로 자기 팔뚝을 수시로 그어 고통을 감각하는 일종의 ‘고통 중독’ 현상을 겪어 웬만한 고통 정도는 느끼지도 않을 정도이지만, 그의 연인이었던 윌럼 라그나르손은 주드와 비슷한 자해를 했을 뿐인데도 무지하게, 정말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말도 지껄이게 된다. 고통은 결코 면역되지 않는다. 생명유지를 위해 오히려 고통을 당할수록 더 고통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면역이 가능했다면 인류학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다양한 방법의 고문을 창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을 겪으면 겪을수록 민감함은 더욱 배가된다. 진짜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딴 글을 무책임하게 썼다는 걸 독자가 몰라 경탄을 하는 지도 모른다. 물론 고척동 고모의 고통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다양하게, 다양한 부위에서 겪었겠지만(겪고 있겠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태까지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았으니까 그렇게 고통과 나머지 삶도 함께 살다가 가겠다는 거야? 치사하게 “라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도,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라떼, 이런 시는 철저하게 분쇄당했을 거다. 평생 노동자, 해고 노동자로 살았으면서 조금의 운동성도 발견할 수 없는 고모. 빼박 패배적인 관점의, 패배적인 관점일 뿐인 시라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었던 것이었다.

  내가 전에 읽은 안현미의 시집 《곰곰》과 《이별의 재구성》에서 이런 고척동 고모의 기색이 옅보였다고 하면 너무 오버인가? 아현동 사글세 방의 가족같던 바퀴벌레 시절의 지독한 궁상 말이지. 그때도 “나는 지금 이렇게 아파요, 배고파요, 외로워요.”라고 영탄만 했을 뿐, 이의 개선을 위한 운동성은 보여주지 못했었다. 그때는 이십대 시절. 이 시집 《… 하양》이 2024년 출간이니까 시인의 나이 52세. 그이 사이 적어도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날아다니는 꽃


  개보다 더 단순한 진심으로 가장 어두운 밤보다도 더 가장 어두운 얼굴로 밤을 견딥니다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해하듯 밤을 이해한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마음도 마음 아닌 것도 모두 잠들지 못하는 밤 그건 뭐였을까요? 봄에는 직장을 잃고 가을에는 사랑을 잃었습니다 구직도 구애도 구원도 없는 가장 어두운 밤보다도 더 가장 어두운 얼굴로 밤을 건넙니다 개보다 더 단순한 진심으로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여 가끔 눈부셨던 그건 뭐였을까요? 눈물처럼 빛나고 진실처럼 부서진   (전문. P.19)


  여태까지, 20년이 넘는 세월은 시인은 여전히 밤을 견디고 있다. 안현미의 밤은 위안과 쾌락과 치유와 쉼과 평온의 밤이 아니다. 공포와 유령과 범죄와 고독과 빈곤의 밤이다. 그걸 시인은 개보다 더 단순한 진심으로 견딘단다. 아무리 궁상스럽던 세월이었더라도 살면서 찬란하고 눈부셨던 잠깐이 없었을 수 없겠지. 독자는 여기서 눈에 힘을 주어야 하리라. 어차피 안현미가 부호와 암호와 은유로 결판을 보는 시인은 아니니 아무리 시라도 앞뒤 문맥은 짚어 마땅하다.

  개보다 더 단순한 진심으로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데, 그래서 가끔 눈부셨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단다. 그러니까 “죽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가끔 눈부셨던 것.” 아오. 이건 스핑크스의 리들보다 더 풀기 어렵네 그려. 시는 별로 읽지 않는 독자인 내가 도무지 풀지 못했던 “가끔 눈부셨던 것”이 “눈물처럼 빛나고 진실처럼 부서”졌다네? 여기서 나는 의혹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건 시적 아름다움을 좇은 의미없는 수사일 뿐이라고.

  하여간 이제 50줄에 든 시인은 주천강변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 탁구도 쳐 가며.


  횡성


  오지 않는 시를 기다리며 가을이 다 갔지만 어떤 날은 박상륭의 열명길을 읽다 잠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물가에 나가 앉아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가끔 아침부터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자작나무 잎들이 춤을 추면 읍내에 나가 술을 받아 와 대낮부터 대취했고 고라니 울음소리에 깬 밤이면 지난날 용서 빌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벌벌 떨었다 오지 않는 엄마 오지 않는 아버지 오지 않는 시를 기다리러 황성 갔다 지난날 빌지 못한 죄들과 오지 않는 것들이 매일 밤 별처럼 돋아나던   (전문.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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