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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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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을 읽고 꽤 시간이… 지났나? 이제 보니 딱 2년 됐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아리스토파네스는 당대의 가장 적극적인 보수파 진영에서도 제일 앞에 섰던 인물이다. 보수? 보수적으로 생활하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한 번도 보수 쪽에 가깝다고 여겨본 적 없는 말로만 진보인 사람들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보수파 대장이었다고 하니까 그냥 이 대목에서 젓가락 놓고/던지고 싶겠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만 더 들어 보시라. 아리스토파네스의 반대편에 섰던 인간들은 당시 스파르타와 대가리 터지게 싸우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속 하자, 아테네가 초토화되고 벌판이 황폐하여 살기가 아무리 퍽퍽해지더라도 아테네의 가오가 있지 어떻게 저 깡촌놈들 스파르타한테 아홉 마리의 황소 털 가운데 한 오라기라 하더라도 양보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침을 튀던 주전파인 클레온,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가 보기에) 아테네의 청년들을 모아 주둥이질만 열심이고, 늙은이 주제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진짜로 참전했다가 적들이 쳐들어오는 순간 사방에 먼지가 자욱한 틈을 타 과감하게 뒤로 돌아 돌격한 소크라테스다.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니고 브레히트의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는 건데 하여간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를 젊은이들을 교언영색한 궤변론자이자 호전적인 늙은이라고 생각해 무지하게 싫어했다. 그리고 한 명 더. 그리스 신화 혹은 전설이나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을 자기 마음대로, 허무맹랑하게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영 앞뒤가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비극을 만든, 만들었다고 생각한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들을 극혐했다.
아무리 위대한 문명을 누렸다지만 당장 도시가 망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들의 현 상태, 좀 잘난 척해서 말하자면 SWAT 분석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가 싸우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당시엔 진보였으며, 아리스토파네스처럼 당장 도시가 처한 꼬라지를 제대로 이해해서 조금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화평 조약을 맺자고 주장했던 진영이 보수였다. 만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내가 오독한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면, 불행하게 21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5세기에 살고 있는 소위 지식인은 보수가 옳았을까, 진보가 옳았을까? 당연히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는 스파르타가 우여곡절 끝에 이기기는 한다. 결과 아테네는 거의 폐허만 남고, 스파르트 역시 얻을 게 없어 쪽박을 차게 되어 옆에서 구경만 하던 테베가 그리스 연방의 짱을 먹게 된다. 궁금하다. 당신은 보수를 택했을까, 진보를 택했을까?
아리스토파네스는 깡다구도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치가 클레온, 2022년 말에 타계한 천병희 선생은 이자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등장한다고 하는데 한 챕터의 대상이 아니라 페리클레스 편의 조연급으로 나오는 것 같기는 하지만,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아리스토파네스의 명을 확실히 짧게 해주었을 거 같은 인물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궤변론자로 단정한 소크라테스는 이미 플라톤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배출한 그리스의 철학자들 가운데서도 으뜸인 자였으며, 에우리피데스 역시 그리스 비극의 마지막 영광스러운 꽃을 피운 작가였다. 그러면 뭐해.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들 모두 자기가 쓴 희극작품에 “실명”으로 등장시켜 만인의 비웃음을 사게 만들었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에선 클레온과 소크라테스가 혼이 나더니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에선 에우리피데스의 가오에 숱한 스크래치가 간다. 그러니 이이 강단이 보통이겠느냐고. 그렇다는 얘기다. 심지어 오늘 소개할 작품 속에 에우리피데스가 괜히 등장해 창피 당하는 작품을 고르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다섯 편 가운데 제일 앞에 실린 <뤼시스트라테>를 소개한다.
이 희극의 배경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즉 펠레폰네소스 전쟁 시기이다. 구체적인 전황 같은 건 소개하지 않겠다. 혹시 알고 싶으신 분은 투퀴디데스가 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말고 현대 미국인 사학자 도널드 케이건이 쓴 동명의 전쟁사를 읽어 보시는 편이 낫다. 그것도 훨씬 낫다. 그것보다는 이제 전쟁의 국면이 변해 스파르타가 난데없이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어 아테네는 비록 오늘 내일로 도시가 망가지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됐고, 이를 눈치 챈 동맹국들도 슬금슬금 아직껏 맺고 있던 인연의 줄을 놓으려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클레온 일당들은 이래봬도 우리가 아네나이여, 왜들 이려, 하면서 아무리 큰 위험을 당하더라도 굴복할 수 없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 바란다, 주접을 떨고 있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뤼시스트라테>를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막바지에 다른 기원전 411년에 썼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BC431년에 발발하여 10년 동안 대가리 터지게 싸우다가 BC421년부터 8년간 휴전한다. 그러니까 기원전 411년이면 두 도시가 쉬는 새 바나나 먹고, 탄수화물 먹고, 단백질 음료 마시고 원기회복해 다시 싸우기 시작해 3년이 지났을 때였다. 스파르타보다 육군은 좀 처지지만 해군이 더 막강하다고 오판해 시칠리아로 짓쳐들어갔다가 쌍코피를 흘릴 때였다. 그러니 육군은 원래 안 돼, 해군도 깨져, 이제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한 보수파들은 평화조약을 맺고 싶었을 터. 그는 이 판국에 절묘한 풍자를 해버리니, 그리스 남자들은 전부 전쟁에 환장을 한 미친 것들인 반면, 여성들이 정신을 차려 하루속히 평화조약을 체결해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가정했다. 근데 특히 전쟁 중에 여성이 무슨 힘이 있어서 평화조약을 맺게 만드나 그래?
주인공 뤼시스트라테는 사고의 폭이 대단히 넓은 여인이다. 이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그리스의 모든 남자들이 거덜이 날 것이며, 모든 여자들은 과부가 될 거 같다.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고, 가게에는 팔고 살 물건도 없으며 팔고 살 사람도 없을 거 같다. 그리하여 조속히 평화조약을 맺어 합당한 보상금을 서로 주고받아 전쟁을 끝내야 마땅한데, 남자들은 이미 맛이 가서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소용이 없으니 이걸 어쩐다?
전쟁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돈이다. 돈이 있어야 무기를 사고, 갑옷을 사고, 방패도 만든다. 돈이 있어야 병사를 먹이고, 입히고, 재울 텐트를 산다. 그래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아테네, 아테나이의 돈줄을 말리는 일. 이걸 위하여 파르테논 신전에 적립해둔 전쟁 기금을 못 쓰게 하는 것. 그리고 남자들의 참전을 막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남편, 남친과의 교접을 거부하는 섹스 스트라이크였다. 하나 더. 신전 속의 전쟁기금과 섹스 스트라이크는 아테나이 한 군데서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면 뤼시스트라테의 행위는 영락없이 매국적인 일이 될 터. 이를 제대로 아는 뤼시스트라테는 스파르타와 테베의 여성 대표를 초청하여 자신의 뜻을 설명하고, 몇 날 며칠 동시에 신전을 점령하고 남편/남친을 침대 위에 못 올라오게 한다고 합의한다. 그쪽 도시에서도 남자들은 여전히 전쟁을 하자고 난리중이니까.
그래도 순서가 있어서, 뤼시스트라테는 먼저 아테나이의 여성들에게 맹세를 시킨다. 이들이 신 앞에서 포도주를 들고 행하는 맹세는 동양에서 흔히 하는 약속과 다르다. 맹세를 어기면 죽음이나 죽음보다 지독한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결의다. 뤼시스트라테는 맹세를 강요하고 여인들은 기꺼이 이 말을 반복해 외침으로 맹세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샤프란 색 가운을 입고 화장을 한 채
남편이 나를 몹시 열망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결코 자진해서 내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싫다는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나는 재미없게 해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나는 치즈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도 않겠습니다.
이후 등장하는 남자들은, 그리스 고전 희극에서는 대개 그렇다고 하는 바와 같이 커다란 음경이 덜렁거리는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음란한 말만 주고받는다.
여태까지 읽은 그리스 작품들은 올림포스에서 신주 넥타르를 홀짝거리는 별의 별 신들과 그들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자손, 즉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신과 영웅과 왕들의 리그. 그게 그리스 비극이었던 반면, 위에서 뤼시스트라테의 맹세에서 보듯이 아리스토파네스는 무대를 올림포스 신전과 왕궁, 영웅들의 전쟁터에서 난잡하게 보이는 인간세상으로 끌어내렸다. 비록 등장인물은 여전히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차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대사를 만들지만 보다 사실적인 목적과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정말로 펠레폰네소스 전쟁 당시에 여성들에 의한 섹스 스트라이크가 있었겠느냐만, 이런 풍자와 냉소를 가득 담을 수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아리스토파네스는 내게 특별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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