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고니시의 번영과 몰락
베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기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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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20세기도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관중에게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오페라 장르를 계속 “미식가적 취향”에 머물게 하는 것이 마땅한 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 첨부한 브레히트와 주어캄프의 주석에 그들(브레히트와 주어캄프)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의 오페라는 미식가적 오페라다. 오페라는 상품이기 훨씬 전부터 향락의 도구였다. 오페라가 교양을 요구하고 교양을 전달한다 해도 오페라는 쾌락에 기여한다. 왜냐하면 기호의 형성이나 전달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어떠한 대상이든 즐기는 태도로 접근한다. 오페라는 하나의 ‘체험’이고 ‘체험’으로서 기여한다.”


  인용의 마지막 문장에서 오페라가 “체험으로서” 기여한다고 했다. “으로서”는 자격격 조사이다. 즉 문장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면, “체험”의 과정을 통해서(기구격 조사 ‘으로써’)가 아니라 기호의 형성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학의 극화 자체”로 관중에게 기여한다고 말한다.

  베르톨트는 이런 개념에 입각해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을 애초부터 오페라 대본, 리브레토를 썼다. 그리하여 <마하고니…>는 애초부터 “향락적”이고 감상자의 쾌락에 기여할 목적이다. 여태까지 지속해왔던 “비이성적 성격”을 가지는데 그것은 “입체성과 현실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실성이 음악을 통해 제거”된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거창한 무대와 오케스트라, 출연진과 합창단, 발레에 드는 비용으로 인민들의 하늘 위에 존재했던 오페라 무대를 이제 시장의 흙바닥에서도 공연하게 만들고 싶다. 이것이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포인트. <마하고니…>를 쓰기 몇 년 전에도 이들은 뜻을 합쳐 <서푼짜리 오페라>를 만들고 공연했다.

  나는 <마하고니…>가 처음부터 오페라를 위해 쓴 것인지 몰랐다. <마하고니…>라는 희곡작품이 있어서 그것을 쿠르트 바일이 하도 재미있게 읽고, 보아, 자기가 오페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읽어봤으면서도 여태까지 원래 희곡인 줄 알았다. 요즘 출판사 지만지에서 나오는 책들에 슬슬 정나미가 떨어지는 판이었음에도 이 책을 읽으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까지 한 이유는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를 DVD로 가지고 있음에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해 (쿠르트 바일의 작품이 재미가 없다니 이게 웬 일이냐는 말이지!) 원작을 한 번 읽어볼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총 238쪽의 분량이긴 하지만 원 텍스트는 113쪽에서 끝나고 이어 부록, 삭제 장면, 해설, 작가 소개, 역자 소개가 본 텍스트 분량만큼 첨부되어 있다. 역시 지만지 드라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독자한테 별로 영양가 없는 정보를 제공하기에 여념이 없다. 혹시 당신이 브레히트를 전공하거나, 극작에 큰 관심이 있는 지망생이면 아주, 아주, 아쭈? 아주 좋은 정보일 수 있으니 읽어 보시든지.


1998년 찰스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DVD


  극작 특성상 진행이 무척 빠르다. 애초 협업하기로 뜻을 맞춘 쿠르트 바일은 리하르트 바그너와 달라서 구구절절 독자/관객에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마하고니라는 도시가 생긴 내력을 성실하게 소개할 의지는 별로 없다.

  막이 오르면 무대에 고장나 멈춘 트럭과 세 명의 등장인물이 보인다. 삼위일체 모세와 지배인 빌리, 그리고 마더 구스 역할인 베크비크. 애초 이들은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 이 황량한 벌판에 도착했다. 하지만 앞에는 사막, 뒤에는 이들을 쫓는 경찰, 금을 캘 수 있는 해안으로 가야 하건만 트럭이 퍼져버렸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에 어미 거위 베크비크가 선언한다.

  “좋아, 그럼 여기다 자리를 잡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거면 여기 아래에 자리 잡는 거야. 이봐, 금 찾는 일은 힘든 일이고 우린 그런 일을 할 수 없어. 그렇지만 난 사내들을 잘 알지. 틀림없이 사내들은 금을 내놓을 거란 말이야. 강에서 금을 찾는 것보다 그 사내들한테 뜯어내는 게 더 쉬울 거야.”

  이리하여 세 명의 (범죄자인 것처럼 보이는) 뜨내기가 도시를 만들어 “마하고니”라 이름 짓는데, 마하고니는 그물망이란 뜻이란다. 금을 캐는 남자들인 감칠맛 나는 새들을 잡을 수 있는 그물망.


  작은 주머니에 금 조각을 담아 가슴에 품고 마하고니 시로 들어온 사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갈취하기 위한 방법은? 당연히 여자들이다. 이런 건 특별히 광고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들어오는 법. 마하고니 시에도 제니를 비롯해 여섯 여자들이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등장해 <마하고니…>에서 가장 유명한 노트 “앨라배마 송 Alabama Song”을 노래한다. <마하고니…>는 1928~29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썼다. 그런데 난데없는 앨라배마? 브레히트와 바일 두 명의 독일인은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지만 이 때까지 설마 자신들이 떠날 줄 알았겠어? 그럼에도 금과 꿀과 젖이 흐르는 신세계를 조금은 동경했을 지 모른다. 이것으로 마하고니 시가, 모르기는 하지만, 미국 땅에 있는 가상의 도시 아니겠느냐, 짐작을 할 수 있다. 이 노트의 가사는 브레히트가 독일어로 쓴 것을 <서푼짜리 오페라>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엘리자베트 하웁트만이 영어로 바꾸었다. 유명작 <직조공>을 쓴 게르하르트 하웁트만하고 인척관계인지는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마침 유튜브에 올라 있으니 한 번 듣자.



  이후 몇 년 동안 도시는 세계 각처에서 불평 불만 가득한 남자들이 쇄도해 전성기를 만난다. 이제 도시에는 네 가지 미덕 또는 죽을 죄의 기치가 휘날리게 됐으니, 첫째는 폭식, “처먹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의 행위 즉 섹스이며, 셋째는 브레히트 스스로가 매료된 스포츠인 권투시합, 넷째로는 바로 술이다. 주목. Pay your attention. 네 가지 미덕 또는 죽을 죄. 즉 이것은 도시 마하고니의 가장 전성기를 만들었으며, 전성기라고 함은 이제 남은 건 쇠퇴밖에 없다는 얘기로 이 네 가지 때문에 마하고니는 쫄딱 망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마제국 쇠망사>가 로마의 전성기인 오현제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 것처럼.

  그러면 이제 이야기는 다 끝났다.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다만 이 작품, 오페라를 위한 대본에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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