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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니엘로의 날개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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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1950년에 나폴리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소설가, 역자, 시인이라고 나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급진 좌익 조직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조직이 해체된 다음엔 정치 쪽에도 기웃거렸다. 각종 블루컬러 노동을 하면서도 여러 언어에 관심을 두었고, 글도 썼다. 은둔형 외톨이 스타일로 여전히 로마 근교의 시골에 살며 열정적 등산가로 활약하고 있단다. 21세기에 리옹 토리노 간 고속열차 설치에 반대했다가 기소까지 됐으나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으니 왼쪽인 건 맞을 듯.
왜 이 책을 읽었느냐 하면, 프랑스에서 공쿠르 상과 쌍벽을 이루는 문학상이 페미나 상인데,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던 차에, 이 책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던 거다. 2002년 페미나 상 수상작이라고. 마침 도서관 서가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길래 얼른 빌려 읽었다. 간혹 읽은 기분을 설명하는 데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별 몇 개, 이렇게 얘기하는 게 편할 때가 있으니, <라파니엘로의 날개>로 말하자면 별 셋은 박하고 네 개는 후해서 셋 반이 적당한 수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소수점 없이 채점하면 네 개.
페미나 상 수상작을 저 동아시아 촌놈이 별 셋 반을 준다고? 어때, 내 맘이지. 그런데 독후감 쓰려고 위키피디아 보니까 페미나 상은 페미나 상인데, 페미나-에드랑제 Femina Etranger란다. 이런 것도 있나? 페미나 상 외국어 소설 부문? 무슨 아카데미 시상식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페미나 상은 불어로 쓴 작품한테만 상 주는 걸로 알고 있어서 불어 잘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 불어로 쓴 책인 줄 알았지 뭐야.
데 루카가 역자로도 일하고 있다. 언어의 범위가 재미있다. 고대 히브리어, 스와힐리어, 러시아어, 이디시어 등등. 고대 히브리어로 쓴 구약, 오래된 계약을 “비신자”로써 번역했다고 한다. 이디시어까지 관심을 넓혔다면 유대인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 신자라고 했으니 기독교건 유대교건 간에 종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 <라파니엘로의 날개>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돈 라파니엘로도 러시아 혹은 동/북유럽에서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으로 팔레스타인까지 가려고 배를 타기 위해 나폴리에 도착했지만 여기서 옴짝달싹 못하는 선한 유대인이다. 나폴리 말도 한 마디 못했다가 조금 배운 정도의. 하기는, 그깟 작가가 어디 사람인 걸 알면 뭐해. 그냥 읽기만 하면 되지.
어째 요새 읽는 이탈리아 소설에서 유난히 무대를 나폴리로 한 것이 많다. 연초에 읽은 쿠르지오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 마지막 장면(이 책에서도 이 장면 나온다. 반갑더구만.)부터 시작해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책 두 권 등등. 근데 나폴리 사람들 기질을 보면 소설 쓰기에 아주 딱 맞춤일 정도라서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전형적인 나폴리의 저소득층 사람들의 주거지. 건물이 촘촘하게 붙어 서 있고, 사람들은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 옷을 빨고, 옥상이나 자기 집 테라스에 빨래줄을 걸고 별의 별 빨래를 다 내거는 좁은 골목길.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는 장면이 이 소설의 무대이다. 하필이면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사람들은 이 동네를 ‘신의 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자 ‘나’는 열세 살 소년. 루이스 어드리크가 쓴 <라운드 하우스>에서 말했듯이 사내새끼 열세 살이란 참 어려운 나이다. 게다가 장소가 나폴리. 이제 대가리 다 컸다고 어른들이 용인을 하는 시기란다. 뭘 용인하느냐고? 한 여자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아, 이제 시작이니까 미리 넘겨짚지는 마시라. 항구에서 하역일을 하는 아버지는 자신이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것을 평생 한이 되어 ‘나’를 초등 5학년까지 보냈다. 의무교육이 초등 3학년까지라서 부모는 내게 가외로 2년을 더 공부시킨 셈이다. 아버지 생각에 이건 좀 더 나은 학력으로 ‘나’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도 이런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여 부모님의 하해와 같은 사랑에 늘 감화 감동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은 에리코 선생이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다. 목수일까지는 아니고,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니 아직 그냥 대패밥이나 톱밥을 청소하고 공방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서 ‘나’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소년이다.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 자기 입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다가 이제 노동조합 주관으로 저녁 강의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중이다. 큰 키에 건장하고 힘센 아버지와 역시 큰 키의 어머니는 서로 인애하는 부부다. 아버지는 내게 부메랑을 선물했다. 오세아니아 원주민이 쓰는 무기. 던지면 목표물을 맞추고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하는 거.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그쪽 지역에서 만들었을까? 나폴리 제일의 목수인 에리코 선생도 이렇게 단단한 나무를 깎을 수 있는 장비도 드물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의 산이 하도 좁은 골목으로 건물 밀집 지역이라서 마음대로 부메랑을 날릴 처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의 공방이 끝나면 집에 와 밥 먹고, 청소하고,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 밤이 되어 빨래하는 아줌마들이 다 내려가 빈 테라스에서 무거운 부메랑을 던지는 연습만 한다. 왼손으로 그리고 오른손으로.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 역삼각형의 어깨가 딱 부러지고 근육도 붙어 완력 또한 만만하지 않게 됐다.
오래 에리코 선생이 가게 한 쪽에 구두 수선공 돈 라파니엘로를 들여 좁은 공간을 맡겼다. 작은 작업대와 신발더미가 쌓인 공간 역시 ‘나’가 청소해야 한다. 돈 라파니엘로는 유럽의 땅끝 어딘가에서 나폴리로 온 빨간 머리와 녹색 눈을 한 작은 체구의 곱사등이다. 자기가 몇 살인지도 모르는 그가 처음 나폴리에 도착했을 때의 이름은 ‘라바넬로’였단다. 그러나 ‘딸기만한 크기의 순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라파니엘로’가 됐다고. ‘나’가 보기에 라파니엘로는 좋은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한테는 신발을 수선해주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나폴리의 진짜 저소득층 사람들은 사철 맨발로 다녔는데, 엣다 모르겠다, 끝 장면까지 이야기하자면, 라파니엘로가 신의 산에서 구두수선공으로 있는 동안 모든 나폴리 주민들은 전부 신발을 신고 다니게 됐다. 그러니 천사 아냐? 천사 맞다. ‘나’는 샌들을 신고 다녔다. 한겨울에도 샌들만 신었다. 다른 신발과 다르게 샌들은 내 발보다 커도, 작아도 다른 샌들로 바꾸어 신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나’를 얼핏 본 라파니엘로는 ‘나’의 샌들도 발에 딱 맞게 수선해주어 기분 좋게 신고 다닐 수 있었다.
나폴리 사람들이란. 아버지는 우리는 이탈리아에 살지만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폴리 말을 하니까. 이탈리아 말을 해야 이탈리아 사람이니, 이탈리아 말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미국에 사는 거하고 마찬가지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엄마가 보태기를, 고국이 별건가요, 먹을 걸 주어야 고국이지. 이 말을 들은 아버지, 그러면 아버지의 고국은 먹을 걸 주는 엄마라고. 이런 엄마가 깊은 병에 들고, 아버지는 심하게 충격을 받지만, 엄마의 병은 부부의 문제라서 아들한테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같은 건물에 사는 마리아. ‘나’하고 동갑내기. 생일은 ‘나’보다 조금 빠르다. 저 위에서 눈치 채셨지? ‘나’와 마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열세 살짜리니까 풋사랑이겠지, 지레짐작하지 마실 것. 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벽은 당연히 만만하지 않다.
이제 본론.
곱사등이 라파니엘로의 곱사등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기형으로 변한 뼈? 그렇겠지.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돈 라파니엘로의 커다란 곱사등에는 언젠가는 펼쳐질 날개가 들어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Montedidio>가 “라파니엘로의 날개”로 변해버린 것. 날개가 돋는 날, 그는 어디로 날아갈까?
날개가 달린 인격체를 우리는 천사라고 한다. 그런데, 라파니엘로의 말에 따르면 천사는 이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유추하면, 이제 곱사등이 터져 날개가 돋힌 라파니엘로는 나폴리 신의 산에 거하는 천사가 된 거 아닐까? 정작 신의 산을 떠야 하는 인물은, 아직 한 번도 비행하지 못한 부메랑을 손에 든 화자 ‘나’이고.
뭐 그렇다는 거다. 우화 또는 은유로 읽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페미나 상을 즐길 만하지 않은 거 같은데, 내가 유럽사람들 정서에 깡통이니 믿지 마시라.
편집이 하도 널럴해서 3백 페이지라도 한나절이면 책 읽고 독후감도 푸지게 쓴다. 그래도 시간 남아 맥주 한 캔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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