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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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시티에서 1981년에 출생한 브렌다 로사노는 사립 가톨릭 학교인 이베로 아메리카나 대학과 미국의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 에세이스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2024년에 발표한 <나비처럼 꿈꾸다>를 포함해 네 편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집 한 권을 출간했다. <마녀들:Brujas>은 2020년 출간 작품. 2014년에 나온 <Cuaderno Ideal: 완벽한 공책>은 <Loop>라는 영어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판해 2019년 펜 번역문학상을 받았다.


  <마녀들>은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이 작품을 끌어간다. 홀수 챕터의 화자는 산펠리페에서 사는 치유사이자 샤먼인 펠리시아나, 짝수 챕터의 화자는 조에.

  멕시코의 저 오지 가운데서도 오지인 산펠리페에서 비둘기, 즉 ‘팔로마’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에 칼이 꽂힌 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멕시코시티의 신문사 기자 조에는 평소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과 폭력, 강간을 다룬 뉴스라든가 사무실에서 듣는 성차별적 농담 같은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는데, 젠더 폭력에 대한 분노가 솟구쳐 이를 취재, 기사를 쓰기로 결심한다. 더하여 그곳에 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언어의 치유자”이자 “생존하는 가장 유명한 치유자”인 펠리시아나도 만나고 싶어한다. 산펠리페 산골까지 전세계 예술가, 영화인, 작가, 가수, 음악가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영혼의 구원자. 그리하여 조에는 펠리시아나를 직접 만나게 되며 세 번에 걸친 ‘치유의 의식’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는 팔로마 피살에 관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펠리시아나와 팔로마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펠리시아나는 깊은 산골 산후안데로스라고스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펠리스베르토까지 대를 잇는 남자들은 모두 산맥에 이름이 난 치유자들이었다. 낮에는 성실한 일꾼이었으며 밤에는 유명한 치유자였던 아버지는 그러나 펠리시아나의 동생 프란시스카가 걷기도 전에 갑자기 닥친 폐렴으로 삶을 접었다. 당시 펠리시아나 본인도 자신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사촌 가스파르한테 치유의 능력이 있으며, 평소에 백부인 펠리시아나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방법을 전수받아 본격적인 치유사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가스파르, 문제의 가스파르는 ‘무셰’의 성 정체성을 지녔다. 각주에 따르면 무셰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이들과,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으며 동성애자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합한 개념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런 가스파르를 할아버지는 ‘새: 동성연애자’를 뜻하는 “파하로”라고 불렀는데, 그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파하로’보다는 더 부르기 쉽고 친근하게 비둘기, 즉 “팔로마”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이렇게 가스파르는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팔로마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또다른 주인공 조에는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여성에 대한 살인과 폭력, 그리고 강간에 치를 떨어 팔로마 살인사건을 취재하려 했다가, 피해자가 남성과 결혼상태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남성의 성염색체와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으니. 그리하여 팔로마 살해사건은 조에의 초점에서 벗어나고 오직 펠리시아나의 치유와 샤먼으로의 능력,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하여 집중한다. 물론 이런 상황의 변화에 따른 갈등은 작품에 나오지 않는다.

  펠리시아나가 세상에 나왔을 때 어머니는 열세 살, 아버지는 열여섯 살 정도였다. 정확하게 펠리시아나는 몇 살인지, 몇 년에 태어났는지 모른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동생 프란시스카는 몇 년 후에 출생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며 언니와 조카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농사와 잠업을 포함해 집안살림 전부를 다스린다. 펠리시아나는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선량한 남자 니카노르와 결혼해 아니세타, 아폴로니아, 아파리시오, 세 아이를 낳아 키운다. 남편 니카노르는 내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왔을 때는 거의 알코올 중독이 되어 있었고, 술 취하면 늘 폭력을 휘둘렀으며, 그렇게 살다가 일찍 죽었다. 이 무렵 산펠리페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이름난 치유사 가스파르는 이름을 팔로마로 바꾸어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면서 치유자의 일을 그만 두었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치유의 능력이 사라지거나 잃게 되는 건 아니다. 그저 팔로마 본인이 생각하기에 남자와 밤을 보내는 거와 치유의 일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그렇게 세상이 어차피 끝나는 거라면, 자기는 남자들과 밤을 즐기는 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 브렌다 로사노의 데뷔작 제목이기도 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 Todo nada>. 

  가스파르 혹은 팔로마가 치유사 일을 그만두자 외눈박이 타데오가 자신은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안 보이는 눈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거짓 치유사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펠리시아나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 미국의 기업가로부터 집을 선물 받을 때 그것이 배가 아파 그녀의 어깨에 총알을 박아 넣을 예정이기도 하다.

  어릴 때 생의 마지막 즈음에 도달한 아버지는 펠리시아나를 데리고 평소에 팔로마가 채집하던 버섯과 약초가 자라는 언덕으로 데려가 보여주면서 이야기했다.

  “펠리시아나, 바로 여기 이곳에 책이 있단다. 우리 것이 아닌 오직 너의 것이란다. 어느 날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거야.”

  펠리시아나가 과부가 되자, 어머니는 또 말했다.

  “딸아, 고개를 들어라. 어미처럼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열심히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앞으로 나아가거라. 아래로 내려가지 말아라. 중간도 절대로 안 된다. 나처럼 위를 지키거라. 앞으로 나아 가거라.”

  선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거치면서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남편 니카노르가 죽은 후에 팔로마, 가스파르는 내게 치유의 길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오렴. 언어와 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 지 알려줄 테니.”

  팔로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사람의 미래를 봐주고, 사랑에 관한 조언을 잘 해주었다. 그가 펠리시아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펠리시아나의 “언어”가 치유자라는 것. 그녀가 “책”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모든 사람은 자신의 책이 있고, 자신의 언어가 있다. 자기 책에 어떤 언어가 쓰여 있어서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위와 성격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펠리시아나는 바로 그 사람의 책갈피에서 문제의 언어를 꺼내는 것으로 치유를 한다. 상대는 수십 년을 살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기억이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던, 어쩌면 생존을 위한 필사의 방어기재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게 했던 언어를 끄집어 내 아픈 자를 치유한다는 것인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프로이트 식 신경정신 치료 방법과 비슷한 것 같다.


  작가 브렌다 로사노는 놀랄 만한 치유사이자 샤먼 펠리시아나가 육체적 고통은 혈통을 타고 내려온 치유능력으로 약초와 버섯 처방을 포함한 의식으로 해소하고, 정신적 고통은 “언어”와 “책”으로 치유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정신적 고통까지 치유함으로써 펠리시아나는 단순한 치유사의 범주를 넘어선 “샤먼”의 단계에 이른다.

  그러면, 장소가 멕시코의 화산지대가 아니라 거대도시 멕시코시티였다면 누가 치유사이자 샤먼이 될 것인가? 브렌다 로사노는 한 작품에 여러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른 주인공 조에의 어머니에게도 이런 샤먼의 기질 또는 특별한 “직감”이 있어서, 여성에게는 자기 안에 조금은 마녀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러나 더 크게, 언어와 책의 주인, 즉 문학이라는 것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효용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정신적)치유는 언어를 통해 이룬다고 로사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주어 이야기한 것으로 보아.

  정말 문학이라는 장르가 현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을까?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른 주인공 조에의 이야기는? 직접 읽으시기 바라며 이쯤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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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16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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