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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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생. 2021년 <악단>으로 문학과사회 여름호 통해 신인문학상 데뷔. 아마추어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수준급으로 잠수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가장 최근 다이빙은 동해바다였고, 언젠가 코론 바다에 다시 가고 싶단다. 필리핀 코론 섬을 말하는 것 같다.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안산, 서울, 발렌시아에서도 ‘거주’했으며 만 스물일곱 해 동안 나름대로 많은 일이 있었다니, 경험도 많았을 테고, 소설을 쓰기 위한 재료도 다른 작가들 보다 풍성하겠지만, 추억이 너무 많아도 나이 들면 쓸쓸한 걸 아는 입장에서 좀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첫번째 작품 <검은 말>이 제일 좋았다. 단편소설 일곱 편 가운데서.

  “지금 당장 검은 말 한 마리를 상상하시라. 그것도 맹렬히 달리는 놈으로.”

  요즘 젊은 작가들 가운데 이렇게 강렬한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하는 것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1세기 일반 가정에서 ‘검은 말’ 감탄할 만한 준마를 보기는 힘들다. 작가의 검은 말도 다른 사물로 변용한다. 당장.

  “그 총, 내가 아홉 살 때 고모의 집에서 발견한 그 검은 총은 말을 닮아 있었다.”

  화자 ‘나’는 아홉 살 때의 ‘나’가 아니라 이제 성년이 되어 당시 사우스타코타에서 살고 있는 고모네 집에서 본 총을 연상했고, 총의 모습을 묘사해보려고 하니 검은 말을 닮았다는 의미다.

  이서아의 작품에 쓰이는 단어를 유심히 살필 것. 아홉 살 꼬마의 부모는 “엄마”와 “아빠”가 아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엄마와 아빠에 비하여 조금 구식이고, 권위가 있고, 권위라는 말은 권력과 그리 멀지 않은데, 권력은 일방적인 물리적 힘, ‘나’의 행동을 구속하려는 압력, 특정한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만들려 하는 갇힌 상태를 의미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진실되다”라는 말은 틀렸다. “진실하다”가 옳은 표현이고, “진실하다”의 피동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급기야 강박이 생긴다. 그러다가 대가리가 커지면 한국어 어문 규범이고 뭐고 간에 자기가 쓰고 싶어하는 단어를 만들어서라도 써야겠다는 강박. 바닷가에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라는 식의 틀린 문법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 권 내내 이런 식으로 글을 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문학과지성사 편집부가 이런 걸 무사 통과시킬 리 없다. 애초에 언어도 규범에 졸졸 따르지 않겠다는 젊은 작가의 뜻을 십분 살렸을 것이다.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이건 배의 현 모습이라기 보다는 사람, 특히 남자 어른의 완력에 의하여 줄에 묶여 있는 상태를 더 강조한다.

  이서아도 권력, 남자, 아저씨 들이 자기 또래에 틈만 생기면 함부로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에 적극 저항한다. 그리고 발렌시아에서도, 레바논 사하라 사막에서도, 필리핀에서도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남자들의 몰양식적인 언어와 성적 비유와 눈길과 이상행동의 기미를 나타내는 행위, 인종차별에 진저리친다. 당연히 자신이 가장 많이 생활해봤을 “한국 아저씨”에 대한 모멸이 제일 심해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작가 자신의 “한국 아저씨”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좋다. 자기가 싫으면 싫은 거니까.


  아직 젊어서 그런지 행위와 표현이 거칠다. 등장인물은, 그러기 위해서 아홉 살의 나이를 주어야 했겠지만, 미국의 공항에서 부모를 따라 탑승하지 않고 활주로를 빠르게 달려가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경찰에 체포당해 조사를 받고, 그 사이 과부가 된 고모가 와서 데리고 가야하는 일도 생긴다. 존경하는 선생이 죽자, 선생이 무연고자라서 며칠 안에 화장 처리된다는 걸 알고는 트럭을 몰고가 안치실에서 시신을 훔쳐온다. 대설예보가 있어 마을에 고립이 되었지만 (당연히 나이든 남자)변태 화가가 남아 있어서 트럭으로 친 다음 다친 육체를 고기 다지듯 트럭을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며 확실하게 숨을 끊어 놓는다. 

  <검은 말>이 좋았다.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더는 말을 않겠다. 차별과 혐오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언제나 나쁘다. 이렇게 활자로, 그게 단 한 번이라도 찍혀 나오면, 글자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자기 몸에 연비를 뜨듯 글자를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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