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친데 대산세계문학총서 187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박상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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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은 1772년,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에 열렬한, 광적인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난 독일의 시인, 문학평론가, 철학자, 문헌학자, 소설가, 동양학자, 기타 등등으로, 그의 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소위 예나 낭만주의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예나 낭만주의라고 별 건 아니고 그저 독일의 예나 지역에서 노발리스, 피히테, 프리드리히 쉴러,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캐롤라인 셸링 등과 낭만주의 서클을 결성해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친 일을 말한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누가 어떤 낭만주의를 주장했는지, 알면 좋겠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으며, 아무리 기억하고 있어도 어떤 시험문제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오직 하나, 이때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죤의 할아버지이자, 독일계 유대 철학자이자, 신학자 모세 멘델스죤의 딸, 도로테아 베이트도 멤버였는데, 슐레겔은 유대교 여성이며 유부녀인 도로테아와 확 불장난을 해버렸고, 원래 이렇게 재미난 일은 북풍의 들판에 붙은 들불처럼 한 순간에 확 번지는 법이라 금방 동네가 시끄러워져, 어마 뜨거워라 싶은 슐레겔이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하는, 쉽게 얘기해서 화끈한 불륜을 변명하기 위하여 1799년에 쓴 유일한 소설이 <루친데>라는 거만 일반 상식으로 알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흠. 알려드리지. 슐레겔과 도로테아 베이트의 화끈한 불륜 이야기는 도로테아의 남편 베이트 씨 귀에도 들어가 둘은 당대의 지성인 커플답게 짝 갈라섰다. 유대교에서는 이혼이 가능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 꾹 눌러 찍은 도로테아는 1804년 프리드리히 슐레겔과의 결혼을 위해 유대교를 버리고 개신교로 개종을 해버린다. 초장에 밝혔듯이 슐레겔 집안이 열렬한, 그리고 광적인 개신교 집안 수준을 넘어서 시아빠 자리인 요한 아돌프 슐레겔 선생이 시인이면서 루터교 목사였으니 지가 결혼하고 싶으면 개종을 안 하고 배겨? 근데 4년 후인 1808년에 도로테아가 남편 슐레겔을 살살 꼬드겼는지, 아니면 바가지 벅벅 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부는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을 해버린다. 목사 집안에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리하여 요한 아돌프 슐레겔 목사님은 열번째 자식인 프리드리히를 호적에서 확 파버릴 수는 없고, 하여튼 온 가족이 협심 단결하여 프리드리히 부부만 나타났다 하면, 눈알을 허옇게 뒤집어 깠다고 한다.

  근데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세계 문화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마추어들은 그냥 이런 가십을 즐기기만 하면 될 거 같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독후감이 갑갑하게 됐다. 아무리 18세기 소설이라 해도 그렇지, 참 재미없다. 이 작품보다 무려 50년 전에 잉글랜드 소설가 헨리 필딩이 발표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60년 전에 나온 새뮤얼 리차드슨의 <파멜라> 등등과 비교하고, 우스개소리로 “재미없는 독일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어떻게 이리도 흥미유발 요인 없이 썼는지 말이야. 물론 자신과 도로테아의 불장난을 변명하기 위해 썼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타령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 시절 소설들이 거의 사랑을 위해 복무했을 때이며, 위키피디아 얘기대로 “낭만주의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이어서 늘 발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당대 수준으로 보면 굉장히 야한 묘사도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이 슐레겔이 남긴 “단 한 편의 소설”이라서 그런지 분명 소설은 소설이되, 소설처럼 읽히지 않기도 하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서간문일 때도 있고, 지문 같은 거 다 뺀 대사로만 구성되어 있는 챕터도 있고, 막 헷갈리기도 한다.

  슐레겔이라고 읽는 율리우스와, 도로테아라고 읽는 루친데를 중심으로 위 단락에서 이야기했듯 열라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한다. 이걸 써 놓으니까 뭐 할 말이 쑥 들어가 버리더라고. 어떻게 하겠어. 이쯤에서 말아야지.

  그런데 하여간 낭만주의란! 아니면 내가 좀 병적이어서 그랬나? 지극히 낭만적인 대목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사학이 자연과 순수함에 대한 변호를 모든 여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여인의 부드러운 가슴속에는 신성한 관능의 성스러운 불꽃이 비밀스럽게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황폐해지고 훼손될지언정 결코 완전히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p. 42)


  하여간 수컷들이란. 여인의 가슴에서 신성한 관능과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불꽃을 발견하는 게 낭만주의라니. 흠. 그건, 슈레겔 선생, 불꽃이 아니라 그건 그냥 지방fat일 걸? 그게 남자들의 오랜 로망이란 건 알지만, 이젠 그런 얘기 좀 그만 읽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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