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 잡탕, 혹은 샐러드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2
장휘 지음, 김우석.김유화 옮김 / 연극과인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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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연극과인간’의 중국현대희곡총서 시리즈 22번째 작품. 이 작품을 검색해보면 82년생 극작가 장휘(張慧)의 데뷔작이라 하기도 하는데 인터넷 정보가 늘 그렇듯 믿기는 힘들다. 장휘는 중국 연극판의 인재 풀pool이기도 한 중앙희극학원 연출학과를 졸업하고 공부를 계속해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도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스무 편에 가까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단다. 우리나라에도 “희곡 우체통 낭독회”나 “서울 연극제 희곡집” 또는 “봄 작가, 겨울 무대” 같은 청년 극작가나 연출가의 창작물 지원 프로젝트가 있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비슷한 기획이 있어서 우리보다 훨씬 폭넓은 지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가운데 한 단체가 굴로우서(鼓樓西) 극장이며, 이 극장의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2021년 9월에 초연해 대성공을 거둔다. 이어 제8회 우쩐 연극제 특별 초청작으로 참가했고, 역자는 이를 “파격적”이라고 했으니 상당한 규모의 축제인 듯하다. 이어서 “신경보新京報” 즉 “시나 뉴스”가 선정한 2021년 중국 10대 연극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굉장한 성공이라고 해도 좋겠다.

  시나 뉴스의 “2021년 중국 10대 연극” 심사위원 가운데 한 명인 듯한 중앙연극아카데미 연극문학과 학과장 펑타오는 “과거, 현재, 미래를 가리키는 세 개의 단절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젊은 연극인들의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다.”라고 말한다. 작품의 제목에 세 가지 음식, 보통의 시민들이 흔히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먹거리인 비빔, 잡탕, 그리고 샐러드가 들어 있으니 Covid를 겪는 일반인들의 닫힌 상태를 세 가지 양식으로 그렸다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그렇다고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세 부분으로 똑 잘라서 설명하려고 한 것에 관해서는, 완전한 반대는 아닐지언정 학과장님 하신 말씀이 맞다고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스토리를 이야기해보자.


  첫번째 장면의 제목은 쉬슈관(滸墅關). 우리 발음으로 ‘호서관’이다. 등장인물은 등장순으로 남자와 여자. 15년 전에 이혼한 왕년의 부부. 남편의 취미가 고고학 발굴 현장에 가서, 전문가가 아니라 딜레탕트 취미 생활자니까, 적극적으로 학자들과 함께 유물을 발굴하는 건 아니고 잔일을 도와주며, 발굴한 자료를 보고 과거 시대와 인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면서 즐거워한 수준이다. 여자는 이런 남편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부부가 그러하듯 대화가 점점 사라졌다. 과거의 유적지인 쉬슈관으로 탐사여행을 떠난다기에 전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정말로 쉬슈관에 가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뒤를 밟았는데, 기차역 큰 시계탑 아래에서 한 여자를 만나 함께 역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나서,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이혼을 요구했던 거였다. 쉬슈관, 호서관은 (맹상군 열전) 식객이 닭 우는 소리를 내 맹상군이 무사하게 빠져나가게 할 수 있었던 함곡관이나 촉한의 수도인 성도를 지키던 면죽관 같은 장대하고 높은 군사용 관문이 아니다. 물품의 이동과 통과에 따라 일정 비율의 세금, 즉 관세를 걷는 상업적 용도의 관이라서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설치되어 크게 고고학적으로 발굴할 것이 없어 보인다. 호서관은 19세기 청나라 때 탐관오리들이 하도 착복을 해 세수가 모자란 것이 국가적 문제가 된 곳이란다. 내가 중국사람도 아니니 믿지는 마시라.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헤어진 부부가 어떤 일로 15년 만에 한 방, 아니면 적어도 한 공간에 머물게 되었으며 14일 동안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에 떨어졌을까? Covid19 시절의 14일 격리조치를 떠올리면 정확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잠복기가 14일이라서 지금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면 14일 동안 완전히 격리 생활을 해야 했던 것, 다 기억하시지?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말이지. 나는 읽으면서 도무지 이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15년 전에 이혼하고 여태 따로 살아온 남녀가 아무리 Covid 상황이라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 집에 딱 둘 만 있을 수 있을까? 예전에는 서로 말, 대화 없는 부부였지만 이제 옛 남편이 도망가려 해도 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처지라 어쩔 수 없더라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내는 15년, 아니 150년이 더 흘러도 전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지겹게도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의심하고, 질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쉬슈관엔 간 건가? 그 여자하고 함께 간 건가? 갔다면 거기서 뭘 했을까? 남편은 미치기 일보직전이 되어 당장 트렁크에 되는대로 옷가지를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결코 현관문을 열지 못한다. 이렇게 단절된 사람들. 하지만 알고 보면, 남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가 이미 죽은 남자의 혼령을 불러냈든지, 자기 의식 속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남자를 스스로 만들어냈는지 그건 감상자 마음대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장면을 중앙연극아카데미 펑타오 학과장은 “과거”라고 말한 거 같은데, 여자의 생각만 과거이지 처한 상황, 펜데믹이 아니었더라면 여자가 남자를 호출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아 현재성을 삭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펑 교수에게 반박하기도 어렵기는 하지만.


  두번째 “잡탕” 장면의 소제목은 “아치阿齊”다. 진짜 이름은 치밍(齊明)이지만 편하게 아치라고 부른다. 아치 역시 갇혀 있다. 어디에? 교도소에. 아치로 말하자면 여태 살면서 돈 버는 일이라고는 너구리를 죽여 가죽을 벗기는 일 딱 하나였다. 갑자기 너구리 가죽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한 번에 수백 마리의 너구리 가죽을 벗겨야 하는 시기가 있어서 급하게 임시 일꾼을 구했을 때, 친구 따라 갔다가 눈치 없이 토란 찜닭을 아치 혼자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짐승을 죽여야 하고 몸이 식기 전에 가죽을 벗겨야 하는 일을. 이것 말고 아치가 하는 건 도둑질이었다. 특히 전기 자전거를 좋아해 가히 전기자전거 전문 절도범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치는 도둑질을 한 다음에 벌판의 풀밭에서 전기자동차를 베고 피로를 풀기 위해 한바탕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다.

  독자가 이걸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면, VR 안경을 쓴 기자가 교도소에 취재 왔다가 아치를 인터뷰한 것. 그러니까 기자와 감옥 안 접견실이라는 한 공간에 있으면서 비록 인터뷰 형식이지만 대화를 하고 있건만, 기자에게 이게 진짜 현실은 아니다. 그저 VR 스코프를 통해 바라보는 가상 현실일 뿐.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경쟁 시험을 통해 신문사 기자가 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기자와, 본업이 절도이며 유일하게 해 본 일이 동물을 죽여 가죽을 벗기는 것이었던 청년은 동시대를 살고 있으되 서로의 사이에는 견고하고 높아서 완벽한 단절, 벽이 있을 뿐이다. 이 벽을 무너뜨리는 일은 서로 공감할 무엇인가를 나누는 일일 터. 교도소에 들어온 것을 일종의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아치는 여전히 수많은 너구리의 목에 줄을 걸고, 졸라 죽이고, 매달고, 한 쪽에 구멍 하나씩 내고, 거기에 손가락을 걸어 당기고, 찢어서 흠 없고 온전한 너구리 가죽 한 장을 손에 든 듯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살고 있다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체감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도 점점 아치의 도살과 각피 과정에 동의하면서 견고했던 벽은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고, 드디어 관객 앞에서 VR 안경을 벗는다.


  세번째 장면 역시 단절된 공간. 바로 무대다. 무대가 소통의 장소라고? 가끔 아닐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의 샐러드 파트가 그렇다. 무엇보다, 언어가 박탈되었다. 세번째 씬의 소제목이 그래서 “무언극”이다.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나타나는 극장 밖의 남자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오고, 공연장에 입장하며, 역시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무대에 오른다. 여기서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 AI. 연극의 기본은 소통이니 AI와 남자 역시 소통을 해야 하리라. 이들에게 가능한 것은 자판을 매개로 한 화면. 제일 먼저 AI와 남자의 대화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지, 감염되지는 않았지만 발열이 나타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 뭐 이런 것들이다. 그러면서 남자를 위시한 인간은 점점 AI에 예속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선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라서 그런지 예술가들의 AI에 대한 경계 또는 공포 역시 우리나라보다 더 큰 거 같다. 결국 거대한 오르골 위에서 남자와 여자, 즉 인류와 AI가 함께 끊임없는 원을 그리며 춤추는 인형으로 변하면서 지구엔 일식이 시작되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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