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거리
오타 요코 지음, 정향재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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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시체의 거리>를 보고 으시시, 일본 전래 민담에 유난히 음산한 귀신이 많이 등장한다. 일본 시골에 가면 어떻게 그리 하나같이 검정색 나무집인지. 집마다 묘지도 있고 귀신 섬기는 작은 제단도 있어서 아마 세계에서 가장 귀신이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야기인 줄로 지레짐작했다가 책 소개 읽어보니 히로시마 원폭의 참혹한 실상을 그린 작품이라 해서 호기심 돋았다. 지만지 책이 엄청 비싸 직접 사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작가 오타 요코는 1903년 또는 1906년에 히로시마 현의 부유한 지주 후쿠타 씨와 두번째 아내 토미 여사 사이의 맏딸로 태어났다. 토미 여사는 <시체의 거리>에서 요코와 여동생, 여동생이 낳은 갓난 딸과 함께 피폭 당해 살아남았다. 작가는 원자폭탄 피폭 경험을 바탕으로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50년대 중반 이후엔 주로 어머니와의 관계, 겪을 일을 소재로 사소설적 경향으로 선회한다고 한다.

  토미 여사는 오타의 친부 후쿠타 씨의 두번째 아내이며, 1910년 오타가 일곱 살 또는 네 살 되던 해에 이혼하면서 어린 아이를 아무도 키우지 않고 오타 씨 집의 양녀로 들여 후쿠타 요코가 오타 요코가 되었던 거다. 토미 여사가 재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삼혼을 해서 심신이 안정됐을 때 다시 요코를 데려와 함께 살았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다.

  오타 요코는 1939년에 지식계급총동원 현상에 <해녀>를 응모해 입상했고 아사히 신문 창간 50주년 기념 현상공모에 <벚꽃의 나라>로 또 입선했다. 시대가 시대이니 이 작품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과 중국침공 등 전쟁 정책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 세월이 흘러 1945년 8월 6일이 오고, 오타가 사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지상 5백미터 상공에서 터져 여태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재앙을 경험한 후에 <시체의 거리>를 쓰면서 군국주의의 맹목적성과 후진성을 격하게 주장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쩔꼬. 오타 요코는 자신의 초기 대표작이자 현상공모 수상작인 두 작품을 명함에서 파버리게 된다. 이런 변신은 일본 독자로 하여금 오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사람이 다 그렇지 뭐. <해녀>하고 <벚꽃의 나라>를 응모할 당시에 혹시 알아? 밥 사먹을 돈도 없을 정도로 배고팠는지? 아니면 일단 말석이라도 문단에 한 자리 깔고 앉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강렬했는지. 1939년에 전쟁에 질 줄 알았던 일본인이 몇 명이나 됐겠어? 미국하고 붙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을 걸? 그렇다고 이이가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세월이 지나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거 이상은 아니다.


  이 작품은 1945년 11월에 원고를 끝냈다. 이 시절 유럽에서는 완전히 전쟁이 끝나 뉘른베르크 재판을 진행하던 시기였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 상공에서 터지기 석달 전인 5월 8일에는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에 항복했고, 5월 9일엔 소련에도 항복해 전쟁은 폐허만 남기고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 1941년 12월에 겁 없이 진주만을 공습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열도를 제외한 모든 도서를 점령당해 사실상 항복선언만 남은 상태였지만 군부의 수뇌부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인상적으로, 폼나는 항복을 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국민에게는 마지막 한 명까지 죽창을 들고 싸우자고 격려했다. “하늘에서는 공중요새 B29가 소이탄을 퍼붓는데 죽창이라고?” 누가 이 한 마디를 했다가 일본 육군의 분노를 사 코피 깨나 터졌다. 이건 실화다. 국민은 절대로 일본의 왕이 항복선언을 할 줄 몰랐으며, 만일 패전을 한다면 일왕과 군부의 수뇌들은 전부 항복 대신 할복을 선택할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미국이 왜 일본에 원자탄을 터뜨렸는지 진심이 궁금하다. 전쟁이 지긋지긋해서, 독일이 항복하자 오히려 갑자기 몰려오는 허탈감에 휩싸여 얼른 전쟁을 끝내야겠다는 조급증이 오히려 더해지는 바람에 그냥 한 방에 보냈을 거라고 짐작한다. 말이 쉽지 국토의 80퍼센트 이상이 산악지역으로 되어 있는 일본에 정규군이 상륙하면, 일본 군부가 쉽게 저항을 포기하겠느냐 하는 우려, 상륙작전에 따른 우군의 피해도 감안했을 거라고 본다. 흔히 생각하는 피부색 차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여튼 1945년 8월 6일 아침에 B29가 딱 한 대 모습을 드러냈다. 공습경보도 울리지 않은 것도 겨우 한 대의 폭격기로 히로시마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해서 그랬을 지 모른다. 그럼에도 시민들 중 몇몇은 폭음을 울리며 도시 상공에 진입한 폭격기에 눈길을 좇았는데, 기체에서 검은 색의 물체 하나가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수트, 낙하산에 매달려 동동 뜬 채로 낙하하고 있는 거였다. 거 참 신기한 일일세. 그러더니 한 순간에 번쩍, 파란 빛이 히로시마 전 지역에 섬광을 뿌리면서, 피해자들이 확실하게 말하건데, 우리가 경험해서 아는 불길이 아니라 그냥 확, 한 방에 뭔가가 지나가는 섬찟한 느낌이 들었으며, 이때 가까이 있던 시민은 그 자리에서 새까맣게 4도 화상으로 타버렸고, 3도 화상도 있었지만, 많은 시민들은 2도 화상을 당했다. 물론 근거리에서 정말로 번쩍, 하는 순간을 본 사람들은 즉각 결막, 각막, 홍체, 시신경에 영향을 받아 앞을 볼 수도 없었고.

  이후에 오는 건 폭풍 형태의 충격파. 거대한 충격파가 히로시마 시내의 건물을 휩쓸어 유리란 유리가 다 터져버리는 바람에 숱한 사람들이 자상을 입는다. 피폭 후에 또다른 공습이 있을 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직선거리 23킬로미터 떨어진 구지마에 도착한 ‘나’ 오타 요코 역시 자상을 입었다. 요코의 동생도 자상. 구지마의 개업의사 S 선생의 말에 의하면 신기하게도 자상 환자 대부분이 상처가 가로로 나 있다는 것. 압력이 위에서 아래로 가해져 유리가 횡으로 날아간 거 아닌가 추측한다.

  이런 건 내 기억으로 다시 쓰기가 쉽지 않다. 내용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처음에는 그것이 화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불이 나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저렇게 데었을까. 이상하고 기묘한 모습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슬프고 비참한 것이었다. 센베이(과자) 기술자가 쇠로 굽는 기계로 한꺼번에 센베이를 구운 것처럼 모두가 완전히 똑 같은 모양으로 화상을 입었다. 일반적인 화상과 같이 붉은 기가 있는 부분과 허연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구웠다기보다는 그을린 것 같고, 그을린 감자 껍질을 홀딱 벗긴 것같이 그 잿빛 피부는 살에서 늘어져 있었다.” (75쪽)


  그리고 처음 듣는 원자폭탄증에 관하여. 작가가 고향 구지마에 돌아와 알게 된 ‘긴찬’이라는 이름의 청년을 이렇게 묘사한다.


  “머리가 빠지고, 치아는 치주농루(齒槽膿漏. 한자어의 우리말 발음은 ‘치조농루’)같이 흔들흔들 무너져 내리고, 그리고 바짝 말라 찍은 나무 같다. (중략) 전신의 피부는 폐결핵 말기인 사람과 같은 색에다, 더욱 더 절망적으로 불투명한 구운 가지와 비슷한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중략) 이렇게 되어 버리면 2~3일, 길어도 5일밖에는 살지 못한다,”


  책의 뒤편에 나오는데, 2도 화상을 입은 자와 3도 화상이지만 넓지 않은 부위의 환자가 오히려 더 생존하는 반면, 자상 환자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1945년 11월 현재 과학자, 의사의 지식 수준으로는 이런 결과가 화상 환자의 피부에 있던 우라늄 잔분들이 열에 의하여 타버려 날아간 결과라고 추론한다. 글쎄, 아마 아닐 것 같다.

  이 외에도 아무런 피폭을 받지 않았지만 히로시마를 구원하러 온 지원자들 역시 픽픽 쓰러져 죽었단다. 비록 즉시 죽지는 않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증세와 함께 그냥 시름시름하다가 간다는데 틀림없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그랬을 것이다.

  또한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 공황도 무시 못하리라. 하지만 때는 일본이 항복선언을 하고 이에 따라 온갖 험하고 복잡하고 바쁜 상황이 들이닥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까지 관심을 쏟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게다가 천년이 넘게 수동적으로, 지배층이 하라면 할 뿐이었던 일본인 특유의 신중함은 히로시마의 불행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내용이다. 당연히 반전, 반핵 의식도 좀 들어 있고 그런데, 알지 못했던 피폭 광경을 알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큰 울림은 덜하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촘촘한 필터를 사용해 평가하려는 건 삼가했으면 좋겠다. 1945년 11월에 쓴 작품이다. 아직 피해자들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한 상태인 것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오타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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