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목요일
존 스타인벡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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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연말에 전편 격인 <통조림 공장 골목>을 읽자마자 <달콤한 목요일>이 다음 차례 스타인벡이 될 것이라고 확정했다. 그리고 석 달 만에 읽었다. 3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캐너리 로 유일의 식품점 사장 리청이 재산을 싹 정리해 현금으로 바꿔 남태평양 섬으로 들어갔다. 남은 평생을 신선처럼 지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엉뚱한 사고뭉치 영웅 맥이 생각하기를, 지금쯤 야자나무 그늘에 걸어놓은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고 있을 텐데 틀림없이 리청의 옆엔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옷만 입은 남태평양 미녀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을 거라나? 그리고 나중에 ‘세계대전‘이라 불릴 큰 전쟁이 나서 옛 어분 창고였지만 엉뚱하게 “팰리스 플롭하우스 앤드 그릴”이란 이름의 맥 일당 숙소 일원이었던 게이가 폭격기를 몰고 런던 근교를 날다가 대공포화를 맞아 폭사해버렸다. 마음 약한 플롭하우스 일당들은 게이의 침대와 물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서 그가 펼쳐 놓은 책도 여태 26페이지를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나 할지 원. 화이티 No.1은 오클랜드 군수공장에 군역 대신 들어갔다가 이틀만에 다리를 다쳐 석달 동안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다 의병 제대했고, 화이티 No.2는 제1해병대를 지원해 교체요원으로 복무했다. 청동성장星章을 받았다고 하지만 훈장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작은 유리병 속에 1쿼트의 브랜디를 부어 절인 적군의 귀를 가지고 있다가 검열관에 빼앗긴 걸 안타까워한다. 미친 놈인 거 맞다. 맥은 나이가 많아 징집대상이 아니었고, 에디는 진짜 나이보다 신체 나이가 워낙 많다고 측정이 되어 부적합 판정을 받고 아직도 ‘와이드 이다’의 바텐더를 하고 있다. 술꾼들이 남긴 술을 주종에 관계없이 단지에 담아 가득 차면 땅 속에 묻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팰리스 플롭하우스 앤드 그릴”이란 이름을 지은 장본인인 헤이즐은 사람이 조금 모자라 여전히 아무 생각 없다.

  후덕한 포주, 훌륭하고 큼지막한 여장부 도라 플러드는 유곽 베어 플래그를 유산으로 남기고 잠 자다 죽고 말았다. 유곽은 친언니 플로라가 물려 받았는데,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맞아서 플로라 역시 동생 도라 못지않게 선한 품성을 지닌 포주다. 매춘 아가씨들에게 교양 교육을 시키고 욕을 금지하며, 열두세 개에 달하는 식탁의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을 익히게 하는 등 몸 파는 아가씨들에게 숙녀교육을 지속적으로 시켜 정상적인 결혼을 통해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안다. 아가씨 한 명이 결혼해 나갈 때마다 벽에 사진과 더불어 별을 하나씩 붙여 놓는다.

  리청이 사라진 식료품점은 멕시코인 조지프 앤 메리 리바스가 인수받았다. 터프한 인간으로 조지프 앤 메리에 비교하면 맥 패거리는 순결하고 성실한 어린 양 수준이다. LA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십대들의 길거리 깡패 조직을 이끌면서 동산current asset의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즉 내 돈이 내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이었다. 12세에 소년원에 들어가 2년 후 퇴소할 때는 현존하는 모든 범죄 수법을 섭렵했으나 하여간 외모는 슬프고 순진해 보이는 눈을 가졌다. 돈을 모아 과거를 정리하고 몬터레이에 정착해 존 스타인벡 이웃에 살게 된 사내.


  전편 <통조림 공장 골목>에서 맥과 더불어 투 톱을 이루었던 닥은 <달콤한 목요일>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쟁이 터져 징병이 되는 바람에 웨스턴 생물학 연구소를 부자 친구 올드 징글블릭스에게 맡기고 기술하사관으로 복무했다. 무제한 공급되는 군용 술과 친구 사귀기에 여가시간을 몽땅 사용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재고 문제를 해결하는 보직을 맡아 2년을 더 복무하고 제대해 연구소에 복귀했다. 그동안 부자 친구 징글블릭스가 거의 손을 놓고 있어서 폐허가 된 생물학 연구소를 앞에 놓고, 금방 군역을 마친 닥은 좀처럼 길을 찾지 못한다. 전에는 부드럽고 유쾌한 삶을 영위하며 음악과 다양한 해양생물을 수집/배양해 대학과 박물관에 납품을 하며 연구하는 데 자신의 인생을 걸었었는데, 이제는 닥 안에 세 명의 닥이 있어서, ①연구, ②생각해보고 결정해, ③외로워,를 연발하고 있다.

  뭐라? “외로워”를 연발한다고? 그럼 사랑, 아니면 적어도 여자가 문제겠네? 그렇다. 여전히 인간이 이룩한 업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두 가지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바흐의 <푸가의 기법>이란 생각은 변하지 않았건만, 통조림 골목 시절엔 상상도 하지 못하게, 젊은 여자와 640킬로미터 떨어진 라호야로 여유롭고 긴 채취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가는 도중, 오는 도중 쉼 없이 두족류 생명체인 문어 이야기만 죽자사자 해서 상대 여성으로 하여금 정이 똑 떨어지게 만들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해 문제지만.

  새로 수지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몬터레이에 도착한다. 낮은 코에 큰 입을 가진 예쁜 아가씨로 21세에 키 165센티미터이며,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 엣다 모르겠다. 확 깨놓고 말해, 수지 아가씨는 당장 먹고 잘 곳이 없어서 애칭 ‘포나’로 불리는 플로라 여사가 운영하는 유곽 베어 플래그에 자진해 들어가 매춘부가 되는데, 매춘부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 또 처음 알았네, 프로 매춘부는 가슴이 크면 불리하단다. 산전수전 다 겪은 조지프 앤 메리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믿어야지 뭐. 그가 몬터레이에 도착해 간이 음식점인 포피 식당에 들어가자 곧바로 수지의 뒤를 따라 식당에 들어서는 이가 있었으니 몬터레이의 선량한 경찰 조 블레이키. 그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하느님이냐고? 아니, 아니. 워낙 좁은 마을이라 동네 경찰 또는 보안관은 누구네집 빨래하는 날짜까지 훤하게 알고 있는 거다. 식당 주인 피곤한 엘라한테 커피 한 잔을 주문한 조 블레이키는 수지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에, 만일 돌아가고 싶은데 차비가 없으면 기꺼이 꾸어 주겠다고 말한다. 괜찮다고 하고 취직한 곳이 베어 플래그.

  <통조림 공장 골목>을 읽은 독자는 안다. 베어 플래그가 식료품점과 공터 하나를 경계에 두고 반대편에 있으며, 이 가게들과 삼각형을 이루는 꼭지점에 우리의 닥이 사장으로 있는 웨스턴 생물학 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연구소에서 연구가 안 되어, 혹은 어떤 연구를 할까 고민중인, 그것도 아니면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타령을 하던 닥이 2층에서 무심코 내려다보는 거리에 발랄한 발걸음의 베어 플래그 아가씨의 뒷모습이 보인 것은 당연하겠지? 아가씨가 팔랑팔랑 길을 걷다가, 제발 조금만 더 계속 앞으로 죽 갔으면, 하는 닥의 바람과 달리 모퉁이를 돌아 모습이 사라져도 닥의 눈에는 치마와 종아리와 어깨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대강 그림을 그려지는 거다.


  하나 더. 악당이 살지 않는 이 작은 동네 통조림 공장 골목에 대하여. 전쟁은 몬터레이 풍경도 바꾸어 놓았다. 자국 청년을 징집해 유럽과 태평양으로 보낸 미국은 자국 국민뿐만 아니라 생산활동을 할 수 없는 유럽인들도 먹여 살려야 했다. 당연히 아시아인은 중요 고려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미국에서도 생산활동에 참여할 노동력이 줄어들었으니 이걸 우짜? 무조건 대량 생산. 농산물은 당연하고 수산물도 어획량 제한이 철폐되어 어부들은 생선의 씨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통조림 공장이 하루 스물네 시간 힘차게 돌아가다가, 돌아가다가, 돌아가는 듯했는데, 어느 새 조금씩 가동 시간이 줄어들더니, 드디어 거리에 모터 도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골목은 텅 비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생산활동이 줄어들면 기업의 이익이 줄고, 그래서 정부는 걷어들일 세금이… 물에 빠진 할배 그거처럼 쪼그라들어버렸다. 정부가 가만히 있나 어디? 세무서는 새로운 세금원을 찾아내기에 혈안이 되고, 집집마다 생각도 못했던 세금 고지서를 받기 시작하자, 천하에 가진 것 없는 맥이 엉뚱한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팰리스 플롭하우스 앤드 그릴이 떠나버린 중국인 리청이 소유하고 있었으니 분명히 조지프 앤드 메리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그게 자기 건물인지 몰라 월세 받을 생각을 안 하고 있지만 세무서에서 청구서가 날아들면 득달같이 월세는 물론이고 자기가 가게를 인수했던 시점부터 오늘 이때까지의 월세를 추징해 달라고 할 게 분명하다, 분명할까? 아마 그렇겠지? 그러면 아무 수도 없이 그냥 쫓겨나야 한다. 함부로 덤볐다가는 몬터레이 뿐만 아니고 캘리포니아의 멕시칸 커뮤니티에서 한 성깔 하는 종족들을 불러오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하니 이걸 어쩌나. 이렇게 저렇게 맥은 조금 부족한 두뇌를 짜기 시작하고, 이 계략에 다른 의도로 선량한 포주 포나가 가세해 또 한 편의 난장판, 당연히 전편과 마찬가지로 실패로 끝날 운명인 난장판을 준비한다.

  이때까지도 <달콤한 목요일>의 히든 히어로, 백치 천사, 헤이즐의 기가 막힌 마지막 한 방이 뭔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걸? 그거 읽으면서 조용한 평일 열람실에서 미친 놈처럼 키득거렸다. 역시 스타인벡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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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26 0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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