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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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다니아 쉬블리는 1974년에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태어난 범띠 여성이다. 이스트런던 대학에서 미디어 문화 연구로 박사를 받고 베를린 EUME 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노팅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팔레스타인 비르제이트Virzeit 철학과에서 파트 타임 교수로 있다. 이이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17년에 팔레스타인에서 발표한 <사소한 일>이 2021년에 영어, 독일어 등 기타 언어로 번역 출판한 이후이며, 독일어 번역본이 2023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문학상을 받기로 확정되었다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해 원래 이스라엘/유대인한테 벌벌 기는 시늉을 하는 독일 관계자로부터 수상이 취소된 일이 국제적인 문젯거리로 확산되기도 했다. 나도 이 사건을 기억해 혹시나 해서 검색했고,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아 얼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내가 작가에게 굳이 범띠 “여성”이라고 한 것은 2부작인 짧은 소설의 1부 주인공이 남성이고 그것도 군인인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게다가 군인이라니.


  1부는 1949년 8월 9일의 일이다. 쉬블리는 이런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루만 빼고는.”

  시작부터 내 신경을 확 끌어당긴다. 기막힌 서두였다.

  그러나 독자는 팔레스타인 작가가 쓴 1949년이라면 그들의 내력을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1년 전인 1948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조금씩 모여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해 점령해버린 해이며, 이후 ‘알나크바’ 즉 대재앙이라고 불리는 사건, 약7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해버린 악몽 같은 해였다. 5월에 영국의 위임통치기간이 끝나고 이스라엘 공화국임을 선포하자마자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전쟁 피로감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지원 없이 재래식 무기로 아랍 여러나라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운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까지는 뭐라하기 힘든데, 이후 그들은 자신이 점령한 지역을 말끔하게 소탕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1949년 8월 9일에 건조한 네게브 사막에 도착한 이스라엘 육군 소대는 두 가지 임무를 받고 먼 남쪽까지 내려왔다. 이집트와의 남쪽 국경, 휴전선을 지켜서 아무도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일. 그리고 네게브 사막 남서쪽을 샅샅이 뒤져서 잔존 아랍인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일이다. 전쟁 전, 그러니까 작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인들은 아랍인은 물론이고 유목민인 베두인과도 대단히 바람직한 관계를 맺었다. 사막의 이스라엘인 개척지에 베두인들이 찾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민트 차를 나누어 마실 정도였다니. 그러나 전쟁 중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이제는 엄연한 이스라엘인 자신들의 나라 땅 안에 있는 아랍인종들은 당연히 제5열이거나 정보원의 끄나풀 정도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모든 아랍인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교 한 명, 부사관 몇 명과 사병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파견군은 이집트와의 휴전 선언이 이루어진 이래 이렇게 먼 남쪽까지 도달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소대로서 지역 안전 유지를 위한 모든 책임(이라는 명목하의 과하게 넘치는 권한)이 주어진 거였다. 즉, 소대는 국가라는 권력을 대신해 이 지역에서 집행하기 위해 도착한 것이며, 언제나 권력은 주어진 순간부터 악으로 전환되기 십상인 법이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사막의 소대, 이 가운데 특히 최고 지도자이자 단 한 명의 장교인 ‘그’를 관찰자 시점으로, 가장 건조한 방식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남아 있던 것은 두 채의 오두막과 부분적으로 파손된 세번째 집 벽의 잔해 뿐이었다. 장교는 오두막 하나를 숙소로 쓰고 지휘소 천막 하나와 부대원의 취사용 천막을 세우게 했으며, 옆에 병사용 막사 세 동의 천막을 설치하라고 지시한다. 오두막에 들어간 장교는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셔 옷을 벗고 몸을 닦는다. 얼굴, 가슴과 복부, 손이 닿는 곳까지 등을 문지르고 이어 다리까지 꼼꼼하게 씻는다. 이후 사병들을 불러 군기를 확실하게 확립할 것과 특히 개인위생에 신경 쓸 것을 주문한다. 면도도 반드시 하루에 한 번 할 것까지. 이후 차를 타고 첫번째 순찰을 나가지만 극심한 더위 속 모래 언덕 사이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날 밤, 더위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낸 다음이라 깊은 잠에 빠진 장교는 잠결에 자신의 허벅지에 뭔지 모를 물것 하나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촉감으로 느끼면서 잠을 깬다. 어떻게 할까를 잠시 궁리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면서 물것을 손으로 쳐 떼 버리고 랜턴을 켜서 확인을 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이 잠깐 사이에 그것이 허벅지를 물었는지 허벅지에 아주 작은 빨간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극심한 고통을 받기 시작한다.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것 같은 고통.

  이후 장교는 극심한 위통과 등에 경련이 나는 등 심하게 애를 먹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사병들 앞에서는 조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위생병의 도움 없이 자신이 따로 가지고 있는 소독약과 연고, 거즈와 붕대를 이용하여 치료하고자 한다. 이런 상처를 숨기고도 그는 자신의 임무에 조금의 소홀도 없이 매일 차를 타고 순찰을 돌며, 밤이 내려도 혼자 총을 메고 진지 주변을 두루 돌아다니며 경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11일에는 물린 곳의 가운데엔 고름이 차고 둘레에는 붉은 원, 푸른 원, 그리고 검은 원이 두르고 있는 상태에 이른다. 그럼에도 밤엔 홀로 소총을 메고 사막으로 나갔다. 새벽에 되자 돌연한 발작을 시작했고 결렬한 오한과 가쁜 호흡, 기침과 트림에 이은 구토까지 경험해 12일 새벽에 진지로 돌아온다. 이제 시야에는 검은 점과 회색점이 날아다니는 비문현상도 일어난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12일 오전에 장교는 다시 차량 순찰을 나가서 계속 직진할 것을 주문한다. 모래 언덕을 몇 개 넘으니 나무 몇 그루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빈약한 풀줄기 사이에 얕은 샘이 있고, 그것을 끼고 한 무리의 아랍인과 여섯 마리의 낙타,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있다. 그와 운전병은 그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해서 아랍인 남자 전부와 낙타 여섯 마리 모두를 쏴 죽여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흐느끼는 소녀 한 명과 개. 이들을 차 뒤편에 싣고 부대로 돌아오는 장교.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인들이 습격할 수도 있어서 특별 경계 명령을 내린 장교는 진지 주변에 추가로 병력을 투입하고 소녀는 주방에서 일을 시키도록 하겠다고 하며 일단 옆 오두막에 가둔다. 숙소에 돌아온 장교는 또 옷을 벗고 깨끗하게 몸을 씻고 잠깐 쪽잠을 잔다. 이 사이에 병사 몇 명이 벌써 소녀한테 손을 댄다. 소녀가 울면서 소리치는 걸 보고 단번에 상황을 짐작한 장교는 병사들을 불러 양단간의 결정을 내리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소녀를 진지 식당에서 일하게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녀를 가지고 놀든지.”

  우물쭈물하던 병사들은 모두 소녀를 겁간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지만 장교는 소총을 짚으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모든 병사가 보는 앞에서 소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수조에 호스를 연결해 샤워를 시킨 후 휘발유로 머리를 마사지시켜 머릿니를 제거한다. 밤이 오자 장교는 자신의 오두막에 야전 침대를 하나 더 설치하게 하고 소녀를 들여 잠을 자다가 휘발유 냄새가 지독하지만 겁탈을 하고 만다. 거부하는 소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하게 친 후에.

  다음 날, 1949년 8월 13일. 소녀를 다시 원래 오두막으로 보낸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두막으로 달려가 순서에 의해 겁탈을 하고, 장교의 허벅지 물린 곳은 하얀색과 분홍색과 누런 색의 고름이 한데 섞인 썩은 살의 작은 구덩이로 변해 그곳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난다. 정작 장교 자신의 악취는 베두인 소녀의 머리에서 나는 휘발유보다 훨씬 더 지독했던 거였다. 이날 오후, 장교는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소녀와 함께 다시 사막으로 간다. 휘발유가 아까워 진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해 가로 0.5미터, 세로 2미터의 구덩이를 파라고 지시하니 이 말은 들은 소녀는 울면서 장교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그러나 장교는 소녀의 머리통에 권총을 발사하고, 아직 채 숨이 넘어가지 않은 소녀에게 부사관이 여섯 발을 더 발사한 다음에 구덩이 속에 묻으면서 1부가 끝난다.


  2부는 이 살인이 있던 25년 후의 8월 13일에 태어난 여성 ‘나’가 등장한다. 인텔리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이다. 어느날 베두인 소녀 학살 이야기를 들은 ‘나’는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의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직장 동료의 신용카드로 결제한 렌터카를 운전해 먼 길을 떠난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옛 팔레스타인 땅에 살기 위해서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경계선을 별 생각없이 곧장 달려가서 한 달음에 뛰어 넘거나 그냥 슬그머니 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조바심 없는 성격의 ‘나’.

  아직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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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1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범띠 여성이라고 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