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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일기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1999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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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996년 작품. 1990년 8월부터 1991년 6월까지 지속된 콜롬비아 기자 열 명의 납치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마루하 파촌은 삼촌이기도 했던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딸과 두 아들을 두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도무지 성격상 차이로 견딜 수 없어 가톨릭 대주교에게 요구해 친족간 혼인관계 불성립의 판정을 받아냈다. 원래 집안 대대로 신문기자인 인텔리 계급이라 자신도 신문기자로 다시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크지 않은 잡지사를 창간하기도 했고 두 달 전부터는 국영단체인 영화진흥원 포시네의 원장으로 임명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이어갔다. 마루하의 언니 글로리아 파촌은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의 아내였는데,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 거의 당선이 확정적이었지만 그만 테러리스트에게 표적이 되어 암살당하고 말았다. 루이스 갈란은 “범죄자의 국외 인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강경파였다.
이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 문제가 되는 콜롬비아에서의 “범죄자 국외 인도”, 국외는 미국을 일컫는 말이다. 콜롬비아는 당시 전 세계 마약 공급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으며, 마약왕이라고 불린 메데인 카르텔의 설립자 파블로 에밀리오 에스코바르 가비리아는 마약을 팔아 한때 세계 제7위의 현금보유자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문제는 콜롬비아 마약의 대부분이 미국으로 흘러들어 마약 가격이 하락하는 바람에 마약 중독자가 순식간에 불어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좌익 게릴라들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력이 있어, 비공식(미확인)적으로 마약 단체에 직접적인 소탕작전에도 개입하면서, 콜롬비아 정부에 마약 생산과 판매에 관련된 범죄자를 미국 법정에 세우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미국 입장에서 콜롬비아 내부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마약 카르텔을 정부가 체포해봤자 부패한 정부에 막대한 뇌물을 주어 가벼운 형을 선고받거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체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도 여전히 마약 제조와 판매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또한 사실이 그러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필두로 카르텔의 지도자들은 미국으로 신병을 인수할 경우 최하 150년 형을 피할 수 없으며 90년이 지나기 전까지 가석방 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는 터에 도저히 “범죄자 국외 인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현직 영화진흥원 원장이며, 강력한 대통령 후보자였던 사람의 친척인 마루하 파촌 데 비야미사르는 카르텔이 납치 대상으로 점찍을 완벽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마루하가 아이 다섯을 데리고 새로 결혼한 현재 남편 알베르토 비야미사르 카르데나스 역시 정치인으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대통령 세사르 가비리아의 집무실에 전화를 하거나 찾아갈 수 있는 정도의 인물이었으니, 정부와의 협상에 적당한 미끼로 쓸 수 있음에야.
영화진흥원 앞 오후 7시 5분. 마루하는 시누이 베아트리스와 르노 21, 관용차를 타고 퇴근한다. 베아트리스의 남편은 침착하고 경험 많고 유능해 명예훈장을 받은 신경정신과 의사 페드로 게레로 박사지만 이날 이후 우울증에 시달릴 예정이다. 일상적으로 시누-올케는 함께 차를 타고, 러시 아워 시간 속의 보고타 시내를 관통해 먼저 올케 마루하의 집에 들렸다가 베아트리스의 집에서 퇴근한다. 그러나 이 날 진흥원을 출발하자마자 메르세데스와 택시 한 대가 르노21을 바싹 뒤쫓기 시작했지만 마루하의 운전기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르노21이 82번가로 들어서서 집에서 2백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회전길에서 오른쪽으로 커브를 틀었을 때, 택시가 난폭하게 다가와 앞길을 막는가 했더니 메르세데스가 바짝 뒤에 붙어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눈과 입 부위에 구멍 세 개가 뚫린 복면을 쓴 남자 몇 명이 내리더니 소음기가 부착된 소총을 발사해 불쌍한 운전기사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버렸고 차 밖으로 끌어내 다시 네 발을 더 쏘아버린다. 기사는 사건이 알려져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숨을 쉬고 있었지만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던 중 절명해버리고 만다. 괴한들은 마루하를 메르세데스에, 베아트리스를 택시에 싣고 급하게 출발해 보고타 시내를 질주하는데, 붐비는 퇴근시간에 지들이 튀면 얼마나 튀겠는가. 이렇게 납치된 두 명의 여인이 모처의 좁은 방에서 다시 만난다. 군대훈련을 경험했고 예비역 대위 자격이 있는 베아트리스는 괴한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이들이 베아트리스는 원래 납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돌려보내겠다고 하자, 올케를 바라본 베아트리스는 자진해서 남겠다고 말해 마루하는 감격해버리고 만다. 혹시 모르지. 곱게 보내줄 리가 없잖아. 그 결정 때문에 목숨을 건진 것인지 누가 알랴. 이 작품은 이때부터 다음해 1991년 6월 이들이 납치에서 풀려나고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자수하여 스스로 교도소에 입소하는 장면까지다.
마루하와 남편 알베르토 바야미사르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만난 것은 1993년 10월. 납치에서 풀려나 2년 4개월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부부는 마르케스에게 마루하와 시누이 베아트리스가 납치되고, 갇힌 장소에서 겪었던 경험, 두 명을 석방시키기 위한 각 계층 사람들의 노력과 납치한 쪽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한다. 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시점이 가볍지 않다. 왜냐하면 콜롬비아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살인자인 에스코바르가 아직 처단되지 않은 상태였고, 국내 치안은 여전히 테러를 감행하고 있는 카르텔 쪽 단체 로스 엑스트라디타블레스의 기세 역시 주눅들기는커녕 에스코바르 자수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무차별 테러와 폭력을 행사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들의 납치를 소설로 쓴다고? 그랬다. 물론 구상 단계에서 에스코바르가 은신처 지붕 위에서 집중적인 기총소사를 받아 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야, 안 그래?
그런데 얼마 후, 작가는 마루하와 베아트리스 말고 여덟 명의 기자들이 이들보다 더 먼저 납치되었으며 결코 따로 떼어내서는 되지 않을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차례로 이 시기에 납치됐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인터뷰하는 한편, 이들이 남긴 메모나 기타 자료를 수집해 엉클어진 모든 것을 정리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내게는 굉장히 낯선 마르케스 표 르포 소설이 완성된다.
1990년 8월 30일, 가장 먼저 납치된 사람은 디아나 트루바이. 크립톤 텔레비전 뉴스 책임자이며 잡지 『뉴스&뉴스』의 편집자를 겸해 일하고 있다. 특종을 잘 잡아내기로 유명하며 좌익반군과 내란시기에 반군 지도자와 단독 인터뷰를 따내 장안의 스타가 된 경험이 있는 막강 커리어의 히로인이다. 디아나에게 에스코바르와의 단독 인터뷰를 제안했으니 이걸 덥썩 물지 않으면 가짜 디아나라서, 그날이 되자마자 뉴스 논설위원 아수세나 리에바노, 편집자 후안 비타, 카메라맨 리처드 베세라와 오를란도 아세베토, 그리고 콜롬비아 주재 독일 특파원 헤로 부스까지 모두 여섯 명이 길을 나섰다가 몽땅 납치당하고 말았다.
마리나 몬타야는 마루하보다 두 달 먼저 납치당했다. 환갑이 넘은 노년이지만 여전한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출렁이는 금발의 미인. 특히 손과 손톱이 돋보인다. 이 사람은 동생 헤르만 몬토야 때문에 납치당했다. 헤르만이 공화국 전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 막강한 스피커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로스 엑스트라다타블레스가 데려왔지만, 납치행각을 벌인 뒤에 보니까 헤르만 몬토야는 이미 골방 신세로 떨어진 지 오래고 더구나 지금은 캐나다 대사로 나가 있어서 현 정부 정책에 감놔라 배놔라 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납치가 있었고,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당연히 인질에 대한 처형을 동반하는 것. 이때 납치범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순서로 사형을 집행한다. 그리하여 마리나 몬토야는 불행하게도 첫번째 처형 대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그렇게 된다.
마리나가 납치되고 불과 네 시간 후에 당한 프랑시스코 산토스. 일명 파초 산토스. 이이는 신문 『엘 티엠포』의 편집부장이다. 15년 전에도 파초의 아버지 에르난도스 산체스에 대한 납치기도가 있어서 그런지 산초는 납치 기간 내내 무지하게 적응을 잘 하면서 오히려 감시하는 청년들을 감화감복 시키기에 이르는 유쾌한 사람이다. 자신이 어디에 갇혀 있는 지도 척 보고 알지만 함부로 도망하기엔 날아드는 총탄이 겁나 그냥 있기로 한다. 나중에 절호의 찬스를 맞아 창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총 든 감시원이 “지금 뭐해!” 라는 외침에 “보면 몰라? 똥 누잖아.” 대꾸해서 자기 목숨 자기가 구한다.
지금 두 권짜리 이 책은 절판이다. 이렇게 말하면 출판사한테 미안한데, 그렇다고 독자를 위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지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은 선택하지 마시라. 이걸 소설이라 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신동아나 월간조선에 5회에서 6회 분량으로 연재하면 딱 좋을 듯하다. 마르케스가 쓴 “르포소설”이라기 보다 그냥 “르포르타쥬”라고 하는 게 맞다. 웃기게도 책 뒤표지에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사실적> 리얼리즘으로의 변신!>이라 써 놓았다. 아무리 거장이라도 다 마음에 들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으, 이거 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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