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일로
나탈리 사로트 지음, 이광호.최성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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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탈리 사로트는 누보로망 계열의 소설가인줄 알았다가 검색 중에 희곡 작품이 눈에 들어와 얼른 읽어봤다. 뭐 그렇다고 사로트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니다. 꼴랑 두 편 읽었다. <황금열매>와 <어린 시절>. 아마 사로트에 관심이 조금 있는 분들 가운데 이 독후감을 읽는 분 역시, 사로트의 희곡이라고? 약간의 의아심과 궁금증과 호기심이 솟는 것을 숨기기 힘들 듯하다. 사로트의 누보로망 작품은 읽기 어렵다. 내용이 난해해서도 아니고 현학적 철학의 철갑옷을 입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 장면을 미분하듯이 세밀하게 쪼개 그걸 낱개로 묘사하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시트르의 바닷가>를 쓴 쥘리앙 그라크가, 특별한 주장도 없으면서 한 물체나 형태를 과하게 세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누보로망이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했듯이, 아니 독자가 저절로 그라크가 한 이야기가 맞는 말이기를 바라게 되는 현상과 비슷한 방법으로, 읽기 어렵다. 하여간 나는 그랬다. 로브그리예보다 더 힘들었다. (며칠 후에 로브그리예를 읽게 될 지는 지금은 전혀 몰랐다. 그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작품은 1985년 5월 말에 뉴욕 연극클럽에 의하여 세계 초연되었다. 사로트가 1900년생. 이때 나이 85세. 프랑스어 공연은 다음해인 1986년에 파리 롱푸앙 극장에서, 우리나라 초연은 2023년 제주도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극단 사자자리가 공연했다. 등장인물이 남자 1과 남자 2로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공연에선 여자 1과 여자2가 등장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활발한 창작생활을 하다가 1999년, 망백의 나이로 세상을 접기까지 이 러시아 유대인 출신 여성 극작가는 20세기의 온갖 전쟁과 사건과 문명의 발달과 인종의 교류와 사상의 전도를 겪으면서도 전 생애를 걸고 개인의 마음 속 움직임, 동향, 기울어짐, 지향 같은 것을 천착했다. 이이의 소설은 쉽지 않지만 직접 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시청각을 통해서, 우리나라 공연에서는 부분적으로 관객의 극 참여를 통해 극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관객이 짐작한 것을 분명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했을 수 있겠지만.


  이야기는 간단하다. 극도 단막극이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남자1과 남자2. 남자1은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 낳고 사회적, 가정적으로 성공적이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남자2는 결혼 여부는 나오지 않지만 미혼인 것처럼 보이고 문학에 종사하거나 상당히 관심이 있으며 일반적 시선에 의하면 남자1보다 잘 나가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자2는 남자1을 예전처럼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남자1이 남자2에게 전화를 하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도 한 잔 하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계획을 상의하기도 했는데 남자1 입장에선 영문도 없이 남자2가 전화를 받아도 시큰둥하기 시작했던 거다. 남자2는 전화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이런 사람 많잖은가. 그런 인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1은 차츰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감지하고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혹시 남자2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면 오해라도 하고 있는 거 아냐, 이거?

  그래서 남자1은 남자2를 만나 솔직하게 물어본다.

  “너는 내가 이런 얘기하게 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을 거야. 왜냐면 우린 요즘 예전 같지 않아.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게 느껴져. 그게 뭔지 머리를 쥐어짜고 쥐어짜도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거든. 너는 뭔가 변했어. 저번에 전화했을 때 네가 나를 완전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대해서 나 정말 상처받았어,”

  남자2도 대답한다.

  “나는 안 그랬을 거 같아? 난 여전히 너를 좋아하는데, 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은 안 드니? 아냐, 아냐. 말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야. 관둬.”

  남자1은 남자2가 자기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에 상처를 받았다. 반면에 남자2는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성공하고 있는 남자1에게 상처받은 일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자기가 받았다고 하는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않고 내세우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굳이 말로 하기도 싫다. 하지만 이 극은 애초부터 무언극이 아닌 걸.


  “좋아… 음… 사실 전에…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데 그게… 그러니까 내가 그때 약간 자랑을 했나, 아니… 그건 잘 모르겠고… 원가 소소하게 해낸 일이 있어서… 아, 물론 되게 웃기는 일이지만 암튼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네가 이러더라구. ‘대~단하다…’”


  남자2가 비록 사회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자잘한 성공은 언제나 거둘 수 있어서 아마 자랑 비슷하게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잘 나가는 남자1이 절친 남자2를 향해, “대단하다, 야!” 감탄을 터뜨려주지 않고 “대~~단하다.”라고 말해서 이걸 들은 남자2는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하고, 고민하고, 술 석 잔을 마시면서 다시, 생각하고, 궁리하고, 고민해봐도 역시 칭찬이 아니라 비꼬는 것일 뿐이라고 결론을 냈던 거다. 남자1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이룬 작은 성공이야말로 비웃어도 마땅할 사소한 것이라고 아예 마음 속으로 확정했기 때문에.

  남자1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 비슷하게 행동을 하거나 말한 기억도 없거니와, 스스로도 자신이 잘 나가는 걸 알고 있어서 평소에 쓸데없는 구설수에 휩쓸리기 싫어 이 비슷한 말도, 행동도 특별하게 주의하고 있어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자신은 격려나 축하의 의미로 이야기한 것을 쪼잔한 남자2가 그렇게 들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렇게 직접 대놓고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희곡을 읽거나 극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알아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자기 고집을 꺽지 않는 남자1과 남자2. 이들은 드디어 길거리에 서서 여보시오 지나가는 사람들아, 소리쳐 진짜로 지나가는 남자3과 여자1을 불러 세운다.

  우리나라 공연에서는 남자3과 여자1 대신 관객 두 명을 진짜로 무작위로 뽑아 무대에 올려서 남자1, 남자2가 (제주도는 여자 많은 섬이라 젠더를 바꾸어 여자1, 여자2로 공연) 이들에게 누구 말이 맞는가 시비를 가려달라고 부탁하건만, 세상에서 남의 일에 끼어들기 가장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이라, 아 몰라, 몰라, 빈말로 넘겨버리고 자리를 뜬다.

  이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남자1은 또 자기 나름대로 남자2에게 수틀렸던 점을 끄집어낸다. 다섯 명이 등산 갔는데 남자2가 풍경이 근사하다며 얼른 하산해서 뜨끈한 닭백숙에 쐬주 한 잔 걸치고 싶어하는 일행 네 명을 그렇게 추운 날씨에 한참이나 기다리게 했던 일이다. 등산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등산을 생각하면 안 된다. 알프스 얼음 능선을 건너는 일이라 다섯 명이 전부 자일로 몸을 연결해 일렬 행진해야 하는 전문가 코스라서 한 명이라도 낙오를 하면 전원이 꼼짝하지 못한다.


  남자1과 남자2, 둘 다 쪼잔하다. 뭐 세상이 다 그런 것이란 주장, 쉬운 얘기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게 사람 사는 일이란 걸 나탈리 사로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쉽게도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달라 내 경우만 주장하고 싶지 않지만, 나 같으면 벌써, 너 좀 만나자, 해놓고 곧바로 물어볼 거 같다.

  “내 귀엔 ‘대~단하다’ 할 때 발음이 날 우습게 보는 것 같이 들렸는데 맞아? 천만의 말씀, 아니라고? 알았어. 하여간 그렇게 들렸으니까 그건 네 잘못이다. 그러니까 술 사라.”

  이렇게 끝냈을 거 같고, 알프스에서 네 명을 기다리게 만들면서 경치 구경을 하는 남자2한테는

  “염병하지 마시고 얼른 내려가자 4대 1, 다수결이다 새꺄.”

  했을 거 같은데, 참 그걸 여태 가슴 속에 넣고 끙끙 앓는 프랑스 사람들, 짠하다, 짠해.

  내가 읽기에 나탈리 사로트는 읽기가 곤혹스럽지만 그래도 소설이 좋았다…… 정말?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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