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코어 민음사 모던 클래식 59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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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요나스 하센 케미리는 1978년 12월 27일에 스톡홀름에서 튀니지 출신 아버지와 스웨덴 어머니에서 태어났다. 2003년에 영어제목 <One Eye Red>로 데뷔한 이래 올해까지 여덟 편의 장편과 일곱 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에세이와 단편소설도 목록에 있다. 독후감 쓰는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하게, 젊은 세대 답게 바이오그라피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있는 이이의 작품은 모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 59번 이 작품하고, 72번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두 권이 있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 드물게 두 권 다 팔고 있다. 아직 품절이나 절판이 아닌 것을 보니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광고를 덜 했거나.


  프랑스 통치하의 알제리에 모우사라는 이름의 친불파親佛派가 있었는데, 이 양반이 천하의 카사노바였다. 20세기 중반에 여러나라에서 국제적인 생활을 하며 염문도 국제적으로 뿌렸던 건 물론이거니와 호화롭고 비싼 잠옷을 입고 잠을 자는 극히 드문 알제리인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에도 물부족 국가였던 알제리에서 약품을 써서 물을 정화하는 직업으로 현금을 갈퀴로 긁을 수준이었으며, 넘치는 자금으로 사탕공장과 주크박스 가게에 투자도 했다. 모우사 씨는 모나코에서 열린 교향악 콘서트에서 만난 여성을 만나 아들 압바스를 생산하였으나 미국 마이애미비치의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모델 출신 정실 부인과 살았다. 즉 압바스가 모우사 선생의 사생아이자 혼외자라는 것. 이외에도 알제리인 모우사 씨가 워낙 국제적인 사람으로 압바스가 주머니에 아버지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걸 보면, 가운데 모우사 선생이 있고 왼쪽으론 폴 뉴먼이, 오른쪽엔 엘비스 프레슬리가 서 있는 거였다. 꼬마 압바스는 그렇게 구라를 치고 다녔으며, 함께 튀니지 젠두바 시의 고아원에 입소한 원생들은 압바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숨소리 빼고 전부 거짓말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얼마나 맛있고 진지하고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는지 한 번이라도 더 들어볼 생각으로 모른 척, 그런 척, 믿는 척을 해주었다는 거 아닌가.

  나중에 압바스가 자신의 평생 절친한 친구가 되는 고아원생 카디르에게 실토한 바에 의하면 사실은 아버지 옆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폴 뉴먼과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니라 알제리의 프랑스 총독을 지낸 모리스 샬과 폴 들루브리에였단다. 아버지의 실체는 ‘아르키’라 불리는 적국의 협력자인데 튀니지 접경지역의 산마을에 갔다가 하이파 아가씨를 만나 압바스를 임신하게 하고 결혼도 약속했지만 끝내 사기극으로 끝나고 하이파 아가씨마저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래도 산 사람을 어찌 죽이랴. 어떻게 해서라도 압바스를 낳고 키우던 하이파는 여전히 모우사 씨처럼 프랑스를 찬양했다. 하지만 1962년에 에비앙 협정 이후 알제리의 국내 권력투쟁이 일어나 국민 1만5천 명을 죽이고 민족해방전선이 정권을 장악한다. 워낙 많은 인재를 도륙내는 바람에 실제로 일을 시킬 사람이 없어 친불파 대부분을 그대로 요직에 꽂아 놓았지만 소위 시범 케이스 몇 명은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모우사씨가 걸려들어 기어이 해외 망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 하이파는 여전히 친 프랑스 발언을 서슴지 않는지라 동네 사람들은 밤마다 하이파 네 집 앞에서 성토대회를 하다가 급기야 불을 싸질러 집도 홀랑 타버리고, 엄마도 목숨을 잃어버렸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무도 혼자 남은 압바스를 돌보지 않았고 유일하게 가난한 이웃 농부 라시드 씨가 압바스를 데리고 젠두바 시로 가서 고아원에 집어넣었다는 것.

  근데 이건 믿어도 되는 거야? 일단 믿고 계속 읽어보자. 프랑스 폭격기의 폭격을 맞아 동네가 쑥대밭이 되고 엄마도 죽어 민족해방 유공자 자녀 자격이라고 고아원 입소 서류에 쓰어 있지만서도.


  1969년에 군복무를 마친 압바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해서 고아원 원장 셰리파 어머니는 튀니스에서 법률을 공부할 수 있게 지원을 해주었으나 불과 1년 후에 정치적 이유 때문에 주머니가 탈탈 털려 다시 젠두바로 돌아왔다. 이때 그리스의 사진작가 파파나스타소포울로우 크리스토발란티, 라는 길고 긴 이름의 사진 예술가가 젠두바에 등장해 압바스를 모델로 기용한다. 하루는 이름 복잡한 사진 예술가가 압바스의 포즈를 고쳐주느라 손을 바지 지퍼에 대고 조금 끄르려는 동작을 취했고, 압바스는 불결한 행위를 하려는 것으로 오해해 가타부타 않고 두드려 패고 도망쳤는데, 이때 함께 스튜디오에 갔었던 절친 카디르의 손에는 위대한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의 사진첩이 들려 있었던 거였다. 압바스는 할스만의 사진집에 집중하더니, 드디어 자신의 삶의 과제를 발견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튀니지 출신의 사진작가가 되는 것. 이를 위하여 압바스와 카디르는 1972년에 튀니지의 타바르카로 이주한다. 카디르도? 그럼. 그의 야망은 자기 손으로 호텔을 하나 지어 경영하는 거였으니까.

  아직 유럽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의 해변도시 타바르카에서 압바스는 사진관 보조 일자리로 들어가 중원의 숨은 사진 고수 아크라프 선생에게 인화기술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히기 시작하고 카디르는 호텔에서 접시를 닦으며 빈 시간에 포커 게임을 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당시의 아랍은 유럽인들에게 도발이나 바이러스, 투쟁, 테러를 연상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선하고 피해 입은 민족으로 인식되어 이들은 가끔 밤이면 유럽 관광객들과 어울려 해변파티나 대마초, 디스코 난장판 등 젊은 시절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압바스도 잘 생겼으나 카디르가 미남이었거든. 가을이 되자 압바스는 드디어 첫 카메라로 금속재질의 소형 코닥 인스터매틱을 구입해 타바르카에 관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자신을 사진 예술가로 소개하기 시작한다. 머리통엔 중고시장에서 산 검은 베레모를 쓰고 다니면서.

  근데 압바스가 하필이면 타바르카의 댜큐멘터리 사진에 국한하느냐고? 압바스가 이래봬도 어릴 적부터 똑똑해서 대학물도 먹어봤다. 해외를 뜨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언어였다. 해당 국가의 언어에 유창하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결코 수월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압바스는 식민모국이었던 프랑스 말은 원래 잘 하고, 타바르카에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를 독학해 차근차근 대단한 수준에 오른다. 언어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영혼이 살고 있는, 또는 휴식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잠긴 문을 여는 마스터키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이렇게 살기를 4년. 드디어 운명 같은 1976년 늦여름이 오고, 뮌헨 올림픽의 검은 9월단을 필두로 테러 단체들은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건만 압바스는 타바르카 해변에서 스웨덴 출신의 스튜어디스를 만나 생전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페르닐라 베리만. 베리만. 산에서 온 사람이란 뜻. 자기 이름 압바스 케미리 할 때의 케미리도 크루미리에 있는 산에서 온 사람이란 뜻. 암만 생각해도 천생연분이다. 하지만 절친 카디르가 보기엔 매력 없는 화장에다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가슴, 눈에 거슬리는 들창코, 연약하고 가늘며 기다랗기만 한 체구와 무려 180츠를 넘어 압바스보다도 많이 큰 키까지, 그것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상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압바스는 진정으로 사랑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니 이제부터 비행기 여행, 이주, 사랑, 결혼, 갈등, 어쩌지 못하는 세 명의 혼혈아들, 끝없는 오해,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손쓸 수 없는 비극적인 침묵 같은 진퇴양난이 시작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죽으나 사나 나의 페르닐라, 꿈에도 소원은 페르닐라, 염불을 하고 다니는 걸 보니. 이때부터 압바스의 생활은 사진현상실과 페르닐라와의 서신연락 말고는 없었으며, 지역신문에 자기 사진을 제공하기 시작해 이름을 알려 고관대작 집안의 결혼식, 고급 미용실의 미용 전후 사진을 찍는 사진사 같은 것으로 쉼없이 고용되면서 경력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초청장이 오는 즉시 압바스는 절친 카디르가 포커 게임을 해서 따고 열심히 접시를 닦아 번 돈을 몽땅 빌려 스웨덴으로 날아가더니, 이제야 작가 요나스 하센 케미리가 하고 싶었던 스웨덴 내의 이민자들의 소외나 차별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스웨덴에서의 이야기를 진행하자마자 작품이 급격하게 지루해진다는 거. 진짜 여기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후엔 한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한 번 더 한다. 당시엔 흥미 만점이었을 지 모르지만 이젠 하도 많이 들어 속도감있게 진행하지 않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저자는 물론이고 역자한테도 미안한 말씀이지만 읽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내에서의 네오 나치즘에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 북아프리카의 독립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 작품 말고도 뒤져보면 쌔고 쌨으니 한 번 더 잘 찾아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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