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박스
아모스 오즈 지음, 곽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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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늦여름에 헌책방에서 사서 이제야 읽었다. 그새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에서 히브리어 직역본인 것처럼 보이는 새 번역이 나왔다. 영문학을 전공한 역자 곽영미의 우리말이 좋아서, 중역 읽으며 이런 얘기 처음 해보는데, 1도 불만 없다. 번역하는 데 너무 공을 들여서 이만한 책도 별로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사 놓긴 해도 아모스 오즈는 얼른 손이 가지 않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서 오즈를 안 읽은 건 아니고, 올 4월부터 10월말까지 나 다니는 도서관에서 무슨 캠페인을 해 도서관 책 위주로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캠페인이 없었다고 해도 워낙 오즈 이 양반하고 합이 맞지 않아 얼른 읽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못하겠지만. 여태 여섯 권의 오즈를 읽었으니 이번이 일곱 번째. 딱 한 권 <유다>가 제대로 마음에 꽂혔을 뿐이다. <유다>에서는 숨어있는 주인공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을 통해 오즈는 아랍-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존 및 연합을 주장한다. 아모스 오즈의 이런 반전의식은 이미 1978년에 이스라엘 신문에 기고했고, 덕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나라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얻은 바 있다. 이 책은 1986년에 발표하긴 했지만 시대적 배경이 1976년이다. 작가와 작중 주인공 알렉산드르 A. 기드온 박사는 흔히 6일전쟁이라 불리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의 6일 전쟁에 참전한 바 있다. 오즈는 전쟁을 경험하고 시나이반도에서의 아랍-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 없는 평화와 연합을 주장한 반면, 작중 주인공 알렉산드르는 당시 자기 편이 이집트 시민들에게 가한 참혹한 학살의 장면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하고 있다. 수십명의 이집트 시민들이 숨어 있는 지하실을 열고 수류탄 세 발을 까서 던져 넣고 뚜껑을 닫는 일, 폭발음이 세 번 들리면 뚜껑을 열고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탄창이 다 빌 때까지 기총소사를 가하면 피와, 장액과 내장과 살점이 붙은 뼈조각과 뇌수가 군복은 물론이고 사격하는 군인들의 얼굴에까지 날아 튀는 장면. 작품에선 열여덟 살 정도의 청년 보아즈 브란드슈테터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바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평화주의자, 이스라엘 산 히피의 자격으로.

  반감을 갖지 않고 이 책 <블랙박스>를 읽기 위해서는 작품의 배경이 1976년이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종교인 유대교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갖는다. 물론 입대했다고 해서 여군이 진짜 전선에 배치되는 일은 많지 않다고 한다. 실전에 투입을 해보니까, 여성 전사가 한 명 죽으면 남자 병사들이 죽을 때보다 남자들이 더 광분을 해서 쓸데없이 무모한 일을 벌이기 때문에. 근데 그건 요즘 이야기고 70년대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남자하고 같이 병역의무를 다 하지만 70년대 중반까지 여성은 남성의 “소유”였다. 진짜 서류로 너는 내 것, 이라고 써서 인감도장 찍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여성과 자식들은 모두 남성, 아버지의 완전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 “구약의 시대”에 머물고 있었다는 점. 지금은 여성의 병역 덕으로 이스라엘의 여성인권이 세계에서 알아준다고 하지만 그땐 하여튼 그랬다.


  볼로댜 구돈스키 선생은 우크라이나에 살 때부터 큰 부자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가 이스라엘로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정신이 좀 혼미해졌는지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들을 위한 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거액, 자신의 재산 거의 전부를 쏟아 넣으려 하자, 변호사 만프레트 차크하임이 구돈스키의 아들 알렉산드르 A. 기드온과 뜻을 같이 해 구돈스키를 정신병원/요양원에 집어넣고 전 재산을 유증 받는다. 덩치 큰 호색한이자 백만장자인 구돈스키의 장자 알렉 기드온이 소대장으로 있었을 때 여군 소대원 가운데 일라나가 있어, 유일하게 소대장의 냉정하고, 매몰차고, 으스대고, 비아냥거리기 좋아하고, 이를 다 합해 잘난 척하는 아니꼬운 모습에 반해 노골적으로 알렉을 유혹하여 알렉의 동정을 수거했다. 얼마 있다가 알렉은 일라나를 아버지에게 소개했고, 아버지 구돈스키 씨는 거두절미하고 석달 후에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정작 구돈스키 자신은 새 여자를 만나 유럽으로 여행중이라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지만.

  어쨌거나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지? 행복했다. 얼마간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품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성적 취향의 변화가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이었다. 어디서 들었거나 봤는지, 이들은 남자 둘에 여자 하나가 한 침상에서 섹스를 벌이는 이른바 쓰리 썸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정말로 다른 남자 한 명을 데려오지는 않았지만 침대에서 마치 다른 남자가 한 명 더 있는 것처럼, 처음엔 연기였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하니까 엑스터시의 질과 양이 비교도 하지 못하게 극렬한지라, 더욱 더, 나중엔 진짜로 세 명이 하는 것처럼 성적 환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 미래의 아내 말고는 여자 경험이 없는 알렉. 반면에 그 방면엔 남부럽지 않은 경험을 지닌 일라나. 알렉은 부부의 침상에서 부부간의 은밀한 환타지를 점점 실제 생활처럼 믿게 됐고,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단계로 접어들어 하루는 가차없이 폭행을 가했으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걸 막아선 꼬맹이 아들 보아즈의 머리통마저 몇 번이나 벽에 찧는 우발적 만행을 저질러버렸고, 아마도 그런 짓을 한 자신의 실수를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모멸적이어서, 그럴 정도로 오만한 인물이라, 혹시 아내가 자신을 용서해줄 수 있을 망정 자기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분명하여 곧바로 이혼소송을 진행하기에 이른다.

  소송 당시 친자 판별을 위한 혈액검사를 부부 공히 거부하여, 보아즈가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그리하여 양육의 의무도 없으며 양육비 지불의 의무는 당연히 없을뿐더러, 배우자의 부정이 이혼의 주요 사유로 치환되어 위자료 한 푼 지불하지 않고 소송을 끝내 버렸다. 일라나와 보아즈는 언니/이모가 있는 키부츠로 들어가 6개월 살다가, 일라나 혼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서점에서 일하다 키 작은 남자 미카엘 (미셸 앙리) 솜모를 만나 재혼해 딸 마들렌 이파트를 출산했다. 전남편의 아들 보아즈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5년 더 키부츠에서 이모가족과 살다가 아빠를 닮아 엄청난 큰 키를 한 채 예루살렘의 엄마 부부와 합친다. 작품을 시작할 시점에 보아즈의 나이 열다섯 살. 중3 정도의 소년으로 혈관 속에 뜨거운 니트로 글리세린이 흐르고 있으며 신체 사이즈와 완력이 또래는 물론이고 어른들과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았다. 벌써 전과기록과 보호관찰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

  이 아이가 또 사고를 쳤다. 가난한 미셸은 현직 경찰인 형이 있어서 보아즈의 전과기록이나 보호관찰 기록은 삭제해줄 수 있으나 피해자(부모)와 합의금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하여간 겉으로 보면 양부와 엄마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궁리, 궁리, 궁리하다가 참담하지만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최후, 최후 가운데서도 최후의 방법으로 보아즈의 친부, 일라나의 전 남편 미드웨스트 대학 정치학과 알렉산드르 A. 기드온 교수한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하면서 작품은 시작한다. 알렉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고, 보아즈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제적 처리를 훈방으로 해결을 했으며, 합의금 조로 2천 달러의 수표를 보내 일을 종결하려고 한다.

  알렉의 전화를 통한 일 처리, 그리고 수표를 보내는 것으로 모든 일은 끝내야 했다. 그러나 일라나의 두 번째 편지와 이어지는 미셸의 편지부터 독자는 이 부부들이 알렉에게 접근하는 것에 수상한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일은 독자가 짐작한대로 미셸에 의한 사기극으로 진행되는 것 같고, 결국 그것이 사기인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적어도 사기에 준하는 정도의 바람직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눈치 챌 수 있다. 그럼에도 부자 알렉은 이들 부부에게 활수하게 돈을 베풀고, 보아즈에 대하여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할 정도로 지원을 해준다. 역시 부자 아빠를 두는 것이 좋다! 부부는 점점 의기투합해, 나중엔 알렉의 변호사까지 끌어들여 무한정 돈을 뽑아내려 하지만, 기어이 일라나는 이렇게 편지를 쓰고야 만다.

  “그(이혼) 후론 한 마디도 없었어요. 7년 내내. 그런데 지금 왜 당신은 내 새로운 삶의 창가로 유령처럼 돌아왔나요? 당신의 사냥터로 가버려요. 흑백으로 된 우주선을 타고 서리 내리는 추운 별로 가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요. 꿈에서라도 돌아오지 마요. 내 몸의 욕정에도. 벽토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에도. 목판화와 고깔 달린 옷에서도 떠나요. 왜 눈에 갇힌 황야를 건너지 않고 처음의 오두막 문을 두드려 빛과 온기를 청하나요?”

  한 번 끝을 냈으면 그게 진짜 끝이 되는 것이 좋다. <블랙박스> 경우엔 친아들 보아즈는 몰라도.

  재미있게 읽었다. 아모스 오즈 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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