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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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작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도 신기하게 독자한테 기발한 웃음을 주는 사람. 이 양반이 소설 말고 물리학이나 기계공학이나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으면 전 인류를 아무런 고통 없이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기상천외한 폭탄을 만들거나, 극소수 총명하고 건강한 인류를 태운 채 지구와 거의 흡사한 행성을 찾아 우리 은하계 밖을 날고 있거나, 십년 안에 인류의 뇌에 작동해 종의 존속을 포기하게 하는 AI 프로그램을 개발할 지도 모른다. 즉 거의 신과 비슷한 반열일지도. 보니것이 자주 말하듯이 신은 인간의 소망과 사랑과 헌신과 흥망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들도 여태껏 살아온 내력을 비추어 보면 눈에 훤히 보이지 않는가. 신이 당신의 삶을 도와준 적 있어? 그리하여 어차피 인간은 자기가 가진 운칠기삼 또는 운팔기둘로 살 때까지 버티고 보는 게 장땡이다. <타이탄의 세이렌>은 오래전에 <타이탄의 미녀>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었는데 이제 새로 번역을 해 문학동네에서 냈다. 근데 왜 ‘세이렌siren’을 ‘마녀’가 아니라 ‘미녀’라고 했었을까? 좀 귀띔을 드리자면 주인공 윌리엄 나일스 럼포드가 진짜 주인공 맬러카이 콘스턴트한테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으로 가게 될 것이라 예언하자 콘스턴트는 영 탐탐치 않게 생각한다. 럼포드는 그런 콘스턴트에게 타이탄에 가면 볼 수 있는 세 미녀의 사진을 보여주어 콘스탄트의 심장을 벌렁벌렁하게 만든다. 바로 이게 세이런의 노래였거늘, 미녀일지언정 마녀라고 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한 거 아닌가 싶다. 정말 거기 가면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 세 명이 있느냐고? 있다. 책에 의하면 반드시 그렇다. 지금도 있으니 믿으시라.


  책 뒤편에 실린 작가 연보를 보면 보니것은 서른일곱 살 때인 1959년에 두 번째 책 <타이탄의 세이렌>을 출간한다. 그리고 10년 후 여덟 번째로 <제5 도살장>을 낸다. 기억하시지? <제5 도살장>에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드레스덴 대공습 때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트랄파마도어에 있는 동물원에서 몇 년간 알몸으로 구경거리로 지내다가 귀환했다는 거(물론 드레스덴 시절 포로수용소 경험을 비유한 거겠지만). 근데 정말로 트랄파마도어 행성이 있었다. <제5 도살장> 십 년 전부터. 이 책에서도 트랄팔마도어 행성이 나온다. <제5 도살장>과는 달리 그 행성의 주민들은 전부 기계로 되어 있다. 그들이 보기엔 지구와 지구인들이 워낙 사소한 것들이라서 몇 십만 년 전부터 아주 사소한 필요에 의하여 지구의 문명을 발달시켜왔고, 문명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은 전쟁 무기의 개선과 발명보다 확실하게 빠른 게 없어서 지구 역사에 서술된 전쟁만 만 건이 넘는다며? 그렇다며? 그렇게 해서 드디어 지구인이 트랄파마도어 우주인, 아니, 우주기계가 필요한 부품을 만들어 이를 운반하기 위해 맬러카이 콘스탄트를 타이탄에 보내는 거다. 맬러카이 콘스탄트가 “충실한 배달부”라는 뜻이란다.

  우주, 진정한 무한대의 공간에는, 한 마디로, 없는 게 없다. 이해하기 힘든 개념으로, “우주에는 옳은 방식이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다양한 진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인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란 것이 있단다. 태양을 원점으로 오리온 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베텔게우스까지 뻗는 뒤틀린 소용돌이 안개 속에서 맥동을 치다가 지금은 파동 현상으로 존재하는데 하필이면 지구와 화성 사이에 밀집했단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중 차원과 유사해서 생명체일 경우 여러 시간 차원에 걸쳐 널리 흩어져버리고 만다. 이것 때문에 인류는 모든 창조의 책임자가 누구며, 모든 창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실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외계로 우주로, 바깥으로 밀고 나가고자 하는 일이 초장에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

  주인공 윈스턴 나일스 럼포드. 미국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계급이다. 대통령의 1/10, 탐험가의 1/4, 동부해안 주지사의 1/3, 전업 조류학자의 절반, 훌륭한 요트 항해사의 3/4, 웅장한 오페라의 적자를 보전해주는 사람의 전원을 배출한 이 계급 출신은 극소수의 정치인을 빼놓고는 절대 돌팔이가 없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계급에 건강하고 매력적이고 똑똑한 아이들을 공급하기 위하여 가끔 친족 결혼도 불사하는데 럼포드 부부도 8촌 남매 사이다. 럼포드는 5천8백만 달러를 주고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개인 우주선을 소유한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루는 그의 커다란 개 카작과 함께 정말로 우주선에 올라 화성 근처의 크로노-산클래스틱 인펀디뷸럼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크로노’는 시간이라는 뜻. 그곳에서 여러 시간의 차원으로 분산되어버린 럼포드와 카작은 59일에 한 번씩 우리 은하, 태양계, 지구, 미합중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드에 있는 럼포드 대저택에서 물질화를 통해 육신과 육성을 갖추어 등장한다. 시간과 장소 등을 망라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미래가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아쉽게도 물질화 해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고.


  진짜 주인공 맬러카이 콘스탄트는 얼마 전 비어트리스 럼포드 부인의 초청을 받아 요구대로 선글라스에 콧수염으로 변장한 채 럼포드 저택으로 숨어들었다. 이 날이 럼포드의 물질화가 있는 날이라 한 남자와 그의 개가 허공에서 물질화하여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보기 위해 높은 담장이 시야를 막고 있을지언정 물질화가 이루어진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군중이 물밀듯이 모여 있었다. 맬러카이 콘스탄트는 럼포드 부인과 비슷한 30대 초반으로 버지니아 주립대를 다니다가 1학년 때 퇴학을 당했으나, 미국 최고의 부자이자 악명 높은 방탕아로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 살고 있다. 헬기를 타고 와서 다시 리무진으로 갈아타고 도착한 그는 균형 잡힌 체형에 날씬한 헤비급 몸매와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잘 생긴 남자다. 알코올과 마약, 여자와의 관계 후에 오는 우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배달할 품위있고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좌우명이 “배달부는 기다린다.”

  당연히 비어트리스 럼포드 여사도 미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큰 키와 곧은 몸. 세세한 이목구비는 의미가 없었다. 머리통 대신 대포알이 있었어도 웅장한 구도에 잘 맞았을 거 같다. 그래도 얼굴이 있긴 있다. 심지어 흥미롭다. 뻐드렁니가 난 인디언 전사처럼 보이는.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그녀가 감탄할 만한 외모의 소유자라고 재빨리 덧붙여야 했다. 그래, 저것도 사람의 생김새로 대단히 괜찮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야,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변주, 놀라운 매력을 지닌.


  하여간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럼포드는 콘스턴트에게 말한다. 콘스턴트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거기까지 가고 싶지 않은 미국 최고의 부자 콘스탄트.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쾌적한 기후가 있습니다. 시큰둥.

  태양과 베텔게우스 사이에 있는 존재 중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인 타이탄의 여자들도. 오, 그래?

  럼포드는 한 방 더 질러버린다.

  당신이 타이탄에 갈 때 럼포드 부인이 동행할 것입니다. 크로노라는 이름의 아들과 함께요.

  그럼 당신의 아들 아닙니까? 

  나는 천사처럼 재생산을 하지 못합니다. 첫번째 물질화 이후엔 아내마저 나를 만나기를 거절하지요. 크로노는 시간이란 뜻이며 콘스턴트와 럼포드 부인 비어트리스 사이의 미래의 아들입니다. 이름은 화성식으로 지었고요.

  이렇게 이야기해도 지구 행성을 뜨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는 맬러카이 콘스턴트와 비어트리스 럼포드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가긴 가겠지. 그러면 비어트리스는 단테의 베아트리체처럼 콘스턴트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그건 내가 가르쳐드릴 수 없고,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힌트는 벌써 저 위에서 줬다.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누군가가, 아니지, 한 기계가 충실한 배달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근데 정말 콘스턴트가 그걸 배달할 수 있을까?

  하여간 커트 보니것의 대단한 스케일의 농담은 입이 쩍 벌어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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