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흘러내린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0
구레이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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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중국 현대 희곡. 극작가 구레이는 중국 허베이성 스좌쟝石家莊 1978년생이다. 베이징이공대학과 대학원에서 생화학공학을 전공해 석사까지 하고 고향의 제약회사에 취직 확정까지 했으나, 교내 연극 동아리에서 올린 뷔히너의 <보이체크>를 연출해 연극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은 것을 계기로 연극계로 전향한다. 구레이 스스로 “수신풍극단樹新風劇團”을 만들어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개방, 협력, 순수창작, 고 궐리티 지향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역자 해설의 쓰여 있다. 구레이를 구글 검색해보면 “수정된 검색어에 대한 결과: 그레이”가 올라오면서 애먼 페이지만 죽 뜨고, ‘顧雷’를 검색해야 구레이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중국어 사이트와 연결되어 있어서 “중국 연극계의 빅 네임들보다 한 세대 뒤인 21세기의 소장 작가군에 속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또한 역자는 해설을 통해 이이의 특징은 자신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하는 작가-연출가를 고집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작품을 “희곡” 대신 “극본”이라 칭하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하는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 이해할 수 있다. 작가로서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는지 분명하게 어필하고 싶을 터이니까. 어차피 세월이 흘러 작가의 시절이 가면 작품은 다른 연출가에 의하여 공연을 할 수밖에 없을 터이며 이 경우엔 당연히 일정 부분 작가의 의도를 수정하게 되리라. 그러나 구레이는 적어도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지기를 원했는지 원래 취지를 기억해주기 바랐을 지도 모른다.

  무대극의 원본을 이야기하는 ‘희곡’ 대신 ‘극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 가볍지 않은 일인 듯하다. 이제 연극의 기본 텍스트는 곡曲, 몇 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도도하게 흘러온 인류 최초의 예술형태인 곡에서 본本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도 된다. 내가 (다른 것도 다 그렇지만) 연극과 희곡/극본에 관해 아는 것이 짧아 곡과 본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저 이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랄 뿐. 그리스 시대 대표 희비극들, 중국의 다양한 곡, 우리의 판소리 같은 무대예술의 공통점은 운율 아닌가 싶다. 시와 노래로 극을 만들었으니 시와 노래를 문자로 쓴 것을 곡曲이라 했을 것. 희랍에서 절정을 이룬 곡 문학도 어언 스무 너댓 세기가 흘러 이제 무대에서 운율은 메말라 휘발했다. 운율의 빈 자리를 대사, 행위, 무대배경이 채웠으니 이를 산문적으로 본本이라 한 건 아닐까? 그냥 아마추어의 생각이다. 어디 가서 써먹지 마시라. 얘기해 놓은 나도 무식하단 얘기 들을까 겁나니까.


  2022년 중국의 출산율은 1.09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0.78에 비하면 그래도 좀 나은 듯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나라도 2019년엔 1.05였다. 물론 2019년이 소위 “황금돼지해”여서 조금 많이 낳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중국도 앞으로의 전망이 전혀 밝지는 않아 보인다. 이게 다 양육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리고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만 보더라도 첫 아이는 사내 결혼으로 장가들어 2019년에 맏딸을 낳고 올해 둘째로 아들을 낳았다. 작은 애는 결혼이라는 것이 암만해도 노력봉사 이상이 아니어서 여차하면 코만 꿰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 같아서 웬만하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사니, 너네가 살지. 이런 주의다.

  중국 허베이성에 스石씨 많이 사는 동네, 베이징 기준 7시에서 7시 40분 방향으로 고속철도 타고 8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스좌쟝에 어느새 70여 세에 달한 팡통광方同光 선생이 외아들 팡하오창方浩倡이 있었는데 이 외아들이 어려서부터 남달리 공부를 잘해 인근에 비교할 만한 학동이 없었더란다. 어려서는 아버지와 사이가 유난히 돈독하여 아버지가 항문을 비롯한 샅 일대를 씻어주면 신이 나서 좋아하기도 했으나, 아들이 점점 사내가 되면서는 유사이래 모든 수컷들이 그러했듯이 둘의 관계는 조금씩 크랙이 가기 시작했고 그만큼 서먹서먹해졌다. 하오창은 동네 처녀 아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국어 선생님한테 홀딱 반해 수십장에 달하는 편지도 보내기도 하고, 배꼽아래 솜털의 색이 진해지기 시작하면서 밤새 하얗게 빨아 풀까지 먹인 욧닛에 한 번 더 풀칠을 해놓으면서 차곡차곡 부자 사이의 금은 어느덧 깊고 깊은 크레바스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거는 여전해 베이징까지 가서 의과대학을 졸업해 유명 종합병원의 심장외과 전문의로 활약 중이다. 중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뛰어난 의사라 숱한 의사 팔로워들을 거느렸는데, 심장외과 전문의로 만족하지 못하고 황사장이란 인물과 동업을 해 전동치솔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아버지 팡통광 씨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들 팡하오창이 자식 둘 생각은커녕 결혼조차 눈꼽 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

  아들 팡하오창이 37~38세이고 아버지 팡 선생이 70이 넘었으면 당시 중국에서는 적어도 32세에 얻은 귀한 아들일 터. 그러나 의사가 되어 베이징의 종합병원 전문의면 얼굴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은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인지상정이다. 무엇보다 바쁘니까. 휴일엔 바쁜 몸 좀 쉬고 여유를 가져야 하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들이라서. 팡하오창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여성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냥 혼자 살고 싶은 것일 뿐. 근데 거기나 여기나 늘 아들 장가들어 손주새끼들 보는 게 꿈인 아버지가 사는, 냄새나는 집에 자주 가고 싶겠느냐고.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낯을 보일 때마다 색시는 생겼느냐, 언제쯤 국수를 삶아야 하겠느냐 같은 걸 취조 당한다면 사실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듯.

  그러나 전문의 팡하오창 선생께서 고속열차를 80분 타고 고향 허베이성으로 안 갈 수 없는 일이 생겼으니, 병이 깊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팡통광 씨가 자신한테 병명을 일러주지 않고 아들도 내려와 간병해주지 않는다고 홧김에 화병을 벽에다 집어 던졌다가 애먼 ‘애기선생’ 천위써의 이마에 상처를 입혀버렸던 거다. 젊고 예쁜 흉부외과 전문의의 이마에 기스를 냈으며, 아버지가 아들 좀 불러달라고 파출소 경찰을 불러온 터, 아들 팡하오창이 득달같이 달려가 이를 수습해야 할 밖에. 하지만 전동칫솔 사업 초기라 광고 카피도 문제고, 황사장과 금전문제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초기 문제는 그리 크게 확장되지 않고 이제 부자간 갈등이 점점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이 와중에 팡통광 씨의 병세는 환자가 직접 이마에 기스를 낸 천위써 선생으로부터 약물치료, 수술, 표적치료 모두 의미가 없는 소세포 폐암으로, 암이 인체 각 조직으로 전이되어 남은 여생이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땅땅땅, 선고를 받는다.

  그럼 남은 것은 돌이키기 힘든 이격거리를 가진 부자지간에 서로 화해하고 팡선생의 70여 평생이 잔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극이 끝나면 현대극은 아닐 걸? 아무리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두 달밖에 없다고 해도 거칠게 아들의 신경을 긁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한 아들은, 우리 동쪽의 예의 바른 사람들이 들으면 경끼를 할 만한 상스러운 욕을 병상의 아버지한테 푸짐하게 던져놓고 내빼기도 한다. 물론 앞에서 얘기한대로 부자간 화해의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참, 내가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거야? 아, 몰라, 몰라. 이 이상은 직접 읽어 보시라, 하고 내빼야 했는데 깜박했지 뭐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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