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쏘러 숲에 들다 윤택수 전집 1
윤택수 지음 / 디오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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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택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시인이(었)다. (2023년) 9월 12일 시인 장석주가 한국매일경제신문에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편의 시”라는 제목의 컬럼을 읽기 전까지. 장석주는 컬럼에서 “내가 읽은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는 낯선 상상력으로 빚은 무섭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시편이 그득했다.” 라고 하면서 “이 가을 아침엔 시인이여, 불량식품처럼 상한 언어 한 무더기 말고, 당신의 어깨 위에 까마귀를 앉히고 ‘이 피를 맑히려면 백년이 걸리리’라고 노래하라!”, 느낌표! 하나를 콱 찍었다. 장석주 본인도 1980년대 초반부터 《완전주의자의 꿈》 등으로 유명 인기 모더니즘 시인의 반열에 올랐던 시인인 만큼 시에 관한 한 칭찬이 박할 지도 모를 터인데 이렇게 상찬을 하니, 기사를 읽자마자 득달같이 읽어볼 수밖에.

  윤택수. 1961년 대전생.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3사단 백골부대 포병대에서 군역을 마친 거 같다. 동문 선배로 보이는 시인 윤형근의 발문을 인용하면, 학교를 졸업한 윤택수가 홀연 자취를 감추더니 몇 년 만에 나타나 그동안 울산에서 용접공을 일했다고 말한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누구나 알겠지만 윤택수가 용접공으로 일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노동운동 같은 것에 투신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먹물의 삶에 적응하기 싫었든지, 적응하는데 애를 먹어 선택한 길 가운데 하나였든지 할 것이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사라져 한동안 보이지 않았단다. 다시 한번 불쑥 등장해서 하는 말이, 이번엔 원양어선을 탔다고. 충남 홍성에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홍주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도 몇 년 했고, 서울로 올라가 몇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장도 한 모양이다. “전적으로 시를 읽고 판단하면”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혹시 이이가 성소수자여서 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윤택수가 택한 마지막 호구지책은 학원 강사. 대전에서 학원 강사를 하다가 잠깐 쉬고 서울로 올라가 세월을 보낸다. 돈이 떨어질 만하면 다시 고향으로 가 학원 강사를 하고. 그러다가 겨우 서른아홉 살 즈음이었던 2000년 여름,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뇌졸중이 쳐들어와 강단에서 쓰러지고 만다. 이후 꼬박 2년 간 고생하다 생을 마감한 시인. 참 고단하게 살다 갔다. 등단도 하지 않고 그동안 써 둔 110편의 시를 선배 윤형근에게 버리듯 넘겨준 윤택수. 등단, 소위 시인 면허증이 없이 그저 몇 동인지에만 시를 발표했을 뿐이라 이 시집 《새를 쏘러 숲에 들다》가 그의 첫 시집이며 유고시집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그의 마흔 살 평생이 이 한 권에 실려 있을 터. 20대 초반의 치기도 들어 있고, 시대에 대한 부채감도 있으며, 시와 시를 쓰는 사람에 대한 탐색도 당연히 실려 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삶의 장소, 군대, 울산의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중학교 교사의 경험 같은 것들 모두.


  윤택수에게 시와 시인이란 무엇일까? 그는 제일 앞에 실린 시 <재난과 기아>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로 구애하고 말로 사업하고 말로 반란 일으킨다

  밀하지 않는 자는 망자와 신뿐이다

  정치에 관한 말 분배에 관한 말 절망에 관한 말을 하면 그들이 노한다

  그들은 노예의 말을 활용하지 않는다

  말을 다루는 기술은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다” (p.11 부분)


  그래, 시는 말로 하는 것이지. 말로 세상에 안 되는 게 있나. 정치, 분배, 절망, 그리고 인용하지 않은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불안하고 가냘픈 것, 지친 자와 지루한 자에게 하는 질문, 대지와 대기에 상감象嵌한 증오 같은 것들도. 시인이 시를 쓰는 것, 즉 말하는 건 자유다. 하다못해 세금도 안 낸다. 그러나, 구애하고, 사업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건 사실 알고 보면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란다. 이게 무슨 뜻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죽자사자 그렇게 말로 수다한 사업을 해봐야 나와 내 가족들 목구멍으로 들어갈 양식이 되지 못한다는 거. 다른 하나는, 공들여 정치와 분배와 절망에 관한 말을 했는데 정작 시라는 새를 총으로 쐈더니 새는 이미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다 흐트러졌다는 거.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돈이 안 된다는 건 비슷한데, 두번째 것은 아예 “새”라는 시가 되지도 못한 그냥 헛소리로 끝났다는 것이니 더 참혹하달까.

  이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행위는 표제시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서 더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총신에 온기가 쌓인다

  먹지도 못할 새라며 내심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쟁쟁해오고

  숲의 끝을 돌면서

  무슨 놈의 새가 깃 스침이 그리 눅눅한지

  집으로 돌아가서 책이나 볼 것이었다

  (중략)

  새는 어리고

  구우면 고엽같이 뼈째 부스러진다

  버려진 농막에 엎드려

  총탄을 세고

  소매에 튄 피를 털어내면

  늦은 불면이 온다  (p. 38~39. 부분)


  여기서 “먹을 수 없는” 상태는 위에서 이야기 한 두 가지 가운데 더 참혹한 경우다. 구워봤자 총을 맞은 새는 고엽같이 뼈 째로 부스러져버렸으니. 쏘려면 큰 새를 쏴야 하지만 아무나 다 큰 새를 쏘면 가뜩이나 세상에 넘치는 시인들 전부 랭보일 텐데 그러면 또 재미없지.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 올라 맞아도 아프지 않을 돌 있으면 한 번 던져보시라. 요즘엔 던졌다 하면 시인이나 화가가 맞을 테니까.


  윤택수가 1961년생. 빠른 61년생이면 79학번, 보통이면 80학번, 눈치를 보니까 재수는 집에서 안 시켰을 거 같다. 1980년 불행한 시절에 윤택수는 안전한 대전에서 흉흉한 소문을 통해서만 남도에서 있었던 잔혹한 사건을 듣고 크고 큰 부채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핏빛 소식은 천생 서정시인이고 모더니스트인 윤택수에게도 시절의 부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비 내리는 밤, 소주 한 잔 걸치더니 애꿎은 문을 열어 들이치는 빗속에서 울며 노래한다.



 



  나는

  이 밤에

  깊이 감상에 빠지고

  제 감동에 겨워 전전긍긍 살아가는

  시인이다

  나도 때로는

  격시를 쓰고

  절망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힘찬 시도 쓰고 싶지만

  적에 의해 가슴에 아픈 못이 박혀

  철철 피를 흘려도

  개천에 버려져도

  나는 장엄하게 죽노라 호언하는

  용자도 되고 싶지만

  이 비 내리는 밤

  문을 열고

  울음 우는

  병신 같은 시인이다

  개새끼다

  나는  (전문)



  이렇게 노래할 수 있지. 그러나 이제, 물론 십여 년이 흐른 후에도 그러했겠느냐만, 얼마간 시인은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독후감이 길어지니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의 직업인 용접공과 원양어선 선원과 교사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을 보자. 용접공을 할 때의 울산은 6.29를 기점으로 사업장마다 노동조합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즉, 새로운 노조의 탄생보다 기존에 있었던 사용자를 위한 어용노조의 개편 투쟁이 훨씬 격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쟁의를 시작해 연간 임금 인상률이 20퍼센트에 육박하던 시기의 바로 전이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최고조의 상태였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아무리 모더니즘 시를 주창하는 시인이라도 현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별곡 3>에서 노래하기를


  그해 여름의 울산은

  침잠의 뻐쓰와 침묵의 노동조합이여

  라디오 뉴스를 들음이어

  잘못하여 뉘우치고 잘해서 추억함이어

  무슨 큰 사랑인가 대학 못 간 청춘들아

  빨래도 마르지 않고 자꾸 눈물나네 용접공들아

  (중략)

  하느님 당신은 용접공이십니다

  찢어진 둑들을 때우시고 비인 가슴들을 때워주소서

  우리의 욕심들아

  아멘 청춘들아

  아멘 아멘 용접공들아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려시는가  (후략. P.52~53. 부분)



  윤택수는 또 <박물지 12>에서 자신의 교직 경험을 깊게 반성하고 있다. 스스로 나쁜 교사였다는 반성. 그래서 정식 교직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그랬다면, 잘했다.


  교육은

  피교육자의 교육자에 대한 열광과 찬탄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수수되는 노래이다

  노력에 의한 숙련이나

  시간의 온축에 의한 노회만으로 교사가 되어

  피교육자들을 판단하고 추장하고 징계하는 예를

  우리는 흔히 목격하거니와

  우리들 스산한 추억의 대부분은

  나쁜 교사들에게서 왔다

  내가 좋은 예이다

  용서해줘

  제발 잊어줘  (p.148 전문)



  이 시집이 시인의 첫 시집이면서 유고시집, 그러면 젊은 시절의 연애 감정도 하나 인용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그렇지? 비록 마흔이 되도록 장가 한 번 들지 못하고 총각귀신이 되었을지언정 어찌 마음 속 흔들림 한 번 없이 시절을 보냈겠는가. 달달한 시 한 수 읽으며 독후감을 끝내자.



  심홍빛 나라



  들국화 핀 비탈이 보이는 날에는 편지 못 쓰네

  무슨 상념의 거품이 닿은 솜털이여 가슴 뛰네


  그 여름의 아가미의 스러져가는 열망조차 낙엽 지네

  오래오래 참아온 눈물의 향기 스미네


  아득한 나라의 추목秋木 가지에 놓이는 연흔漣痕이여 미치겠네

  들국화 핀 비탈이 보이는 날에는 편지 못 쓰네 (전문)



  * 연흔漣痕: 바람에 의하여 모래나 눈 위에 만들어지는 물결 모양의 흔적 (네이버 검색,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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