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거인족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장지연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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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극 myth drama. 피란델로는 신화극 3부작을 썼으며 이는 정치 신화극 <신식민지>(1927), 종교 신화극 <라자로>(1928), 예술 신화극(1936)으로 되어 있다고 각주를 달아 놓았다.

  루이지 피란델로는 1867년 시칠리아의 유황 광산주의 아들로 태어나 홈 스쿨링을 하는 등 유복하게 성장했다. 문재가 있어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열두 살 때는 벌써 5막짜리 비극을 가족을 대상으로 공연했단다. 팔레르모와 로마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의 본 대학에서도 학위를 받는다. 이후 시, 소설, 극작가로 이름을 높였으며 193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보면 최상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행복이란 것이 그리 쉽게 오는 법이 아니라서 그도 삶의 곡절을 피할 수 없었다. 피란델로는 아버지의 부유한 동업자의 딸과 결혼을 했지만1903년에 아버지와 아내가 투자한 광산이 홍수로 거덜이 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파산을 맞이하게 됐고, 동시에 이 충격으로 아내마저 정신착란, 조현병이 발현한다. 아내를 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1919년까지 15년 동안이나 집에서 아내의 정신병을 수발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의 광기에 시달리는 동안, 아들마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포로로 잡혀 버렸다. 아내의 정신병적 광기, 포로 상태에 빠진 아들, 그리고 재정적 파탄에 시달리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아들은 풀려나 귀가했으며, 끊임없는 집필생활로 경제적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 예술가 앞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호전적인 파시즘이었다.

  이 극작품 <산의 거인족>을 더 재미있게 읽으려면 피란델로가 대본을 쓴 오페라 <바뀐 아들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좋을 텐데, 비록 이것이 유럽에서는 곳곳에서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민담으로 동아시아에서도 책 좀 읽는 사람들한테 줄거리를 말해주면 당장에 비슷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하겠지만 민담의 제목 <바뀐 아들 이야기>로 내용을 단박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쉬운 얘기로 하자면 체인즐링 스토리다. 가난한 부부가 금발의 아름다운 아들을 낳았는데 어느 날 밤 마녀가 나타나 아기를 데려가고 대신 검은 머리의 못생긴 사내 아이를 남겨 놓았다, 아기는 북국의 왕자 신분이 되어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자라 청년이 되었을 때 남쪽으로 여행을 하다가 진짜 엄마를 만나고, 역시 청년이 된 힘센 검은 머리의 아들이 사정을 알게 되어 자기가 차지해야 할 왕좌를 빼앗기는 거 같아서 금발 청년을 죽이려 하지만 의붓어머니의 간절한 저지로 그냥 길을 떠나 북국의 왕좌에 올랐으며, 착한 진짜 아들은 깨끗하게 왕위를 포기하고 가난한 엄마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런 민담을 오페라로 작곡을 했단다. 근데, 초연을 감상하던 ‘일 두체’, 이탈리아의 두목 베니토 무솔리니는 1막이 끝나서는 열심히 박수를 치더니 2막에선 팍 기분이 상한 얼굴을 했고, 막이 내리자 욕설을 퍼붓는 청중에게 더한 소란을 유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쉬운 얘기로 하자면 폭력적인 검은 머리의 아들을 혹시 호전적인 파시스트의 대장인 자신을 빗댄 건 아닌지 매우 불쾌했던 것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무솔리니가 히틀러나 스탈린 보다는 좀 덜 독한 놈이 되어 관련자 모두의 코에다가 담배연기를 뿜어 사형에 처하지 않았고, 저 알프스 산맥 오지 탄광으로 유배를 보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 광경을 보고 대오각성한 루이지 피란델로는 예술행위에 있어서 질적으로, 영적으로 좋은 작품, 대중과의 접촉성 등에 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 신화극 3부작을 마무리하는 예술 신화극 <산의 거인족 I gigantic della montagna>를 집필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바뀐 아들 이야기>가 무솔리니 앞에서 거덜이 난 해가 1934년, 1936년에 삶을 던져버릴 그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총 3막 4부로 구성한 작품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러나 대단원을 이루는 3막은 “숨을 거두기 전 아들 스테파노에게 3막 구상을 이야기했고 스테파노는 아버지가 전한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여 전했다. 따라서 3막은 구체적 대사들은 없지만 피란델로가 구상했던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5쪽 각주) 즉 미완성 작품이며 마지막 막은 대사 없이 지문, 산문식 설명으로 되어 있다.


​  이 작품은 세 집단의 상호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먼저 백작부인의 극단.

  연극 배우로 활약하던 미모의 일제에게 홀딱 반한 백작이 일제에게 청혼을 했고, 이를 수락하여 일제는 단박에 백작부인으로 승격을 한다. 일제에게는 꼭 공연을 해보고 싶은 걸작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바뀐 아들 이야기>였다. 작품을 검토한 백작 역시 이런 걸작이면 자신의 운도 걸어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어 공연을 지원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문제는 약 42명의 배우가 등장하고 무대와 의상, 조명 같은 것들도 뻑적지근, 워낙 대규모 공연이라서 한 두 푼 가지고 될 일이 아니었던 것. 그래도 예술에 조예가 깊고, 예술을 위한 희생정신이 투철한 백작은 기꺼운 마음으로 아내 이름의 극단을 만들어 <바뀐 아들 이야기>를 지원한다. 그러나 공연은 참패에 참패를 거듭해 쫄딱 망한 백작은 자신의 영지와 성도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으며 백작을 포함해 겨우 여덟 명의 배우만 남아 건초를 실은 수레에 백작부인 일제를 태우고 유랑공연을 해야 하는 처지에 떨어졌다.

  이들이 걸식을 하며 동가식서가숙 유랑을 하다 스칼로냐(Scalogna: 불행)이라는 이름의 빌라에 도착한다. 이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스칼로냐티(Scalognati: 불행한 자들)이라 일컫고 모두 일곱 명이 살고 있으며 마법사 코트로네가 사실상 스칼로냐티의 대장이다.

  스칼로냐는 마법사의 마술에 따라 각종 조명과 (이를 테면 번개, 오로라, 반딧불 같은)효과를 내면서 일반 민중들의 접근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작부인의 극단은 이런 마법에 마치 친근한 듯 빌라에 도착을 하는데, 왜냐하면 스칼로냐에 거주하는 집단과 마찬가지로 극단에 속한 이들도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스칼로냐 입주민들은 고급 예술을 할 능력과 결과물을 소유하고 있지만 일반 민중과 스스로를 격리시키며 이들끼리의 왕국이랄까, 리그에 만족하고 있는 거다. 물론 20세기가 막바지에 이르면 미술, 음악, (일부)문학의 많은 장르가 스칼로냐의 유지를 이어받아,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이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 전문가 집단들만 향유할 수 있는 특별 구역 안에서 존재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강 이해하기 쉽다. 나는 그렇게 했다.

  1930년대 중반의 이탈리아의 한 빌라 스칼로냐에서도 마찬가지라, 이들을 대표하는 코트로네는 백작부인 극단한테 잘 교육받은 탁월한 전문가들의 모임인 이곳에서 자기들과 함께 머물라고 강력하고 집요하게 권유하지만, 명목상 극단주인 백작부인 일제는 끝까지 대중 앞에서의 공연을 주장한다. 일제는 민중과 함께 하는 예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반드시 크게 망하고 말 것임을 확신하는 코트로네는 어쩔 수 없어 마침 거인족 커플 우마 디 도르니오와 로파르도 다르치파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에 위대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바뀐 아들 이야기>를 올리기로 한다. 그러나 결혼식의 주인공인 커플을 비롯해 거인들은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즉 작품에서는 한 번도 “산의 거인족”은 등장하지 않고, 그들의 하인들이 관객석을 빼곡하게 모인 채 공연을 시작한다. 하지만 공연을 그저 재밋거리, 광대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관객들은 걸작 <바뀐 아들 이야기> 내내 산만하게 공연을 망쳐버리고 이에 열받은 백작부인 일제가 무대에서 관객을 향하여 “에잇, 짐승 같은 것들!”이라 쏘아부쳤으며, 이 말을 들은 다중의 관객은 순식간에 흥분하여 무대 위의 일제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너무 잔인하다고? 신화극이라지 않는가, 신화극.


​  이 정도면 일제를 찢어 죽이는 대중이 어떤 집단을 비유하고 있는지 딱 눈치를 채시겠지? 재미있는 희곡 작품이다. 근데 나는 왜 루이지 피란델로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스페인 작가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파시스트 역시 무솔리니가 아니라 프랑코 개자식인 줄 알았다. 괜히 피란델로한테 미안해지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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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9-15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에 이런 극작가가 있었군요.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을 추구했나보네요. 근데 백작부인을 찢어 죽이는 부분에서는 이런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는 거 같네요.
이런 작품도 소화해내시는 골드문트님 덕분에 오늘도 한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Falstaff 2023-09-15 16:41   좋아요 1 | URL
자기가 오페라 대본, 리브레토를 쓴 작품을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매우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정치는 예술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게 옳지만 그게 늘 어려운 건가 봅니다.
하긴 뭔들 그렇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