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 사드 박준용 번역 희곡선
페터 바이스 지음, 박준용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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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태 페터 바이스가 유대계 독일인, 동독, 즉 독일 민주공화국 사람인 줄 알았다. 그의 작품은 <저항의 미학>, <소송: 새로운 소송>, 그리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이렇게 셋을 읽었는데도. 어디쯤에서 기억이 헝클어졌거나 없는 사실을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을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뭐든지 확신하면 안 되는 거.

  <마라/사드>의 원래 제목은 <사드 후작의 연출로 샤랑통 수용소의 연극단에 의해 상연된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살해>로 페터 바이스가 브레히트한테 자극을 받아 쓴 작품이며, 세계 극작계에 페터 바이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대표작이라고, 책의 뒷 해설이 아니라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와 있다.

  나는 항상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라하고 당통을 헷갈리는데, 혁명 당시 같은 산악파로 거대한 체구의 당통이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주장한 반면, 오랜 도피생활로 얻은 피부병 때문에 늘 빌빌거리면서 목욕요법에 기대야 했던 마라가 강경파였던 걸로 알고 있는 바, 이게 수시로 마라가 당통인지, 당통이 마란지 왔다갔다 한다는 말씀(화가 다비드의 그림 제목이 <마라의 죽음>인지 <당통의 죽음>인지 헷갈리는 게 핵심이다). 둘이 피 터지게 다투는 와중에 매사 너무 진지했던 먹물 로베스피에르가 집권을 하다 곧바로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유명한 공포정치의 막이 내리는 거의 동시에, 소령 부오나파르테 나폴레옹이 나타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번다고, 황제의 관까지 직접 쓰는 일이 벌어지게 만든 것이 프랑스 혁명이지 아마? 물론 말은 이렇게 한다고 내가 프랑스 혁명을 우습게 아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말을 조금 재미있게 하자는 것이었지, 인권과 평등을 주창한 혁명 정신을 어떻게 폄하하겠는가?

  마라와 당통, 로베스피에르가 활약하던 1790년대 초반에도 사회주의 사상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 책 <마라/사드>를 읽어보면 특히 마라의 생각으로 분명하게 사회주의 사상이 드러난다. 원시적인 사상은 있었겠지만 작중 마라의 주장이, 공산주의자인 극작가 페터 바이스의 생각인지 아니면 바이스가 마라의 저작이나 남긴 기록을 검토하여 발췌해 사용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독자야 읽으면 그뿐인 것을. 극 중에서 마라는 완벽한 혁명가로,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버리려고 하는 반면에, 사드는 원래 그의 성향대로 허무주의자 또는 허망ist, 현실과 이의 개선을 근본부터 우습게 여기는 인간이다.

  마라와 사드가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드 역시 혁명 후에 국민회의 대표도 하고 법관으로 잠깐 활동한 전력이 있으니까.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역자 해설을 슬쩍 뒤져보니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여튼 작품은 긴 원래 제목에서 보듯이, 중죄인이나 정신이상자를 모아 놓은 샤랑통 수용소에서 본인이 극작가이기도 했던 사드가 희곡을 쓰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이 연극단을 만들어, 사드가 직접 연출을 해 공연을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사드의 극작품 말고, 연극을 공연한 광경을 다시 재현한 희곡이라서, 정신병원 원장 콜미에가 연극에 개입해 특정 내용은 무대에 올리면 안 될 것이라고 참견하기도 하고, 이에 사드는 모른 척 픽, 헛웃음을 흘리기도 한다. 연극은 1808년에 막이 올랐다고 설정이 되어 있어서 진짜로 마라가 샤를로테 코르데의 칼에 맞아 죽고 15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이다.

  내용이야 다들 아실 터이니 구체적인 건 생략하기로 한다. 마라를 세 번 찾아간 코르데가 드디어 목욕중인 그를 만나서 다비드의 그림처럼 칼로 폭, 가슴을 찔러 죽인 사건을 다루었다. 그러나 바이스의 진짜 목적은 마라의 혁명 정신과 사드의 허무주의를 비교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여기에서 하나 의문이 들었으니 조금 인용해보자. 본문 75쪽이다.


​  우리는 배부른 지배 계급을 뒤집어엎어

  그들의 무기를 빼앗고

  많은 자들을 내몰았소.

  이제 그들의 자리에 대신 들어앉은 것은

  우리와 함께 횃불과 깃발을 들었던 자들이지만

  옛날이 좋았다고 믿고 있소.

  이제 모든 게 밝혀졌소.

  우리가 혁명을 위해 흘린 피를

  장사꾼과 상점 주인들이 챙긴 것이오.

  부르주아 계급

  그들은 새 지배자가 되었고

  우리는 다시

  그 발밑에 놓였을 뿐

  아무것도 얻은 게 없소.


​  말은 똑바로 하자. 혁명으로 인민/시민이 얻은 것을 장사꾼과 상점주인으로 대표하는 부르주아들이 가지고 간 것이 맞나? 혁명의 와중에 기회를 얻어 새롭게 장사꾼과 상점주인이 되고, 이 가운데 절호의 찬스를 제대로 살린 몇 명이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으로 편입된 것이 아니고? 물론 마라의 주장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지만, 내 생각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에드몽 당테스가 저 절해고도 외로운 섬 위의 끔찍한 감옥에서 죽어가는 빵 동료 한 명을 잘 만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것처럼 말이지. 아니면 저 조지아 촌놈 아오시프 주가시빌리가 존경해마지않는 선배님 레닌이 죽자 한 방에 권력을 쥐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부르주아 중의 부르주아 스탈린이 된 것 마냥? 뭐 그런 거다.

  프랑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 프랑스의 진골 귀족은 샤를마뉴 대제 시절에 동네 양아치였다가 대제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운 건달들이었다. 이 사람들을 맨입으로 보낼 수 없으니 대제가 땅을 떼 주고 귀족 칭호를 준 것이 시작이다. 그러다가 앙리 4세 시절에 한 번 크게 회오리가 쳐서, 샤를마뉴 대제 시절의 귀족들 가운데 태반의 가문이 멸족을 당했지만 새롭게 앙리 4세를 도운 논두렁 건달들이 다시 땅을 얻어 귀족 작위를 얻고, 이들이 진짜 귀족 행세를 한다. 세월이 흘러 부오나파르테 황제가 전투에서 이길 때마다 말로만 그냥 백작이니 남작이니 해서 또 대량으로 귀족 부르주아가 생긴 거하고, 뭐가 다른 디? 그렇게 역사의 변곡마다 귀족 또는 부르주아 계급이 새롭게 갈리는 것이 이상혀? 진짜로 그려?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그렇게 어려운 근본 원인이 거의 누구나 속으로는 귀족, 부르주아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걸 타도하자고 주장하는 거라는 우습고도 명백한 사실을, ahime, 나도 모른 척하고 싶다.


​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내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상대는 세계적인 지성을 갖고 있다고 내가 믿는 페터 바이스다. 그의 역작 <저항의 미학>을 읽어보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인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마당에 내가 함부로 바이스의 의견에 대고 뭐라 깝죽댈 수 있냐 말입니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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