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대산세계문학총서 175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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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롬비아 소설. 콜롬비아 작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당연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 다음이 <폐허의 형상>과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쓴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와 <청부 살인자의 성모>의 작가 페르난도 바예호. 그리고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의 알바로 무티스와 <과부마을 이야기>를 쓴 제임스 캐넌. 콜롬비아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20세기가 열리기 전부터 지금까지 하고 한 날을 쿠데타와, 혁명의 탈을 쓴 반란으로 숱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갔고, 콜롬비아는 이에 더하여 전세계 코카인의 80퍼센트를 공급했던 메데인과 칼리의 마약 카르텔(파블로 에스코바르!) 덕택에 드센 이웃나라하고 비교할 수도 없이 치안이 개떡 무인지경이었는지라 조금 살 만한 집안의 자제들은 미국이나 멕시코, 스페인 등지로 이민을 가버리던지, 하여간 그쪽에서 살다가 에스코바르가 강변에 검은 색의 하마 몇 마리를 남기고 지붕에서 총맞아 죽은 이후에 귀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 예를 들었던 작가들 중에서도 가브리엘 마르케스, 가브리엘 바스케스, 페르난도 바예호, 제임스 캐넌이 이런 축이다. 알바로 무티스와 오늘 읽은 호세 리베라는 비록 정쟁은 심했지만 적어도 에스코바르가 오직 마약 하나를 팔아 전 세계 7위의 부호로 꼽히기 전 사람, 그러니까 노땅 축에 들어 평생 콜롬비아를 떠나지 않고 작품을 쓴 사람들이고.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의 생몰연대가 1888~1928. 이렇게 오래 전 사람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기준으로 최상의 교육을 받아 법학과 정치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소네트 55편을 발표했으며, 1924년에 유일하게 남은 장편소설 <소용돌이>를 출간했다. 이 작품에서 필을 받은 리베라는 후속으로 <흑점>을 써 거의 완성한 거 같은데, 1926년에, 미쳤다고 그걸 뉴욕까지 가지고 가서, 거기서 택시에 두고 내렸는지, 지하철 철로 위에 흩뿌려졌는지 하여간 분실했다. 그리고 2년 후, 콜롬비아에서 불과 마흔 살의 나이로 날 때부터 입에 물고 다니던 은수저를 뱉고 천국의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했다.


​  <소용돌이>의 주인공은 ‘아르투로 코바’라는 이름의 피끓는 청년이다. 이 청년이 알리시아 아가씨와 연애를 하는데, 자기들 원하는 대로 연애가 이루어지면 그건 소설도 아니라서, 젊은 연인은 양가 모두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미 불이 확 붙어버린 상태. 불이 붙어도 너무 붙어서, 탈 대로 다 타버려 이제 재가 되어 그랬는지 아르투로가 보기에 알리시아의 두 눈에서 불행을 감지해버렸고, 이 때는 벌써 순수한 애정에 대한 희망을 버린 상태였단다. 그럼 뭐냐 하면, 애초부터 애정이 많은 남자도 아니어서 그랬는지, 알리시아가 자신에게 후회를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불안감을 진정시켜주는 존재 비슷하다고 여겼다. 그래도 한 번 사랑한다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투철했던 거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그러지 않았더라도 알리시아는 나름대로 한 평생 이럭저럭 살만 했었으니, 부모가 늙었지만 돈이 무척 많은 지주한테 시집을 보내 남편이 죽기만 하면 그날로 팔자가 활짝 필 수 있게 다 조치를 해두었던 찰나였다. 하여간 아르투로의 자존심 혹은 소유욕 때문이었는지 더는 견딜 수 없을 즈음, 아르투로와 알리시아 커플은 수도 보고타를 떠나 말 잔등에 올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저 광막한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오리노키아 지방의 광활한 지역, 이 중에서도 카사나래로 야반도주를 떠난다. 이렇게 작품은 시작한다.

  평원에서의 자잘한 에피소드도 있다. 한참 잘 가다가 자칭 보안관이라고 주장하는 혼혈인 페페 모리요 리에토, ‘피파’라는 작자가 등장하여 시비를 좀 걸다가 스스로 알리시아의 종복이 되기를 자청한다. 그렇지만 그날 밤에 피파는 돈과 물건이 든 안장을 채운 말을 훔쳐 유유히 사라진다. 물론 저 뒤로 가면 다시 나타나서 한 번 더 이들의 종복을 자청하고, 또다시 배신을 한 후에 한 순간 비명으로 생을 마치긴 하나 그렇게 큰 비중이 있지는 않다.

  60세가 넘은 돈 라파엘. 아르투로의 아버지 친구이기도 하고, 과거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쇠락한 사람 특유의 품위를 간직해서 1부가 끝날 때까지 연인들의 충실한 도우미로 활약하는 돈 라파엘, 돈 라포는 현재 평원을 떠돌며 일종의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세 명은 사이 좋게, 당연히 경험 많은 돈 라포가 될 수 있는 대로 편한 일정을 잡아 고단한 행진을 며칠 동안이나 거듭한 후, 드디어 황포 돛대는 휘날리지 않지만 이름만은 라 ‘마포리타’라 지은 촌락에 도착한다. 이곳에 백인의 집이 있어서 집 주인은 피델 프랑코, 안주인은 그리셀다 아가씨.

  피델 프랑코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아라우카 경비대에 중위로 복무하다가 그리셀다에게 찝적거리는 경비대장을 칼로 폭폭 찌른 후 탈영을 해 아무도 찾지 않는 카사나래로 와서 가우초 일, 물론 가우초도 나름으로 최고 가우초를 해서 살고 있다. 그리셀다 아가씨가 귀에 에메랄드 귀걸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림이 그리 궁색하지 않은 거 같다. 실제로 근동의 대목장주 수비에타 노인이 소 천 마리 또는 그 이상을 싼 가격에 팔겠다고 제의하니까, 돈 라포와 뜻을 맞추어 선뜻 천 마리 이상의 소를 사겠다고 덥석 제의를 받기도 한다.


​  그런데 이때, 수비에타 노인의 집에 얹혀 있으면서 수작을 부리는 악당 바레라가 있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백인들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라틴 아메리카 밀림에서 인디오들의 씨를 말려가며 노예노동을 통해 고무채취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악당 바레라는 카사나래 일대를 돌아다니며 물라토, 인디오, 심지어 백인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비차다 지역의 고무농장에서 일할 일군을 모집하고 있다면서, 그곳에서 일을 하면 삼시 세끼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일당으로 5 페소를 지급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이게 당시엔 파격적인 조건이었나 보다. 카사나래의 거의 모든 목동, 가우초와 식구들은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매일 술이나 마시고, 빈둥빈둥거리고, 소 젖도 짜지 않아 벌판에 암소들의 곡소리만 처량한 거였다.

  아르투로 커플이 임시로 지내고 있는 마포리타에도, 특히 두 여인이 광막하고 벌판 밖에 없는 살벌한 카사나래에서 사는 것보다 밀림 속이기는 하지만 보다 나은 복지를 약속하는 비차다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이 집엔 현명한 물라타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딸) 노파 세바스티아나와 그녀의 삼보(흑인과 물라토/물라타 사이의 소생) 아들 안토니오가 있었는데, 젊은 여성 둘을 제외한 모두는 말을 탈 수 없는 울창한 밀림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 와중에 우리의 주인공 아르투로는 자기 커플에게 숙소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피델의 아내 그리셀다와 할 건 다 했으나, 그렇다고 피델 모르게 두 여자를 데리고 비차다로 갈 수는 없었다. 딱 이 때 수비아토 노인이 소 천 마리를 싼 값에 팔겠다고 했고, 돈 라포와 피델이 돈을 구하러 떠난 사이, 아르투로는 노인의 집에 쳐들어가 온갖 술주정을 부렸고, 정신이 들어 마포리타로 돌아와보니, 이미 두 젊은 여자는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쓰이는 관계로 의심을 했었는 바, 바레라를 따라 비차다로 달아난 다음이었다.


​  뭐 스토리가 그렇다는 거다. 이게 1부. 이어지는 2부는 아르투로, 피델, 삼보 안토니오, 다시 등장해 뒷덜미를 잡힌 인디오 출신 피파, 이 네 명이 여자들을 찾아 나선 여정. 한 번 더 이야기하자면, 스토리가 그렇다는 것.

  스토리보다 더 중요한 건, 라틴 아메리카의 독자들이라면 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극동아시아의 독자인 내가 읽기로는 끝도 없는 벌판과 열대 밀림이 펼져치는 파노라마. 이걸 묘사하는 1920년대의 조금은 예스러운 화려한 문장들. 그것만 감상해도 충분하다. 말로는 쉽지만 광경 자체를 진짜로 본다면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 대평원의 노을. 습지 원시림을 싹 쓸어가는 수억 마리 병정개미들의 행진, 지옥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사람을 흰 뼈만 남기고 몽땅 뜯어먹는 피라니아. 이런 놀라운 자연 속에서 어쩌면 라틴 아메리카의 붐 문학은 이미 배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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