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대산세계문학총서 174
아마두 쿠루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처음 읽은 아마두 쿠루마. 1927에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나 2003년 프랑스 리옹에서 삶을 마친 작가. 그가 쓴 다섯 편의 소설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란다. 우리나라엔 네 번째 소설, 아프리카의 소년병 이야기인 <열두 살 소령>과 동화책 <아프리카의 사냥꾼 야쿠바> 이렇게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을 읽고 곧바로 <열두 살 소령>을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다. 처음 보는 작가의 첫 작품인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이하 “들짐승”으로 표기>를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는 의미랄까?

  어느 곳이 됐건 간에 1927년에 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식민지, 독립전쟁, 독재, 냉전, 혁명 또는 내전 등등, 살면서 단 하나라도 겪지 않으면 좋을 다양한 불행을 모두 경험해보았다는 말이 된다.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프랑스에 저항한 할아버지를 둔 괜찮은 집안 출신인 쿠루마는 1950년부터 54년까지 프랑스 식민지 부대원으로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 독립군들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작품의 주인공인 독재자 코야가의 이력 가운데 하나로 작품에 등장한다. 이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가 회계사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2년 동안 일을 하다, 코트디부아르가 독립을 한 1961년에 귀국했다. 그러나 독립 정부는 쿠루마를 곧바로 체포하고, 악명 높은 아프리카의 감옥을 경험하게 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했으나 여전히 신식민주의와 절정을 맞은 냉전시대의 기류 속에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던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얼마 안 가 석방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후 신생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일들에 관한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을 한다. 이렇게 프랑스의 한 공인회계사는 문학적 투사로 변신을 하고, 한 편의 희곡, 다섯 편의 소설, 다섯 편의 동화를 남긴다.


​  <들짐승>은 구성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판소리하고 비슷하다. 화자는 ‘빙고’. 사냥꾼의 위업을 노래로 칭송하는 소리꾼이며 음영시인으로 ‘그리오’라 불린다. 사냥꾼의 전통적 정화 의식인 돈소마나를 주관하며, 작품은 모두 여섯 마당의 돈소마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오에게는 제자이자 조수, 우리의 판소리와 굳이 비교를 하면 고수와 비슷한 티에쿠라가 하나 있어서 돈소마나 중에 코르두아, 즉 광대 비슷하게 춤도 추고, 고수처럼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토템이 매falcon인 ‘코야가’로 군인이자 대통령, 가장 위대한 장군, 가장 위대한 “사냥꾼”이다. 그리하여 코야가와 그의 오른팔인 교육부 장관도 하고 내무부 장관도 하는 마클레디오를 앞에 놓고 돈소마나를 열 수 있던 것. 코야가는 람세스 2세, 순디아타와 함께 인류의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아프리카 사냥꾼으로 골프 공화국의 독재자. 이이의 실제 모델은 차마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을 쓸 수 없었던지 토고의 지도자 ‘냐싱베 에야데마’란다.  내게는 코트디부아르와 토고, 하면 드로그바와 아델바요르, 각 한 명씩 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 이름을 댈 정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이들 나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는 참으로 다양한 독재자가 오랜 세월을 해먹었다. <들짐승>에서도 다양한 독재자의 스케치가 등장한다. 산봉우리 공화국 기니의 대통령 세쿠 투레, 흑단 공화국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필릭스 우푸에부아니, 두 개의 강 나라 중앙 아프리카의 하이에나 토템 황제 장베델 보카사, 산악 및 사막 국가 모로코의 자칼 토템 왕 하산 2세 등등 쿠루마는 특히 중부 아프리카를 골라 내놓고 비아냥거린다.

  코야가는 토고의 산악지역에 사는 나체족 출신이다. 처음엔 나체족 역사상 가장 놀라운 에벨마, 즉 격투기 챔피언이었던 ‘차오’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차오는 의사소통 실수로 그만 프랑스 군대에 징집을 당해 1917년 1차 세계대전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베르됭 전투에 참전,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해 중위의 명령에 불복하고 독일군 진지로 혼자 뛰어들어 다섯 명을 죽여버리고 자신은 부상을 입는다. 이에 깜짝 놀란 프랑스 군은 차오에게 무공훈장, 십자무공훈장, 레지옹 도뇌르 십자훈장, 식민지 훈장, 이렇게 사관왕에 올려놓는다. 아프리카 촌놈이 번쩍이는 훈장을 자랑하고 싶지만, 고향에 와봤더니 전부 발가벗고 다녀 도무지 자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차오는 나체족 역사상 처음으로 옷을 입었고, 옷 위에 훈장 네 개를 붙인 채 뻐기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러니 차오가 주인공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차오가 옷을 입음으로 해서 프랑스 식민정부는 나체족을 포함한 모든 원주민에게 1년에 세 달 동안 무보수로 백인 이주민을 위해 의무적으로 노동을 하게 했고, 인두세를 부과하는 등 노골적인 경제적 착취를 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잔뜩 기대했던 차오는 독자의 기대를 무시한 채 금방 죽어버리고 대신 그의 아들 코야가가 등장해 아버지보다 더욱 찰진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코야가는 아버지를 닮아 힘도 좋고 날쌔고, 훗날 천하에 둘도 없는 사냥꾼이 되었듯이 다섯 살 때부터 동네에서 쥐 잡기의 명수로 불렸다. 게다가 똑똑하기도 해서 산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 시기에 고산지역 소년들을 몰고 단체로 도망가 축제 때마다 벌어지는 격투기 시합에 참가했고, 당연히 1등을 먹었으며, 대가로 학교에서 퇴학조치를 받았지만 식민 정부의 백인이 퇴학 명령을 철회시키고 만다. 그러나 맹수는 길들여지지 않는 법. 이후 매년 산악 지역 축제인 하마르탄 때마다 탈출을 하고 그 벌로 수사 선생한테 서른 대씩 얻어 터지지만 원주민한테 그깟 얇은 회초리로 맞는 거야말로 껌이었다. 식민지 행정관은 코야가에게 도의적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군 다섯 명을 죽이고, 나체족에게 옷 입기를 도입했으나 자신이 바로 그 영웅 차오를 죽인 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무난히 졸업을 했고, 머리가 좋아 행정관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싶어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한 코야가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불량한 선동꾼으로 자리를 잡았다. 학교는 그의 불량기에 진저리를 치다가 생루이의 군부대 자녀를 위한 학교로 전학을 시켰고 거기서 기어이 퇴학을 맞는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세네갈 원주민 보병부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인도차이나로 파병됐다.

  프랑스에서 온 백인들은 베트남의 덥고 습기 많은 기후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생을 한 반면 원래 더운 지방에서 낳고 자란 아프리카 군인들은 미끈미끈한 진흙 구덩이에서도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고 주장한다. 백인들의 눈으로 볼 때, 아프리카 출신 보병. 가운데서도 산악지방 원주민, 이들이야말로 보병대의 꽃이었다. 산악 지역 출신 남자들도 코야가가 제대한 이후 프랑스 군대에 입대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으며, 여성들이 제대한 남자를 특별히 그윽한 눈길로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에 더했는데, 하여튼 줄줄이 징집이 아니라 지원병으로 들어가, 줄줄이 인도차이나로 파병을 갔다. 그들의 속셈은 제대 후에 고향에 돌아와 고향의 풍습에 맞게 제대로 약탈혼을 하기 위해서.


​  고국으로 복귀한 코야가는 아버지 차오처럼 나대는 대신, 때를 잘 만나 독립을 한 조국의 수도에서 한 번 투옥되었다가 탈옥에 성공을 한 후, 프라카사 산토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모의를 한다. 모반자들은 대통령 관저를 포위하고, 코야가가 이끄는 스무 마리의 아프리카 들개, 리카온과 함께 공격을 시작한다. 리카온 하나가 총으로 대통령을 쏘았으나 가까운 거리에서도 맞추지 못한다. 쇠붙이는 위대한 자의 살을 뚫지 못하는 법이라서. 그리하여 코야가는 독을 묻힌 수탉의 며느리발톱이 달린 화살을 쏘아 프리카사 산토스 대통령을 푹 쓰러뜨린다. 한 병사가 연속 사격으로 목숨을 완전히 끊은 다음 몸을 구부린다. 그는 이미 죽은 대통령의 바지 단추를 끄르고 익숙한 솜씨로 거세를 하고, 피로 뒤덮인 성기를 시신의 입 안으로 찔러 넣는다. 요사의 소설 한 장면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이걸 고문이나 지독한 복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일종의 의식. 죽은 자는 자신의 살해자를 공격함으로써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힘이 있는데, 살해자는 희생자를 거세함으로써 시신에 내재하는 힘을 제압한다는 거였다. 일종의 액막이. 이후 독자는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죽자마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죽기 전에 이와 같은 의식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는 독재자가 되기 전의 일. 이후엔 독재자가 된 후 독재를 지키기 위한 장면이 길게 나온다. 이에 덧붙여 이웃 나라 독재자들의 다양한 모습도 소개를 하고, 독재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도 소개한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도 경험해봐서 아니까. 여차하면 등장했던 문구들. 북괴의 남침 야욕. 운운.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두려워한 미국과 서유럽이 공산주의보다는 차라리 독재자를 지원했던 것이 장기 집권과 부패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럴 듯하다고 본다. 서유럽과 미국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웃기고 있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서유럽과 미국의 부르주아들이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를 차단하기 위하여 히틀러의 군비확장을 눈감아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독재자들을 비호한 것일 뿐. 공산주의가 폭망한 이유? 하여간에 권력이란.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 같이 독재를 해서 결국엔 부패한 것이 첫째고, 자본주의에 비하여 능률적이지 않아 경쟁에 실패했던 것이 다음이다. 마르크스가 너무 순진했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봤다.

  우리나라 독재자가 자주 썼던 구절, 한국적 민주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한국적인 건 뭐야? 독재 아냐? 파시즘 아냐? 파시즘/독재는 누구/어떤 집단에 의해 저질러지던 무조건 나쁜 거다. 동무들아, 현혹되지 말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