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희곡집 1 박근형 희곡집 1
박근형 지음 / 연극과인간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을 대기에도 민망한 연출가 이윤택과 더불어 우리나라 극작 및 연출을 대표했던 박근형.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는 수배하기가 쉽지 않다. 이너넷 책방 알라딘은 이렇게 소개했다.


  “1963년 월남한 실향민 박창봉(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조산리)과 지갑남(함경남도 신흥군 단봉리) 사이에서 막내이자 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3년생. 정확하지는 않아도 연령별로 보면 우리나라 반만 년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신생아를 출산한 해로 기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알고 있다는 거. 아마 이게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고 조루증의 상징인 “토끼”띠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하여튼 이 계묘년생들은 정수리에 흰 버터를 뒤집어쓰고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날 입때까정” 가장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소위 86세대의 좌장 격이면서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경쟁을 해보지도 않고 꿀 빤 세대”라는 지적질을 받기도 하는데, 계묘생들 입장에선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일 거 같다. 지금 말하는 기준은 평생 힘 없이 살면서 겨우 부모세대의 가난에서 벗어난 대다수 선량한 민중, 이젠 꼰대 민중이 된 사람들 이야기다. 근데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말자. 얼른 쓰고 밥 먹어야 하는 시간이다. 밥맛 떨어질까 무섭다.

  하여튼 박근형도 학벌위주의 사회에 속 치열한 경쟁에 치어, 전두환 정권이 작년부터 대학의 졸업정원제를 시행해서 입학정원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영부영 병역을 마친 다음 1986년 “극단 76”에 입단, 배우로 연극계에 첫 발을 뗀다. 잘했다. 일찌감치 자기 길 찾는 게 제일이다. 박근형은 자기 속에서 배우보다는 연출이 더 어울린다는 걸 발견하고 드디어 연출로 전향해 배고픈 성공의 길을 걷는다. 어쨌거나 지금은 서울예종 연극원 연출과 교수를 하고 있으니 뜨긴 떴다.


  1997년 자신의 극작품 <쥐>를 연출해 무대에 올려 인정을 받는다. <쥐>는 이 책의 세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관객이 입장하면 제일 먼저 배경으로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쾅쾅 때려준다. 이 음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통해, 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전쟁 장면으로 회자되는 대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곡이다. 초연 당시엔 코다 부분에서 진짜 대포를 꽝, 꽝, 꽝, 꽝 발사해 극적 웅장함을 더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관객 또는 독자는 전승기념이 아니라 전쟁, 모든 것을 다 폐허로 만들고 사람을 최악의 기근으로 몰아가는 재앙 만을 생각해야 한다.

  인류에게 가장 혹독한 시기가 도래한 것. 기아와 질병, 이산 등으로 남은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최고의 지향점은 하루 하루도 아니고 한끼, 한끼의 ‘목 넘김’인 상태. 아이들에게 애완으로 기르라고 아버지가 가져온 토끼는 그날 저녁거리로 엄마에 의하여 상에 오르고, 아버지는 고기가 토끼인 것을 알고도 맛나게 잡수시는 풍경. 이들은 사냥을 나가 거의 죽어가는 짐승을 가져와 도살을 해 음식을 만드는데 그게 숨이 넘어가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는 거. 아이가 사라져 미친듯이 찾아다닌 엄마에게 아이의 살코기를 대접하고, 엄마 역시 맛나게 먹는다는 crazily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토록 인정을 받았을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대가로 굴욕적인 통제를 당해야 했던 시절의 경제적 혼란과 공황이 아니었더라도 성공할 수 있었을지, 솔직히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그것도 다 이이의 운이다. 운에 대해서는 질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축하만 할 뿐.


  박근형을 출세가도로 만들어준 진짜 작품은 1999년에 무대에 올려, 다음해인 2000년에 연극 관련 상이란 상은 싹쓸이해버린 <청춘예찬>이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했으니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제를 휩쓸면서 박근형을 극작과 연출, 두 부문의 국가대표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래서 《박근형 희곡집 1》에도 제일 앞에 실렸을 것.

  하지만, 두 연극관련 축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우수작품이라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니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사용하는 말(언어)들이 드러워서 못 읽겠다. 물론 꾸역꾸역 다 읽기는 했다. 이게 뭐야 근데. 아빠하고 아들하고 앉아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아서 쏟아지는 아들의 대사를 한 번 보자.


  “그래서 뭘 잘해서 병신 새끼처럼. / 내가 안 죽이고 데리고 사는 게 고마운 줄 알아야지. / 사람이면 안 그래 꼴에 애비라고 지금 폼 잡는 거야.”


  지금은 이혼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했다. 아버지가 열을 받아 화장실 세척용 염산을 들었더니 엄마가 악이 나서, “부어봐, 부어 보라고, 병신아!” 하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그래 정신이 나간 아버지는 엣다, 먹으라며 정말로 염산을 어머니의 얼굴에다 뿌렸는데, 어머니는 이때 눈을 감지 않아서 그냥 동공이 타버려 맹인이 됐다. 어머니는 이혼하고 나가서 맹인 안마사를 하다가 다른 맹인을 만나 재혼을 해 살고 있다. 아버지는 그일 이후 폐인이 되어 가끔 무작정 어머니가 일하는 안마시술소를 찾아가 어머니로부터 3만원이면 3만원, 5만원이면 5만원을 받아, 돈이 떨어질 때까지 날이면 날마다 김치를 안주로 깡소주를 들이켠다. 아들 청년은 고등학교를 2년 꿇고 졸업도 하지 않았으면서 티켓다방에서 못생긴 덕분에 아직 순결을 간직하고 있는 다섯 살 위의 간질병자 ‘간질’이를 임신시키고 집에 데려온다.

  나름대로 세기말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린다고 했지만 하여간 나한테는 과했다. 청년과 간질이 섹스를 하고 난 다음에 관객들에게 굳이 ‘빤쓰’만 입고 누운 남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섹스 후 파트너끼리 누워서 하는 대화를 속옷 입은 상태로 하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극에서 벗은 몸을 보여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장면에서 쓸데없이 벗기지 말라는 거다. 꼭 벗어야 하는 장면에선 정말로 다 벗기는 한이 있더라도. 연출가가 (소수의? 다수의?)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신체의 일부분은 관객 역시 다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보면 사실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말씀이야.

  그리고 비단 <청춘 예찬> 뿐만이 아니라 왜 욕을 그리 많이 하는지 난 정이 뚝뚝 떨어졌다. 작품 전부 다 그렇다.


  국립극단에서 연출을 하던 박근형은 2001년에 조연출을 맡은 당시 초보, 아니면 신입 연출가(였던) 지망생 이은준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고 2002년에 의기투합해 “극단 골목길”을 창단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인 2003년, 우리나라 연극발전에 관해서는 공이 큰 동아일보가 그를 “차세대를 이끌어갈 연출가”에 1위로 선정이 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는 등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이후 이어지는 연극계에서의 활약을 다 이야기하면 입술이 부르틀 정도의 인물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실력이 있으면 뭐하나. 내가 읽기에 다분히 고의적으로 험한 단어를 골라쓰는 인종인 걸. 원래 계묘생들 사주가 그렇다. 어려운 굴곡이 생기면 운 좋게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63년 계묘생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다른 생년과 비교하면 이런 인간들의 비율이 많다는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아내가 계묘생이다. 꿈 많은 여고시절에 담임선생이 그렇게 이야기했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2-03-02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아내 얼굴에 염산뿌려 눈 멀게 만들어놓고 다른 남자랑 재혼한 그 아내가 안마해서 번 돈을 타다 쓴다구요?!
읽기 정말 거북하네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하는 말도 그렇고 ㅠ

Falstaff 2022-03-02 08:41   좋아요 1 | URL
그거 때문에 아들한테 내내 욕을 얻어 ˝처먹지요.˝
이이 작품 읽어보면 연극보다 돈 팍팍 벌리는 영화쪽에 미련이 많은 것도 같고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설정도 거의 막가파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