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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무 ㅣ 창비시선 368
정희성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전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작과비평사, 1978)
대학에 입학하고, 앞 뒤 잘라 말해, 이 시 한 수에 나가 떨어졌다. 이런 것들도 시가 되는구나. 물론 정희성 한 명도 아니었고,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노래 하나 때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하자. 이전에 배운 교과서는 여전히 최남선, 서정주 같은 부일 시인과, 변영로의 <논개>처럼 애국심 고취의 목적시, 아니면 “술 익는 마을에 타는 저녁놀” 완전히 순수시만 배웠다가, 강변에 나가 샛강 바닥 썩은 물에 삽을 씻으며 슬픔도 퍼다 버린다는 노래를 들으니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물론 이전에 신경림, 황명걸, 조태일 등도 있긴 했다.
정희성은 해방둥이로 경남 창원에서 낳고, 전국 각지를 돌며 성장한다.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대하자마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하면서 데뷔한다. 이후 서울 소재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오래 근무하는데, 아마 숭문고등학교였지, 라는 오래된 기억이 틀리지 않아서 나도 깜짝 놀랐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발문을 쓴 김종철 전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말에 의하면 정희성은 학문을 계속하기 위하여 대학원을 수료하고도 논문을 쓰지 않기로 결심을 해, 교수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건 대신 고교 국어교사로 남겠다는 각오가 저와 같은 뭇 속물들에게 매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정희성은 첫번째 시집 《답청》이지만 중요한 시는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다시 실린 것으로 보아 첫 시집은 시인에게 그리 중요한 흔적을 낸 것 같지는 않다. 두번째 시집인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정희성은 본격적인 사회비판적 참여시를 쓰기 시작해 2013년 이이의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나무》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사람은 당연히 늙는다. 정희성도 늙었다. 시인이 늙으면, 물론 여전히 팔팔하고 알통이 울뚝불뚝한 문정희 같은 이는 별개로 하고, 이제 나이든 시인의 주변을 둘러보며 자잘한 살림살이를 간단하게 메모하는 것처럼 보이는 ‘살림시’ 같은 걸 볼 수 있다. 정희성도 마찬가지다. 시가 극도로 짧아졌다. 그러면서 수십년 동안 시를 써온 시인답게 한 장면이 함의하고 있는 그림을 간결한 말로 보여준다. 예컨데,
불 꺼진 여자
환자복 입은 여자가 병원 벤치에 앉아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고 있다
무슨 속 태울 일이 있었을까
타다 만 장작마냥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문)
말 그대로 병원 건물 밖 벤치에 앉은 환자가 담배 피우는 걸 보고, 썼다기보다 장면을 단어로 “그렸다.” 물론 《저문 강에 삽을 씻고》와 《그리운 나무》 사이의 세월동안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경제 발전과 문화 한류에 힘입어, 우리나라 문학이 이런 것들에 비교해 상당히 느리게 발전을 한 결과, 다른 장르와 비교해 아직까지 변두리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보편문학으로 편입하는 기로를 맞이한다. 그래 이제 투쟁할 대상도 옛 시절의 파시스트들이나 정치군인들에 비교해 전혀 막강하지 않으며, 또한 절대악까지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럴 수 있겠으나, 시인의 억양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만일 45년쯤 전이라면 곤충 매미는 노동하지 않고 평생을 즐기는 부르주아 계급을 은유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슬픔과 울음으로 바뀌었다.
매미
매미도 나무를 붙들고
울고 싶었을 것이다
몸 가눌 길 없는 슬픔으로
매미도 기대 울고 싶은
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땅속에서 몸부림치다
한여름 며칠쯤은 하늘을 바라
허물을 벗어놓고 울고 싶었을 것이다 (전문)
이런 정희성은 조금은 낯설다. 그래도 반갑다. 늙으면 이런 시인들, 정희성, 오탁번 같이 이제 세상을 어여쁘게 보고 그림도 완상하며 조금이나마 여유를 갖는 모습이 보기 좋다. 물론 정희성의 늙은 피도 간혹 뜨겁게 끓기도 한다. 18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에서 박근혜 후보가 1위를 질주하는 것을 보다가 중간에 관두고 보들레르의 시집 《파리의 우울》을 읽기도 하고 (<독서일기>), 여순사건이 있은지 60년이 지나도 기념비가 점 여섯 개 찍은 백비로 남은 것을 영탄하기도 하고 (<백비>),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신묘년 2011년에는 “지축이 흔들리고 바다가 솟구쳐 / 하늘에 울음소리 가득하고 / 땅에는 핏물이 흥건”하여 “짐승도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 “망나니는 귀를 막고 칼춤을 추고 / 산허리에 걸린 붉은 달을 보며 / 뭇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대는 참요 현상을 노래하기도 한다 (<참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강경대응 발언을 비난하는 시로 읽히는데, 포격 당한 주민 입장을 헤아려야 하는 정부 관계자가 읽었다면 좀 야속한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 든 모습이 보기 좋다. 참요와 별무대책인 평화를 이야기하기는 해도 이 시집을 내던 69세 시인의 자잘한 시선, 응시가 좋다. 하지만 늙어도 시인은 시인. 자신이 원하는 시인은 어떤 모습일까.
시인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느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 (전문)
만 68년을 살아보니까 시인이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이, 세상에나, 그리움이었다는 말. 그럴 듯 한가?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도 괜찮은 거야? 이렇게 바뀌는 게 정상일 지도 모른다. 모든 사물과 생명, 그리고 상처까지 결국엔 곰삭아야 좋으니까. 그렇지?
곰삭은 젓갈 같은
아리고 쓰린 상처
소금에 절여두고
슬픔 몰래
곰삭은 젓갈 같은
시나 한수 지었으면
짭짤하고 쌉싸름한
황석어나 멸치 젓갈
노여움 몰래
가시도 삭아내린
시나 한수 지었으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