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얼굴의 아이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우울한 얼굴의 아이>는 겐자부로 삼부작 가운데 두번째 순서로, 물론 이 책만 읽어도 독립적으로 읽히기는 할 듯하다. 그러나 스토리는 <체인지링>에서 그대로 연결되어 있어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은 아무래도 <체인지링>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겠다.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스토리를 연속으로 읽느라고 진이 빠진다는 것이지만.
  주인공 고기토의 성이 바뀌었다. <체인지링>에선 나가에 고기토였는데, 이 책에선 오에의 다른 책들과 같이 작가의 페르소나, 조코 고키토다. 오에가 자신을 대신하는 ‘큰 상’ 받은 작가의 이름을 왜 고기토라고 했느냐 하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처음으로 쓴 명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라틴어 표기 “Cogito, ergo sum”의 첫 단어 ‘Cogito’를 가져왔다. 오에 겐자부로답다. 이렇게 이름을 지은 사람이 고기토의 아버지 조코 씨였다. 오에의 책에서 아버지 조코 씨의 죽음을 다룬 것이 <익사>.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여 아메리카 군인들이 신성한 섬 땅을 밟게 된 사실은 인정하되 어찌 한 번의 저항도 없이 순순히 내주겠는가, 하여 테러를 준비하는 젊은 장교 모임에 우연히 가담한다. 그러나 도중에 큰 홍수가 생겨 배를 타고 나섰다가 강물에 빠져 죽는다.
  아버지는 시코쿠에서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을 규합하여 ‘연성도장’이라는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훈련을 하는 등 당시의 젊은이들 마음 속에 일본 특유의 민족의식을 주입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더 세월이 흘러 1부 <체인지링>에서 미군 통역 장교 한 명을 통해 한국전쟁에서 쓰던 고장난 소총과 정상적인 피스톨 한 정을 구하는 등의 활약을 하지만 두고두고 우리의 주인공 조코 고키토를 쫓아다니며 작은 테러를 가해 고통을 안기기도 한다. 두세명이 고기토를 꼼짝 못하게 좌우에서 압박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긴 후, 눈높이에서 ‘탄환’이라 부르는 웬만큼 무게가 있는 금속을 왼쪽 엄지발가락의 뿌리 부분으로 떨어뜨리는 것. 가뜩이나 통풍 기가 조금 있는 고기토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행위였다. 스톡홀름 궁정 만찬을 앞두고도 거기까지 따라온 이들에게 당한 적도 있다고. 독자여, 이건 소설이다. 믿건 말건 자유, 나는 허구라고 생각한다.
  고기토의 아내 치카시는 1부 <체인지링>이 끝난 것과 동시에 자살해 죽은 오빠 고로의 어린 애인이었지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우라와 조만간 태어날 우라의 아이(고기토 가족과 아무 상관없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고기토가 밤낮 세빠지게 글 써서 번 돈을 써서 베를린으로 날아갔다. 치카시는 우라가 아이를 낳고, 독일인 애인이 생기고, 육아 방편을 다 마무리한 후에,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만 등장하고, 빈 자리는 로즈라는 이름의 조코 고기토 논문으로 박사를 준비중인 미국인 30대 여성이 맡는다. 당연히 아내도 아니고, 잠자리 파트너도 아니다. 원래 <돈키호테> 연구자였다가 고기토를 심화 학습하기 위하여 장학금을 받아 일본으로 날아와, 마침 기회가 되어 1년 정도 계획으로 함께 지내게 됐을 뿐. 그래서 책에서는 쉴 새 없이 조코 고기토를 17세기 초반의 위대한 몽상가 돈키호테와 비교하는 망언을 멈추지 않는다.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고기토의 어머니가 운명한다. 아흔살이 훨씬 넘은 나이이니 호상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도 맑은 정신을 가졌던 현명한 노인이다. 오에, 이 노회한 작가가 어머니가 그냥 숨을 거두게 할 턱이 없다. 현명한 어머니는 두 가지 중요한 언질을 주는 역할을 한다.
  첫째는, 소설은 거짓이라는 것에 대하여 소설 속 거짓에, “윤리의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나같이 나이먹은 사람이 아침 저녁으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라 하면서, 동시에 “고기토가 거짓말 소설을 산 하나가 될 만큼이나 쓰고나서 이제는 나이를 먹어 종이 한 장 만큼이라도 진짜 이야기를 쓴다면, 그건 사실이라고 믿어주면 좋겠다.”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이 당부 역시 오에의 거짓 주장이다. 이 책에 쓴 건 전부 사실이라고 독자더러 믿으라는 건데 하여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을 받은 지상 최고 거짓말쟁이의 글을 믿으라고 하니 말이지. 하여튼 책을 진지하게 읽어달라는 작가의 부탁 정도로 접수하고 말자.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동자童子를 언젠가는 고기토가 제대로 연구하기 위하여 귀향을 할 것으로 믿었다는 것. 어머니의 이런 선견지명으로 오에는 고기토가 도쿄, 아들 아카리를 위한 모든 시설과 소프트웨어가 있는 도쿄를 떠나 고향 시코쿠의 두메산골인 마키 면(町), 주조시키로 돌아와 새로 집을 옮겨 살 제대로 된 이유를 만들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온 로즈와 함께. 이제 고기토는 고향에서 여전히 터전을 일구고 사는 여동생 아사 부부, 먼 친척으로 조카뻘인 청년 아요의 도움을 받아 마키 면에서 텃세 깨나 부리는 B급 전범의 위폐를 모신 미시마 신사의 신관 마키히코와 후쇼쿠 절의 주지 마츠오, 다베 콘체를 호텔의 다베 부부 등과 협력 또는 갈등을 빚는다.
  그럼 동자는 무엇일까. 한자를 그냥 풀면, 어린 아이라는 뜻인데, 고기토의 주장을 보자. 다섯 살 무렵의 고기토는 ‘또 한 사람’의 자신, ‘고기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일년 후 고기이 혼자 숲으로 들어가 동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동자가 되면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오가 수 있다. 고기이 역시 어느 날, 하오리 입은 팔을 양쪽으로 벌리더니 커다란 새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 사라져버렸다고.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이건 작품을 관통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함의를 가진 말이다.
  이야기는 만엔 원년인 1860년으로 넘어간다. 오에의 전작 <만엔 원년의 풋볼>에 소개했듯이, 메이지 이전 시대 첫번째 민중반란이 메이스케라는 젊은이의 지도하에 일어났는데, 당연히 실패로 끝났다. 관군에 체포되어 죽임을 당할 시간이 도래하자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나타나 그를 위로한다. “괜찮아, 괜찮아. 죽임을 당한대도. 내가 바로 다시 낳아줄 테니!” 즉 어머니를 통해 메이스케는 환생을 할 수 있다는 말. 이들은 메이스케가 옥사하고 6,7년이 흘러 환생한 메이스케가 농민 반란의 지도자를 도와 신정부가 보낸 관리와 투쟁하게 했고, 더 시간이 흘러 베츠시 구리광산의 스미토모 광업소에서 광부 폭동을 일으켰다고 믿는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 후의 청년장교들에 의한 반란까지? 그건 모르겠다. 즉 동자는 환생할 수 있다는 믿음인데, 그것도 절차가 있다.
  이 지역 시코쿠에서 태어나 죽는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나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이 육체를 떠나 골짜기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공간을 나선형으로 올라가 ‘자기 나무’ 뿌리에 머문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나선형을 그리며 항아리 모양의 공간을 내려와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육체로 들어가 환생하는 사이클을 지닌다. 오해하지 마시라. 깊은 ‘골짜기’의 항아리 형태 공간이 자기 나무 뿌리보다 아래쪽에 있어서 나선형을 그리며 올라가 뿌리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니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풀린다. 고기토의 아내이자 전편 <체인지링>에서 자살한 고로의 동생인 치카시는 고로의 애인이었던 우라의 아이를 고로의 환생으로 생각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베를린으로 날아갔던 거다.

 

  이 책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전작 <체인지링>과 연관이 되어 있고, 오에 겐자부로답게 이미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아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무.한.반.복. 하고 있다는 거. 늙으면 말이 많아진다. 걱정이 많아지는 것과 비례하는 거 같다. 그래서 지루해지는 걸 어쩔 수 없는데,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온갖 철학적, 비교문학적 사색과 대화를 첨부하기까지 한다. 나는 다 읽고 왜, 하필이면 공부하는 미국인 여성을 주조시키까지 데려왔는지 참 의아했다. 재미는 있지만 오에가 자신의 페르소나인 고기토를 돈키호테와 비교하는 것도 자뻑이고, 돈키호테니까 당연히 허황한 대결로 인한 부상도 빼놓을 수 없는데, 부상을 당하는 과정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읽었다. 아직까지 고기토에 대한 폭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세계에서 제일 ‘큰 상’을 받은 고기토가, 그토록 거만하고, 무게잡고, 할 말 아끼지 않고, 체면 차리는 고기토가 당국에 신고 한 번 하지 않으면서 누군지 알 것도 같은 집단에 의하여 계속적인 (작은)테러, 린치를 당하고 그걸 참고만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이것들이 전부 다 은유라고 하면 안 될 일도 없다. 그러면, 저 위에서 고기토의 어머니가 진실 한 장을 쓰더라도 믿어 달라고 한 얘기는 진짜일까 구라일까.
 하여튼 마지막 편, <책이여, 안녕>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