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자들의 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168
기예르모 로살레스 지음, 최유정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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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예르모 로살레스 Guillermo Rosales (1946~1993). 겨우 47년을 살다 간 쿠바 출신 작가다. 이 책 <표류자들의 집>의 주인공 ‘나’, 윌리엄 피게라스와 아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위대한 마르셀 푸르스트와 헤르만 헤세, 제임스 조이스, 아서 밀러, 토마스 만을 탐독하고 20년 전에 그러니까 10대 시절에 쿠바에서 연애소설을 한 편 썼으나 출판은 하지 못한 경력이 있다. 부르주아와 공산주의자 간의 사랑 이야기로 주인공들의 동반 자살로 결말을 맺는 내용인데 이게 쿠바 정부 문학 전문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평을 들어 이후 ‘나’는 미쳐버렸단다. 실제로 로살레스는 15세 무렵부터 잡지에 글을 발표하기도 했고 소설도 써서 나름대로 명성을 얻었지만 전에는 정신착란증이라 불렸던 조현병 증세로 사회부적응자로 지내야 했다. 1979년에 카스트로의 전체주의 체제를 견디지 못해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이애미에 정착한 작중 주인공 윌리엄 피게라스와 같은 경로로 마이애미에 도착한 작가는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이후 1987년에 중편소설 <표류자들의 집 Boarding Home>을 발표해 미국 내에서 스페인 언어로 쓴 작품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황금 글씨 Golden Letter 상을 멕시코의 유명시인 옥타비아 파스로부터 건네받았다.
  기예르모 로살레스의 평생을 괴롭힌 부적응증과 조현병 증세는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어 자신이 쓴 원고를 난데없이 없애버리는 일을 멈추지 않아 1967년 작품 <비올라 게임 El Juego de la Viola>과 중편소설 <표류자들의 집> 두 편만 남아 있다고 하며, 20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엔 아직 번역된 작품이 없지만) 카를로스 몬테네그로, 레이날로 아레나스와 함께 쿠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작품 두 개만 남아 있는데 한 시절을 대표하는 작가라니 좀 과장인 듯싶기도 하나 하여튼 그렇게 위키 백과에 쓰여 있다.

 

  책의 원래 제목인 Boarding Home이란 무엇인가. 각주에 이렇게 쓰여 있다.
  “미국에 있는 사설 요양소. 육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입원해 지낸다.”
  주 정부에서 생활이 빈민계층의 장애인들을 다 돌볼 시설을 운영하기 힘이 드니 민간이 일정 시설을 하고 노인을 포함한 장애인들을 관리하는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품에서는 시설에 들어 있는 장애인 한 사람 당 314달러를 지원했으며 용도불명의 보조금으로 3천 달러를 따로 지원해 모두 23명을 수용한 ‘보딩 홈’은 정부로부터 모두 10,222달러를 받는다고 했는데, 1년인지 1개월인지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설마 1개월이겠지, 인당 314달러니까?
  일찍이 열다섯 살 때부터 잡지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나’가 스페인을 거쳐 마이애미에 도착한다. 먼저 헤엄을 치거나 보트를 타고 미국 땅에 잠입해 이젠 자리를 잡은 쿠바-아메리칸 친척들은 고국에서 성공한 천재가 도착했겠거니, 비행장에 환영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었었는데 정작 공항 입국장에서 빠져나온 ‘나’는 나이 서른 좀 넘어서 벌써 이도 거의 없는 합죽이에 비쩍 마르고 잔뜩 겁먹은 온전치 못한 작자라 한 순간에 다들 차를 타고 내빼버리고, 고모 한 명만 남아 낡은 쉐보레에 ‘나’를 실어 집에 데려간다. 그리고 삼 개월. 고모도 없는 살림에 더 이상은 군식구를 보살필 수 없어서 다시 쉐보레에 태워 집 바깥에 <보딩 홈>이라 쓰여 있는 변두리의 한 보호소에 들여보낸다. 여기서 잘 지낼게야. 내가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너도 이해할 게야. 라는 말을 남기고.
  물론 ‘나’는 이해한다. 고모 혼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 생활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럼 인간쓰레기들을 수집해 놓은 집합소 보딩 홈의 구성원을 한 번 보자.
  정신지체자 르네와 페페. 옷에 오줌을 지리는 쭈그렁 노파 힐다. 산송장의 귀부인 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지평선만 쳐다보는 반백의 피노. 동성애자이며 은퇴한 권투선수 타토. 유리 눈알에 끊임없이 누런 진물을 흘려대는 애꾸눈 늙은이 레예스. 난쟁이 나폴레옹. 미친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는 올리브색 피부의 건장한 양키 루이. 세상의 온갖 악행을 조용히 목격해온 페루 사람으로 보이는 인디오 늙은이 페드로.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소리쳐댈 줄만 아는 아흔 살 노인네 카스타뇨. 여기에 보딩 홈의 주인으로 첫인상부터 상당히 역겨운 뚱뚱한 비곗덩어리 쿠르벨로. 쿠르벨로가 집을 비우면 자리를 대신하는 실제적 권력자로 겨우 주당 70달러밖에 받지 못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수용자들을 수탈해 늘 버드와이저에 취해있는 아르세니오. 식당에서 음식을 배급하는 물라토 아가씨 카리다드와 가정부 호세피나. 기타 등등.
  한 마디로 세상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수용해 놓은 곳. 그리하여 우리말 제목을 “표류자들의 집”이라 했을 터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세상의 루저들.
  이곳에도 나름대로 계급이 있어 이것이 식당의 테이블에 나타나는데, ‘나’가 처음 앉아야 했던 식탁은 말 그대로 불가촉천민 식탁으로 구성원이 애꾸눈 늙은이 레예스, 노파 힐다, 나이 많은 정신지체자 페페, 그리고 ‘나’가 앉은 곳이다. 그림이 그려질 듯. 이들은 형편없는 처우에 분노할 줄도 모르고, 고발할 줄도 몰라, 보딩 홈의 주인 쿠르벨로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주고, 하수인 아르세니오에게 푼돈마저 뜯기며, 쉴 새 없이 요실금에 시달리는 노파 힐다는 수시로 고통스러운 체위로 아르세니오의 욕구를 풀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자유를 찾을 방법은 오직, 노숙인이 되는 것 하나만 남았는데, 그것보다는 여기가 편하다는 거 때문에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곳에도 사랑이 꽃핀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 속에서 사랑은 이 작은 지옥에서 벗어나 새롭게 그나마 정상적인 삶과 일을 가질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표류자들에게 내일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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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9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 이거 어제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도서관에 있는 거 확인하고 다시 뺐는데! 찌찌뽕. ㅋㅋㅋㅋ

Falstaff 2021-07-29 09:42   좋아요 3 | URL
굳이 돈 들여 살 필요가 있을까...는. 도서관 이용이 갑 중의 갑입니다!! ㅋㅋㅋ

Falstaff 2021-07-29 10:04   좋아요 2 | URL
아, 드디어 내일 <수영장 도서관> 독후감이군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7-29 10:12   좋아요 2 | URL
월요일부터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