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7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손장순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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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부아르야 워낙 널리 알려진 사람이니 새삼스레 소개를 할 필요는 없고, 그저 한 마디 하자면, 위명과는 별개로 나는 애초에 이이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 그건 저 옛 시절, 경애하는 정여사께서, 나의 학창시절에 보부아르의 작품이 기대와 달리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제대로 심어주시어 이렇게 된 바이었다. 그러니 부모 노릇 제대로 하기도 참 힘들다. 뭐라 얘기를 못한다. 나중에 애가 크면 나처럼 세상에 다 일러바치거든. 하여튼 이렇게 살다가 내년에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을 읽기로 결심을 했고, 무려 두 권, 할인가 4만3천2백 원에 달하는 걸 덜컥 샀다가 읽기에 난감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스파링 삼아, 그렇다, 철학박사가 쓴 작품을 읽는 일이니 싸움 전에 연습해보는 스파링이란 단어도 어울리지 아니하는가, 읽어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 정도면 내년에 <레 망다랭>을 시도해도 좋을 듯하다. <위기의 여자>는 길이도 중편 정도의 분량이고, 내용도 바람피우는 남자와 함께 사는 중산층 아내의 일기라서 친숙하기도 하다. 아, ‘친숙’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 집안엔 바람피우는 남자들 없다. 초상이 나서 팔촌 형제들까지 싹 모였을 때 제일 큰 장형이 남자 형제들 불러놓고 한 마디 했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술은 퍼마셔도 바람피우는 거 없다. 그러니 너희들도 그리 알아라. 맞다. 하다못해 집안의 따님들도 술 하나는 장하게 퍼마신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겨도 바람피우는 기계가 제대로 말을 듣나 말이지. 그래서 바람피운 남자 없다고 자랑스레 떠들고 다니는 거다. 별 거 없지?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이 책을 요약하면, 남편 모리스한테 여자가 생겼다는 거. 노엘리 게라르. 아름답고 총명하고 유혹적인 여자로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이혼녀다. 남자의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는 일종의 불장난의 대상으로 적당한 여자라는 것이 일기를 쓰는 주인공 ‘나’ 44세의 여성 모니크의 솔직한 심정. 남편이 고백을 하기를 노엘리를 만난 것이 5주 전이라고. 그러나 나중에 홧김에 털어놓기를 8년 전부터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기 시작해 몇 명의 여자를 거쳤단다. 모니크와 모리스는 경기도 광주 모毛씨 동성동본으로 독일 점령지에 저항군을 치료해주는 의료대원이었을 1944년 혼인을 해 스물두 해 동안 함께 살았으니 현재 시점은 1966년 정도 된다.
  1960년대 중반의 프랑스 파리는 1970년대 중반의 우리나라 수도 서울과 비슷해서, 모니크가 친구인 이사벨의 조언에 따라, 이사벨이 해준 조언이 상당히 수긍할 만하다고 확신해서 고른 ‘가장 적절한 대응방식’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전제로, 모리스가 노엘리에게 곧 싫증을 낼 게 분명하니 모니크는 이해심이 있고 쾌활하게, 무엇보다 남편에게 친절한 태도로 기다리는 일이었다. 이사벨 자신도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했을 때 같은 방법으로 남편의 마음을 돌아오게 했다지 않은가. 이야기를 듣고 모니크가 생각해보니 22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건 있을 법한 ‘정상적인 일’로 용납하지 못하면 자신이 비정상이고 심지어 유치한 여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니크는 잠깐 잊었다. 노엘리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경력과 평판이 빵빵한 능력 있고 야심만만한 변호사로 자유분방한 성격에 사교를 즐기는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공격적 성격의 여성이라는 것을. 동시에 모여사가 ‘기다림’이란 작전을 펼친 것엔 자기 스스로도 한 시절 킬랑이란 이름의 남자와 잠깐 바람을 피워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자신이 평생 딱 한 번의 순간적인 불장난에 회의를 느껴 곧바로 가정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으니 모리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희망사항도 조금은 작동을 했을 터이니.
  모니크와 노엘리. 어쩔 수 없이 두 여자의 차이점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결혼 22년차 전업주부 모니크는 남편 모리스와 함께 의학을 공부하다 결혼과 함께 학업을 중단했다. 아이 둘을 낳아 나름대로 전력을 다해 키워, 큰 아이 콜레트는 결혼해 파리에서 역시 전업주부로 살고 있으며, 둘째 뤼시엔은 미국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다. 남편 모리스는 시시때때로, 나중에 알고 보면 결혼생활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아내에게 직장을 얻거나 비슷한 경제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했지만 별 낌새를 채지 못한 모니크는 번번히 제안을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결과, 모니크는 모리스 없이 살 수 없다는 강박에 싸이게 되는데, 아내는 이 강박의 가장 밑 부분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반면 노엘리는 언제나 당당하다. 모르긴 해도 모리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그래서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며 거기에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모리스에게 당당하게 아내 모니크보다 더 많은 지분을 자신에게 쏟을 것을 요구한다.
  거의 모든 문제는 권력이다. 남편을 사랑해서 학력과 경력과 재력을 모두 포기하고 남편에게 종속된 22년을 보낸 모니크. 남편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딸 하나를 키우면서 마음대로 애인을 집에 끌어들이며 조금씩 가정 밖으로 몰아내 자신 가까이로 오게 만드는 노엘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경제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의 총합이다. 아내 모니크가 남편에게 바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남편이 자신을 비참하게 버렸다, 날 희생시켰다고 주장하는 것? 둘째 딸 뤼시엔은 엄마한테 이렇게 말한다.
  “그야 물론 엄마에겐 가혹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 자신을 희생시켜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 같으면 누구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해요.”
  정확하게 1960년대 소설. 굳이 2020년대에 다시 찾아 읽어볼 필요까지는 없을 듯.
  나는 여성주의 소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건 확실히 아니었고, 실존주의 소설이라고 주장하면 반대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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