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만시아.사기꾼 페드로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3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선욱 옮김 / 책세상 / 2004년 1월
평점 :
세르반테스의 초기와 후기 희곡 하나씩을 담고 있는 책. 그러니까 19세기, 18세기도 아니고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쓰인 작품. <누만시아>는 초기 비극이고 <사기꾼 페드로>는 후기 희극이다. <사기꾼 페드로>는 세르반테스 이후에도 몇 작품을 통해 당시의 유사한 희극 분위기를 겪었던바 그리 새로울 것이 없어, 독후감은 <누만시아>에 한해서 쓰겠다. 사실 그렇다. 고전 희극엔 당연히 타협하지 못할 악당이 존재하고, 꾀 많은 선한 주인공이 등장해 악당을 골탕 먹여 개과천선하게 한다든가 파멸에 이르는 과정 아니겠는가. 이 정도로만 이야기하자.
로마를 열었던 영웅 가운데 한 명인 아이네이스가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은 채 트로이의 패잔병들을 배에 태워 지중해를 떠돌 당시, 카르타고에 도착해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신의 계시를 좇아 다시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할 때, 디도 여왕은 자신의 후손이 이탈리아 땅에 큰 환란을 가져오리라, 유언하며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고 만다. 정말로 몇 백 년 후 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이 시작되고, 1차전 로마 승리에 이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용사 한니발이 이베리아 땅을 거쳐 코끼리를 끌고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어 로마 전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스키피오의 양 할아버지다. 그래 이이가 대 스키피오, 작품의 주인공은 소 스키피오. 대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가 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카르타고는 로마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은 물론이고 로마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어떠한 전쟁도 일으킬 수 없는 처지에 빠지는데, 이때의 카르타고를 그린 작품이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살람보>다
카르타고, 라면 한니발에 하도 뜨거운 맛을 봐서, 자다가도 소스라쳐 벌떡 깨고는 하던 로마. 이제 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켜 카르타고를 완전한 잿더미로 만들고 백성들은 모두 도륙을 하든지 노예로 만들어버리는데, 이 3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이 바로 소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 그러나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들어도 만족하지 못한 로마는, 카르타고의 전진기지 중 하나였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로마에게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용맹한 지역인 누만시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래 자료마다 조금 다르지만 11년, 또는 13년 동안 누만시아 3천여 시민들은 로마의 8만 대군(자료에 따라 3만 대군)에게 절대 함락당하지 않고 콧대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었던 것. 로마는 다시 한 번 스키피오를 누만시아에 보내게 된다. 여기서 작품은 시작한다.
로마 입장에 이런 작은 동네가 감히 로마한테 바득바득 기어오르는 것이 마땅하지도 않거니와 기타 작은 부족들에게도 모범이 되지 않았지만, 워낙 사납게 반항을 하는지라, 용감하거니와 지략에도 출중한 스키피오가 결정하기를, 공성전을 하면 함락시킬 수 있겠지만 로마군도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하니, 누만시아 읍성 사방 9킬로미터의 방책을 치고 방책 넘어 깊은 해자를 파서 완전하게 고립시켜버리고 만다.
특색 있는 것은, 다양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누구를 특정하여 주인공이라 할 수 없을 만큼 각자 로마군과 누만시아의 군인, 노인, 여자, 아이들이 모두 독립된 이야기를 갖는다는 점. 역자 김선욱은 해설에서 이를 ‘집단 주인공’이라 하는데 수긍할 만하다.
이후 드라마의 줄거리는 오직 하나, 누만시아 사람들이 8개월(자료에 따라 일년여)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다, 먼저 로마인 포로들을 잡아먹고, 이후 차례로 굶어 죽다가, 한 명도 남김없이 자살을 감행해, 로마가 누만시아에 입성해보니 산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 그리하여 로마가 이기긴 했으나, 스키피오는 ‘너희들은 죽었지만 나를 이겼구나!’하고 한탄했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대표작인 <사피엔스>를 통해서, 이 내용은 로마의 승자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기록한 것에서 비롯한 것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야만인의 이야기를 애호하는 로마인의 입맛에 맞게 각색되었단다. 로마가 너무도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사실 8만 명이 3천 명을 상대로 완전 몰살시킨 것이 자랑이 아니라서, 패자들의 기억마저 자기들 식으로 편집했다는 취지. 매우 그럴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몽고군 침략 당시 지금의 춘천 시내에 오똑하니 솟은 봉의산에서 토성을 쌓고 몽고군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결국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을 당했던 것. 봉의산에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버텼는지 몽고는 결국 성 밖으로 이중목책을 치고 한 길이 넘는 구덩이를 파서 고립시켜 버렸다고 한다. 식량은커녕 물도 없는 토성에 갇힌 사람들이 거의 초주검이 되었을 때, 몽고인들이 쳐들어와 완전히 몰살을 시킬 수 있었다고. 몽고인들은 로마와 달라서 그들의 완벽한 승리를 감추기 위해 고려인들의 투쟁을 미화시키는 아량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희곡 <누만시아>를 단지 한 생각,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왜 전부 몰살을 당해야 하는가. 그것보다는 차라리 아이네이스를 살려 나라 밖으로 도망시킴으로써 동족의 영원성을 이어간 트로이 사람들처럼 일부를 피신시키는 등의 방안을 마련했어야지, 죽음, 그것도 자신들의 모든 재화를 불사르고 집단 자살을 감행하는 행위를, 죽으면 죽었지 항복하지 않겠다는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미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제1차, 제2차, 제3차 포에니 전투라는 명칭이 의미하듯, 지금 항복한다고 그게 영원하다는 의미는 조금도 없었으니까. 물론 이건 21세기식 사고방식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