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창비시선 238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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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려 할 때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전문)



  시집에 첫 번째로 나오는 시다. 문태준이라는 이름은 꽤 오래 전부터 알았다. 문예지에서 이이의 시도 곧잘 읽어오곤 했다. 그럼에도 새삼스레 이 시를 읽고 시집의 앞날개를 펼쳐 얼굴을 확인했다. 농촌진흥청의 전 먼 시골 분소에서 소장 정도 하면서 농림부장관상 가량을 수상할 얼굴 또는 관상. 대강 짐작하시겠지? 그 아래 보니 195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고, 시집을 다 읽을 때까지 잘못 읽었다. 맨 마지막 시 <뻘 같은 그리움>을 읽을 때까지 난 문태준의 생년이 50년 범띠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 시를 읽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데, 1, 2년이 아니고 20년을 잘못 읽었다. 1970년생이다. 이런.
  1970년생이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다고? 서울에서 낳고 자라고, 학교를 마친 다음에야 먹고 살려고 공장을 찾아 지방도시를 전전한 내가, 만일 어찌하고 저찌해서 시인 면허증을 땄다고 해도 난 죽어도 이런 시를 쓰지 못했으리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시골 풍경조차 모르겠는가 말이지. 포천군 이동면 이리 노니는 골, 낭유리에서 군역을 치루던 1982년에 시인은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됐을 텐데, 그의 시 속 풍경은 나의 낭유리 보다 더 먼 시간 속을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북 김천이면 다른 지역보다 그래도 조금 더 발전한 촌 동네 아니었나? 이런, 이런.
  그래 시를 다 읽고 뒤표지에 쓰인 이성복의 발문을 읽어보니 내 마음에 딱 들어맞는다. 이 시집을 읽은 감상으로 어찌 이를 능가할 수 있을까 싶어서 전문을 옮긴다.


  “어찌 보면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그의 시의 목소리는 비 온 다음날 뻘밭을 기는 지렁이의 행보를 닮은가 싶더니, 어느새 뿌연 수면을 내리찍는 물총새 부리처럼 날카롭다. 쥐를 삼킴 뱀의 몸통처럼 꾸불텅거리는 그의 시의 행갈이는 기필코, 포획한 대상을 흐물거리는 단백질 덩어리로 만들어 놓는다. 그의 시 행간마다 육식 곤충이 내뿜는 끈적한 타액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아니다,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장수하늘소 한 마리가 달빛 없는 밤, 세상의 갈라터진 껍질 사이로 배어나오는 수액을 느리게 음미하는 것이다.”

  참나. 이성복의 발문, 비록 영업글 비슷한 찬사일지라도, 이것도 시다, 시.
  시집에 실린 문태준의 모든 시는 지명을 밝히지 않은 시골과 기껏해야 시골 주변에 있는 소도시에 국한되어 있다. 시골의 숱한 나무, 꽃, 곡식, 작은 생명들, 소리 같은 것으로 메웠고, 등장인물 역시 서당골로 산미나리 뜯으러 간 어머니, 식구들이 몸을 열고 쏟은 것들을 지게에 지고 호박밭으로 가는 아버지, 화단의 봉숭아꽃을 보고 있는 여섯 살 난 딸, 오랜만에 친정에 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훌쩍이는 누이 등등, 어찌 이런 시집의 초판이 2004년, 21세기에 나왔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이게 지난 4년 동안 쓴 시라고 하니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21세기, 이번 세기에 쓴 것들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시.



  한 호흡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전문)


  그래, 있다. 아직도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이란 인간이.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런 시를 쓴 시인은 겨우 서른에서 서른 네 살이었다는 거.
  이런 시를 읽으면서 시어 하나, 하나에다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어쩌니 저쩌니 따지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평론을 써서 밥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냥 시를 읽으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거 아닌가 싶다. 이 시집을 읽어보면 시인 문태준은, 나이와 관계없이, 그냥 몸에서 사리가 뚝뚝 떨어지는 도인 같다. 도사 말고 이미 달관해서 세상 다 산 사람. 무구하다고, 몸에 낀 때가 없다고. 이이는 시를 쓰기 전에 면벽참선, 목욕재개한 후 다시 두 시간 요가수행 후에 세상의 모든 미움과 번뇌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나서야 펜을 드는 것 같다. 한 편도 눈에 힘주고 사물을 바라본 것이 없다. 가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조금 있으면 봄이다. 제일 먼저 산수유가 피고 이어서 목련, 자목련이 그리고 벚꽃이 핀다. 이것들의 특징이 먼저 꽃이 피고, 지고 나서야 이파리가 돋는다는 거. 꽃이 피면 반드시 진다. 꽃이 지면, 당연히 있다. 꽃 진 자리가.



  꽃 진 자리에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꽃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전문)



  시인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닌가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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