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코페르니쿠스 - 뿔 모던클래식 6
존 반빌 지음, 조성숙 옮김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출판사 [뿔(웅진)>. 2013년부터 출판한 책이 없다. 그래서 이 책도 품절이다. 존 밴빌. 물 좋은 아일랜드 태생이면서 조이스, 트레버의 맥을 잇는 작가로 이름을 날린 바 있으나, 역자의 간섭 때문인지 유명한 작품 <바다>를 그리 즐겁게 읽지 못해 다른 책을 읽어보기로 했던 차에 눈에 띄어 고른 책. 읽어보면 존 밴빌 특유의 문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윌리엄 트레버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쓸쓸함에 싸인 소년시대. 옛 집과 부모, 남매들을 그리는 것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전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작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존 밴빌. 세상에. 전기 소설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코페르니쿠스 가문은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라는 이름의 석공에 의하여 1396년 상부 슐레지엔에서 시작하지만 성인이 되어 장사꾼, 즉 상인으로 이름을 알린 그의 아들 요하네스를 코페르니쿠스라는 상인 가문의 시조로 친다고 한다. 1450년대 말 우리의 주인공 닥터 코페르니쿠스의 아버지가 슐레지엔에서 프로이센 왕국의 토룬 시로 사업장을 옮겼고, 여기에서 지동설을 주장하게 될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2남2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사실 외가로 보면 니콜라스의 어머니의 경우 보잘 것 없는 집안으로 낙혼을 했다고 봐야 한다. 외가 바첼로트 가문은 13세기 말에 토룬에 정착한 세도가로 당당한 체구의 이모 크리스티나 바첼로트는 언제나 조카들에게 코페르니쿠스 가문이 얼마나 하찮은지 늘 험담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실 니콜라스의 외숙 루카스 신부는 비록 “엄격하고 황홀한 정도로 못생기고 거만한 성격이며, 소문이 사실이면 일생동안 웃은 적이 전혀 없는” 인간이지만 몇 년 후에 로마 교황청과 불화하는 지역의 권력자인 주교의 자리에 앉는다. 이 외숙은 니콜라스의 어머니가 일찍 죽고, 열 살 때 아버지마저 죽고 나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네 형제, 자매를 후원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데, 형제들 입장에선 구두쇠가 과하게 엄격하고, 냉정하다고 여길 수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당시 독신의 권력자이자 성직자라면 그리 나쁘지 않은 후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외숙이 니콜라스가 열 살 때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행한 일을 보면, 애초에 성직에 관심이 있던 맏이 바바라는 쿨름에 있는 시토 수녀회로 보내 훗날 수녀원장까지 지내게 하고, 둘째 딸 카타리나는 자기 성격과 딱 어울리는 상인 남자와 결혼해 왕창 망해버린 아버지에 의해 남의 손에 넘어가버린 집을 다시 구입해 살림집으로 사용하니 비록 싸가지 없는 부부일망정 적어도 자기네 한 식구는 잘 먹고 잘 살았으니 그걸로 된 거다. 셋째 안드레아스와 막내 니콜라스, 두 아들들은 사제가 직접 데리고 키울 수 없으니 폴란드의 중북부에 있는 부오추아베크의 성당 부속학교로 전학을 시키면서, 졸업 후엔 크라쿠프 대학에 다니며 교회 일을 하라고 했다. 비록 조카들을 대하는 태도가 좀 딱딱하고 정이 없다고 해도 이 정도면 어떻게 더 잘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으로도 바쁜 독신 남자가. 뭐 대학 졸업한 다음에는 알 거 없고. 그러나 외숙 루카스 신부는 대학 졸업 후에도 이탈리아에 유학도 시켜주니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디 있어.
  전기에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인간이 바로 위의 형 안드레아스. 이이는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동생 니콜라스를 싫어한다. 책에는 형이 아우를 싫어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형, 아우 사이에 가끔 있는 이유 없는(또는 사소한 갈등의 축적으로 인한) 미움일 수도 있고, 니콜라스가 워낙 총명하니까 형으로서 어릴 때부터 하도 비교를 당하니 볼 때마다 팍 패주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만일 안드레아스도 나름대로 공부 좀 하는데 동생이 상상할 수도 없이 뛰어나면 미움이 더 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차피 책은 품절. <황금 노트북>처럼 다른 출판사가 판권을 얻어 다시 출판해야만 당신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니 스포일러의 위협 없이 그냥 이야기를 풀어버리면, 어쨌든 떡잎부터 삐딱하게 성장한 안드레아스는 명색이 수사이면서도, 수사는 정식 사제가 아니라 언제든 일반 시민으로 돌아갈 수 있기는 하지만, 크라쿠프 대학과 이탈리아 유학 생활 중에서도 한결같이 껄렁패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을 일삼다 결국엔 심각한 매독에 걸려 귀신같은 모습을 한 채 프러시아와 폴란드, 이탈리아를 배회하던 중 동생이 머무는 교구에서 거금을 훔쳐 이탈리아로 달아나 객사할 운명이다. 물론 형제간이니 언젠간 화해를 하긴 하는데, 그건 니콜라스의 죽음의 침상. 먼저 죽은 형의 영혼이 동생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우, 이 정도면 심각한 스포일러? 아니다. 세상에 안 죽는 사람 있어?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지동설을 주장하는 코페르니쿠스 박사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가 출판되는 과정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할 예정.
  니콜라스가 앞으로 살며 위대한 발견을 했으면서도 이것을 굳이 세상에 알릴 생각을 적극적으로는 하지 않았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가 부오추아베크의 부속학교를 다닐 때 논리학, 기하학을 가르치던 엄한 교사 카스파르 슈투름을 비롯한 여러 선생들은 자신들이 어렵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습득한 지식을 니콜라스가 너무도 쉽게 소화해내는 것을 보자 질투를 넘어 분노를 촉발시켜버리고 만다. 교사들이 자신의 행동으로 스스로의 모욕감에 휩싸이는 것을 발견한 니콜라스는 이후 오히려 약간 둔한 척을 해 이들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니콜라스 앞에 등장하는 친절한 교사 보드카 아브스테미우스. 이름이 ‘알콜의존자’라는 뜻이다. 이 선생은 니콜라스에게 신중할 것을 주문한다. 지식은 정신을 단련시켜주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못한다면서. 세상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의심과 두려움의 원천이라며. 즉, 잘난 척하지 말고 살라는 충고. 대수, 기하학, 천문학과 음악이론을 가르친, 교사로는 형편없지만 적어도 니콜라스가 살아생전 파문당하지는 않게 가르침을 준 교사다. 덕분에 지동설의 진리가 그만큼 늦게 알려지긴 했지만 하여튼 코페르니쿠스를 자연사하게 해주었으니 그걸로 된 거다.
  내 눈을 확 끌었던 학자는 크라쿠프 대학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달베르트 브루제프스키 교수. 니콜라스는 몰랐지만 니콜라스의 천재성에 의하여 몇 년 동안 계속 조롱을 당했다고 생각한 사람. 그래서 당혹과 창피로 이루어진 시뻘건 독기를 간혹 뿜어내는 것을 다른 이도 아니고 못난 형 안드레아스가 목격한다. 이이는 엄격하고 매우 배타적인 성격이었다.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원리를 옹호했지만 니콜라스가 교수의 책을 통해 발견한 바로는 내심으로 프톨레마이오스를 의심하여 기어코 메마른 사막처럼 봉인된 정신 속에서 진주보다 값진 의심의 방울을 증류해낸 훌륭한 과학자였다. 그러나 이것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가 부린 속임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 “현상”을 구하기 위하여.
  브루제프스키 교수 댁을 형 안드레아스와 함께 방문한 니콜라스. 교수의 연약해보이는 겉모습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는 성마르고 차가우며 세상을 혐오하는 노인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틀렸으나, 이 믿음을 가장 핵심적인 공모자에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 즉 금기를 들추고 있다는 것을 니콜라스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당대의 최고 학자 브루제프스키는 크게 화를 내며 일갈한다. 니콜라스는 천문학과 철학을 헷갈리고 있다고. 천문학은 우주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한 결과를 말하며, 학자들이 관찰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맞는 이론이라고. 즉, 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원을 그리는 현상. 이건 모든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 한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이 완벽하다는 주장이다.
  이 시기가 1495년 경. 누가 생각나는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생몰시기가 1451~1506년. 1492년에 서쪽으로 항해해 자신이 생각하는 인도, 서인도-아메리카를 발견한다. 니콜라스는 지구의 차원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콜럼버스가 이미 입증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하며, ‘지식은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고대사상이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과학의 문은 굳게 닫혀 있는 법”이라고 설파하는 교수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이탈리아에 가서 여흥거리 비슷하게 의학박사 학위도 따고 홀로 천문학을 연구하던 그는 필생의 논문집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를 쓰지만, 옛 시절의 친애하는 보드카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이의 출판을 계속 머뭇거리기만 한다. 그러다가 결국 독일에서 모종의 경로를 통해 책이 나오고, 그가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접어들어 의식이 없어지는 찰나, 죽음의 침상에서 그의 가슴 위에 한 권이 놓여진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천재 과학자의 신경줄, 성격 같은 것이 아주 잘 표현시켰다. 핵심만 지향하고 나머지 곁가지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올바른 하나를 위해 상대방의 기분에 전혀 관심을 쏟지 않는 것 등등. 이런 성격이 전편을 통해 고르게 나타난다. 딱 한 장면, 임종 시기만 빼고. 원래 마음 약하고 정도 많은 아일랜드의 작가 존 밴빌은 기어코 코페르니쿠스 박사의 숨이 넘어가기 전에 세상과 화해를 하게 만들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위대한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전기 또는 평전. 이런 책을 품절시키는 건 사실 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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