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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다. 토니 모리슨의 겨우 두 번째 작품. 오하이오 주에 가상의 마을 메달리언 타운이 골짜기에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백인 농장주가 중요한 사업 또는 작업을 흑인 노예에게 맡기면서 일을 성공리에 잘 끝마치면 자유와 토지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흑인 노예는 백인 나리가 만족할 만큼 훌륭하게 작업을 해냈는데, 백인 입장에서 자유를 주는 것은 뭐 별 일이 아니지만, 애초에 약속했던 골짜기 좋은 땅 대신에 마을 위쪽 언덕에서 강까지 쭉 펼쳐진 지역을 주었다. 이 언덕바지의 이름이 보텀. 영어로 Bottom. 왜? 언덕은 하늘, 즉 천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라 하느님 입장에서 보면 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바닥, 보텀이기 때문이다. 흑인은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고 보텀 언덕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했고, 이후 점점 흑인 집단촌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세월은 어느 새 1960년대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어, 언덕에서 살다가 사업에 성공해 주머니가 두둑해진 흑인들은 지역을 떠나거나 백인들이 사는 골짜기 근방으로 내려가 겨울만 되면 불어 닥치는 모진 추위를 피해 될 수 있는 대로 안락하게 지내고 싶어 했고, 백인들은 눈 아래 훤히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기 위하여 흑인들이 떠난 보텀 지역으로 집을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 이젠 보텀을 싹 밀어버리고 그곳에 메달리언 시티 골프장을 만들려 하고 있는 상태. 여기서 소설은 시작한다. 보텀과 보텀 속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 사십 년도 넘는 과거, 1919년으로 시계를 되돌리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빼빼로 데이, 11월 11일에 끝난다. 많은 미군들은 주로 프랑스에서 몇 달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다가 대개 다음 해 중반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귀가하고는 했는데, 이건 흑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에서는 인종갈등이 미국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라 흑인 병사들이 주로 매춘부들이긴 했지만 프랑스 백인 여성들과 연애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흑인들이 가장 경계하고 조심했던 건 프랑스 남자들이나 경찰이 아니라 백인 미군 병사였다. 감히 검둥이 주제에 국가를 떠나 백인 여자와 관계를 해? 잔인한 린치를 당한 것이 한 두 명이 아니라고 전해진다. 흑인 병사는 심지어 총기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전장에서 죽어간 시체들을 선별하고 묻어주는 일. 2차 세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인들은 흑인에게 여간해서는 총을 지급하지 않았다. 물론 서류 상으로는 지급을 했겠지만 실제로 그랬다고 EBS 다큐멘터리에서 봤다. 미국 내 흑인들은 주로 태평양 전쟁의 병참병으로 근무하면서 전쟁물자의 하역 업무에 집중배치 했다. 어떻게 흑인들을 믿고 총기를 주겠는가. 백인을 향해 겨눌 수도 있는데.
책에서는 셰드릭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1917년에 징집되어 프랑스로 파병된다. 처음으로 독일군과 맞붙은 전투에서 돌격을 하는 찰라, 옆에서 함께 뛰던 병사의 머리 반쪽이 날아가고, 곧이어 나머지 반쪽도 핑그르르 돌면서 사라졌는데 머리 없는 몸통은 여전히 적진을 향해 뜀박질하는 것을 보고, 맛이 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데뷔한 무기가 기관총. 그래 1차 대전을 무대로 한 소설작품 속에 빗발치는 기관총을 무릅쓰고 몸통만 돌진하는 이 장면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그래서 셰드릭은 단 한 번의 전투에 영어로 paranoid, 우리말로 하면 피해망상증에 빠져버린다. 오래 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1919년 강제 퇴역을 해 메달리언 타운에 들어오는 인물. 흑인인지 백인인지 모리슨은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이이는 1920년 1월 3일부터 1965년까지 부려 45년 동안 전국 자살의 날, National Suicide Day를 공포하고 소 방울과 교수형 집행인의 밧줄을 들고 메달리언 타운에서 보텀까지 행진을 한다. 이이는 죽음과 죽어가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을 끔찍스러워 한다. 그래 일 년에 하루를 죽음에 바친다면 나머지 날들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엽기적인 자살의 날을 제정하게 된 것. 눈치 채셨나? 셰드릭은 45년 후인 1965년까지 생존해 있다가 이 작품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책의 주인공은 역시 술라 피스. 그리고 술라의 둘도 없는 친구 넬라. 애칭으로 넬. 넬은 그만두고 술라의 집안 내력을 잠깐 보자. 할머니 에바 피스가 젊어서 사랑했던 남자가 보이보이. 보이보이는 에바를 통해 첫 딸이자 술라의 엄마인 해나, 엄마와 같이 에바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펄이라 불린 둘째 딸, 그리고 아들 랄프를 만들어놓고 다른 여자를 찾아 그냥 떠나버린다. 에바는 이웃에게 내일 오겠다고 아이들을 맡겨놓고 일 년 반 동안 훌쩍 나갔다가 다리 한 쪽이 없어진 대신 돈을 많이 벌어와 아이를 맡아준 이웃에게 10달러를 주고, 집도 짓기 시작한다. 나중에 동네 사람들이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복잡하게 커다란 집으로 확장될 때까지. 술라의 엄마 해나는 라커스와 결혼해 술라는 낳았는데, 술라가 세 살 때 남편이 죽어버린다. 과부가 된 해나는 이후 본격적으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주로 친구와 이웃의 남편을 골라서 만백성 공평하게. 이런 가정교육을 통해 술라는 섹스라는 것이 즐겁고 빈번한 일이지만 별다를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게 된다.
술라의 이모 펄은 먼 곳으로 결혼해 가고, 외삼촌, 풀럼이라고 불리는 랄프는 1917년에 참전해 19년에 미국으로 귀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20년에 귀향을 한다.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완전히 무능력한 인간으로 변해버린 채. 그래 약에 취해 늘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풀럼을 견디지 못하는 엄마 에바, 어느 날,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아들의 침대에 가서 머리통을 꽉 안았다가 풀며 양쪽 뺨에 키스를 해주고, 침대 위에 등유를 듬뿍 뿌려준 다음, 방을 나가 신문지에 불을 붙여 확 불살라 죽여 버리고 만다. 아무도 못 봤다. 봤어도 말만 나가지 않으면 굳이 흑인이 죽은 이유를 백인 경찰이 조사하는 노고를 베풀지도 않는다. 동네 유부남에게 골고루 사랑의 은혜를 베풀던 술라의 엄마 해나 역시 어느 날 마당의 화덕에서 옷에 불이 붙어 타 죽어버리는데, 이층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할머니 에바는 이번엔 딸을 구하기 위해 창문을 깨고 그대로 자유낙하 하지만 딸을 구하지는 못한다. 대신 한 구석에서 자기 엄마가 타 죽는 걸 그냥 보고만 있던 술라를 마음 깊은 곳에 새겨둔다.
술라도 한 건의 살인에 연루된다. 동네 꼬마 치킨 리틀을 나무에 올려주고 같이 내려오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가, 꼬마가 귀여워 두 팔을 잡고 뱅뱅 돌리던 술라. 하필이면 치킨 리틀을 뱅뱅 회전시켜주던 장소가 강가였는데, 손에 땀이 차고, 꼬마의 팔목에도 땀이 차, 술라의 손에서 치킨 리틀의 손목이 쑥 빠지면서 그만 깊은 강물 속으로 풍덩 빠지더니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절친한 친구 넬 말고는. 또 있을까?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넬은 무엇을 했을까. 걔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토니 모리슨의 작품이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만 따라가서는 모리슨의 진짜 맛을 즐길 수 없다. 물론 번역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좋은 역자를 통해야 하겠지만 (나는 역자 송은주에게 실망한 적이 없다. 내년엔 그이가 번역한 길고 긴 책을 읽을 예정이다.) 독자를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고, 무엇보다 삶 자체에 대해 한 번은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깊은 사색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늘 심각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날 것처럼 튀는 경쾌한 글도 있다. 이런 것, 즉 문장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산문의 아름다움을 토니 모리슨만큼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이도 별로 없는 듯하다.
하나 더. 물론 흑인들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고 그들의 가장 난처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백인과 접촉하는 것이라고 고백하지만, 이 책에서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빼고, 그 자리에 그냥 보편적인 인간, 책의 ‘백인’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장애 한 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는 나 아니면 당신을 놓더라도, 모리슨이 만들어가는 삶의 모습이 별로 손상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굳이 흑인문학이라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보편성을 지향하는 토니 모리슨이 이젠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을 애달파 한다. 편히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