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딜런 토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아도니스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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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찌 고르지 않고 배길 수 있었을까. 글쓴이가 딜런 토머스이잖은가 말이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미국의 유명 가수 밥 짐머만이 딜런 토머스를 숭배한 나머지 이름을 밥 딜런으로 고쳤다니. 이름까지 고친 그는 몇 십 년 후에 가사lyrics가 예술이라고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어 버렸단다, 으악.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딜런 토마스의 시는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번역시는 읽지 않는다, 라고 작정을 하기도 했고 영시를 즐길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딜런 토마스라는 웨일스 출신의 시인. 이이가 쓴 소설집이, 외국 작가가 쓴 단편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별 부담 없이 읽는 연작 형태의 성장소설이라니. 그리고 단편집의 저 도발적인 제목을 보시라. ‘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생각나게 하는 제목인데 거기다가 젊은이의 삐딱한 시선까지 곁들여 그냥 예술가가 아니라 ‘개예술가artist as a young dog'라고 했다. 제목으로 진짜 개쩐다.
  그러나 모두 열 편이 실린 이 단편집이 쩌는 작품들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작가 자신이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스완지의 농촌과 작은 도시와 해변에서 자라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파노라마라기보다는 시간별로 열 점의 수채화를 전시해놓은 것 같다. 자신의 리얼한 체험이라고 믿는 독자는 없겠지? 소년이었을 때, 사춘기 시절,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각 단계에서 작가가 상상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묘사했는데, 당연히 이 과정에서 정당한 변주 기법이 들어갔을 터. 변주를 하지 않았다면 ‘개예술가의 회고록’ 쯤으로 제목을 달았겠지.
  그래. 수채화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극단적 은유의 나열로 골이 지끈지끈한 바로 다음에 담백한 수채화 구경을 하니 좀 개운해지는 것 같기는 한데, 다분히 도회적 취향인 나하고는 찰떡궁합까지 가지는 못해, 뒤로 갈수록 점점 곤란한 지경 근처까지 가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선 책의 편집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각주와 더불어 후주를 단 것까지는 좋다. 근데 후주가 무려 서른아홉 페이지에 달한다. 주석註釋 특유의 작은 활자로. 이미 서른세 페이지에 달하는 연표를 달고도 시시콜콜 작가가 왜 이런 ‘주석이 달릴 만한 단어나 문장’을 사용했는지 극히 세밀한 설명을 일반 독자에게 해줄 필요가 있을까? 이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해봤자 내 인생에 더 이상 수능시험을 치를 일은 없을 텐데. 주석이 있는 페이지로 건너가서 주석을 해독하는 일이 정작 본문을 읽는 것보다 더 까다로우면 어떻게 하냐고.
  이런 수준의 단편을 모아놓았으면, 그것이 불과 240쪽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적당한 분량의 해설, 연표, 주석을 붙여 좀 얇은 책으로 해도 충분히 좋을 것을. 암만 생각해도 편집자의 의욕이 과했다. 솔직히 말해, “친절한 의도는 고맙다.” 근데 과했다.
  수채화 같은 단편들. 그건 보장. 수채화 좋아하시는 독자들에겐 후회 없는 선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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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1-1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가 특별히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죠?
소설을 수채화처럼 쓰는거 저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팔스타프님 이 리뷰 읽으니 저도 읽어보고 싶어진단 말이죠. 장바구니 담았습니다.

Falstaff 2020-11-11 14:02   좋아요 0 | URL
옙. 제임스 조이스 작품들하고 유사점은 특별하게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읽고 있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완전 조이스인 걸요. 지금 연속해서 깜짝 놀라는 중입니다.
아이구, 전 완전 아마추업니다. 읽으신 다음은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

em 2021-09-0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기하게 위 댓글처럼 저도 더블린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딜런 토마스 작품은 시 몇 편과 편지 몇 통, 희곡 등 영어로만 접한 바 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번역본 중 재미있는 작품이 있을지 찾아보다가 리뷰 잘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Falstaff 2021-09-07 19:25   좋아요 0 | URL
더블린 사람들을 생각하시게 제가 독후감을 쓴 모양입니다. 하하하.... 하긴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영국 땅이 웨일스이군요!
영어권 독자들은 이 딜런 토마스한테 껌뻑 넘어가는 모양이더라고요. 저야 뭐 극동의 변방 독자로 그것까지는 알지 못해도, 그래도 뭔가가 있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