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림스키 코르사코프 : '5월의 밤'
Relief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 뭐 지휘 좋고, 연주 좋고, 성악가들도 좋은 빼어난 녹음입니다. 음질이 약간 빠지고, 리브레토가 러시아 말로만 있어서 구체적 묘사를 알 수 없어 별 점 하나 뺐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선율감이야 말로 하면 뭐하겠습니까.



  이 서정적이고 낭만스러운 오페라는 고골의 <오월의 밤>에서 영감을 얻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직접 대본을 엮었다고 한다. 그가 훗날 자신의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나중에 아내가 될 나데트다 포우르골드, 라는 아가씨에게 청혼을 한 날 함께 고골리의 작품을 읽었으며, 그 순간 이 작품을 새로 구성하여 오페라로 만드리라는 영감에 사로 잡혔노라고 했다니 작곡가 자신의 일생에서도 가장 로맨틱한 시절에, 가장 로맨틱한 감정으로 작곡한 것이 바로 이 오페라가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감상자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직접 썼다는 대본이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근데 함께 들어있는 리브레토가 불행하게도 러시아 어로만 적혀있다. 거기다가 나는 당연하게도 러시아 언어를 해독할줄 모른다. 노래 소리에 따라갈 정도 밖엔 안되는데....  이런.

 

  하여간 막이 올라간다. 당연하다. 막이 오르지도 않고 오페라를 시작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일련의 러시아 오페라가 그러하듯이 떠들썩하게 동네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며 노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 오월을 맞아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또다른 작품 <눈 아가씨>에서도 5월을 사람이나 곡식이나 간에 씨를 뿌리는 계절로 설정해놓았다는 거. 추운 나라라서 5월 자체를 찬미했으며 그 전통은 동구의 오페라에서 보듯이 남근을 상징하는 듯한 깃대를 세워놓고 그 꼭대기 까지 빨리 올라가는 총각한테 제일 아름다운 아가씨가 상을 주는 메이 폴, 그리고 메이 퀸을.

  젊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즐거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만 한 청년 만이 이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고독을 질겅질겅 씹고 있으니, 바로 오늘의 주인공 레브코 되시겠다. 청년 레브코는 동네의 영주의 외아들이다. 가만히 보니 혼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누구 생각하느냐고? 여인숙을 운영하는 아름다운 아가씨 한나를.

  원래 오페라에서 뭐 하나를 깊이 깊이 생각하고 있으면 아리아 하나는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오페라 공식에 충실한 부자집 외동아들 레브코는 우크라이나의 밤과 별빛을 반가이 맞는 아름다움에 관해, 꿈결같은 호수에서 전해오는 부드러운 속삭임에 관해 아리아를 한 방 때린다.

  아.. 이럴 때 아쉽다. 그 대사를 좀 알았으면 좋겠구만서도....

  아리아가 끝날 때 까지 무대 뒤에서 끈질기게 참고 또 참았던 한나, 드디어 무대로 뛰어 들어오면서 레브코의 품에 납짝 안긴다. 그리하여 이중창, 정말 아름다운 사랑의 이중창이 쏟아지는데,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지 몰라서 안타깝기는 이하동문.

  그저 수시로 한나가 뱉는 말, 루블류 테뱌.... 이 말을 우리말로 하면 "난 겁나게 당신을 사랑허요!"라서, 아, 시방 서로가 너무 사랑해 죽고 못살겠다는 이중창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지, 내용을 요약해놓은 짧은 글에서도 이 이중창에 관해선 꿀먹은 벙어리다.

 

  이중창이 끝나면 잠시 한 숨을 돌린다. 그러다가 한나가 레브코한테 조르기를, 호숫가 언덕 위에 음산하게 자리잡은 성을 가리키면서, 저 성에 대해서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이야기나 좀 해달라고 조른다. 레브코는 그 무서운 얘길 왜 들으려느냐고, 넌 그 얘기를 들으면 무서워 오줌을 질금거릴 거라고 여간해서는 말해주지 않으려 한다.

  바보같은 레브코. 무서워 하는 척하면서 공식적으로 레브코 품에 한 번 더 안기려는 한나의 깊은 속을 헤아리지 못하겠다니, 그래가지고 연애를 하겠다고?

  원래 생각보다 질긴 것이 여자 고집이고, 세상에 여자 고집을 이기는 지극히 극소수의 남자를 영웅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주인공 레브코가 영웅의 반열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리하여 전설을 이야기해주기 바로 전까지의 씬.

 

   근데 오페라의 대본은 그리 훌륭한 편이 되지는 못한다.

  레브코가 한나한테 전설 이야기를 하는 거, 내용이 이렇다.

  그 성에는 홀아비가 어여쁜 딸 하나와 둘이 살고 있었다. 근데 계모가 들어왔으니 바로 그 계모가 마녀였던 거다. 계모는 한나를 지극히 미워하여 기어코 집에서 쫓아내 버린다. 딸은 슬픔에 겨워 물에 빠져 죽으려고 호수에 몸을 던졌지만, 그녀의 영혼은 하늘로 귀천하지 못하고 호수의 인어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녀의 슬픈 이야기를 들은 인어 친구들이 마녀 계모를 꼬드겨 호숫가로 나오게 했고 물에다 빠뜨려 죽이려는데, 그 순간 마녀인 계모는 마법을 사용해 죽기 바로 전에 스스로도 인어가 되어버렸다. 근데 마법이 어찌된 일인지, 아가씨 인어는 계모 마녀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게 만들어 계모를 인어 사회에서 추방할 수도 없어서 오늘 이때 까지 계모 마녀의 끈질긴 복수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다.

 
  거기다가 이 여관 주인 아가씨 한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하나 더 있다. 누구냐 하면, 바로 레브코의 아빠, 영주님이다. 영주님 또한 홀아비로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데 그 상대로 바로 한나를 찍고 있던 참이다. 영주님은 그러나 자기 아들하고 한나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절대로 한나와 아들을 짝지워주지 않으려는 참이다. 영주님이 젊은이들의 축제판에 나타나서 한나한테 하는 꼴을 옆에서 보고 있던 레브코는 아버지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으리라고 작심을 한다.

  어느날 밤에 친구들하고 모여서 어깨에 큼지막한 도리깨를 들고 자기 집엘 쳐들어가 온갖 난장판을 부려버린다. 하지만 그 사건의 주범이 레브코라는 걸 안 영주님은 자기 아들이라도 파렴치한 짓을 했으니 찾아내 혼구멍을 내주리라 작심을 하게 된다.

  레브코가 호수 옆에 도망가서 한 번 더 깊은 시름을 하는데, 인어들이 나타나 군무를 추는 와중에 전설에서 나온 아가씨 인어가 레브코 한테 마녀 계모가 변한 인어를 물리쳐달라고 부탁을 한다. 레브코가 척 보니, 이상하게 보이는 인어가 한 마리 있는지라 그 인어를 손가락질하며 꾸짖는 순간 마녀 인어는 호수 밑에 쳐박혀 싱겁게 죽고 만다.

  그랬더니 은혜를 갚는답시고 아가씨 인어가 레브코한테 편지 한 장을 쥐어주고는 너네 아빠한테 보이라고 한다. 레브코가 편지를 들고 집구석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버지가 크게 지랄을 하면서 저놈을 당장 포박하덜 못할꼬! 난리를 피우는 순간, 레브코가 편지를 펼쳐보이니 뭐라고 씌여있느냐 하면,

  바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보낸 건데, "이 편질 읽자마자 작은 고을의 수령은 편지를 읽자마자 얼른 레브코와 한나를 결혼시켜버려라!"

  그리하여 레브코와 한나는 남은 세월 동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내용.

 

 근데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까? 영주님 아드님하고 여관집 딸이? 봉건시대에 말이지. 하여간 그건 나중 일이고 작품의 끝은 그랬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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