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 : 현진건 장편소설 한국문학을 권하다 21
현진건 지음, 박상률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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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애플북스의 ‘한국문학을 말하다’ 시리즈 스물한 번 째 책으로 시인이자 동화작가, 소설가, 역자 등등 안 하는 거 없는 문학인에다가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면서 교과서 편찬위원까지 명함에 박고 다니는 58년 개띠 남자, 박상률이 추천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책마다 누군가가 추천한 사람이 있는데 계용묵의 단편집 《백치 아다다》는 전석순이라고 하는 83년생 소설가, 김동인의 <젊은 그들>은 76년생 소설가 구병모 등등이 추천을 했고, 책 앞 부분에 추천인의 추천사까지 실었다.
  근데 놀랍게도, 하지만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추천인 박상률이 쓴 이 책의 추천사에 단 한 마디도 현진건의 <무영탑>을 이러이러한 이유로 추천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박상률. 시인으로 이름도 얻고, 문창과 교수로 지위와 안정된 수입도 얻고,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명예도 얻은 이 경박스런 문인은 자기 어렸을 적에 읽은 현진건의 단편소설들이 당시엔 요새 말로 19금 정도의 내용이었다고 우스갯소리로 꾸려나가기만 하고 <무영탑>이 왜 좋은 소설인지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이이가 읽어보긴 읽어보고 추천을 한 건가? 왜 그럴까 했더니, 같은 시리즈에 현진건 단편집 《운수좋은 날》이 있고, 거기에 쓴 추천사를 <무영탑> 추천사로, 그대로 복사해 옮긴 거다. 내 박상률의 시집 한 권을 읽자마자 책꽂이에 꽂는 대신 곧바로 쓰레기통에 쑤셔 박은 적이 있는데, <무영탑>을 끝까지 읽어보니까 박상률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기에 충분한 양심을 가지고 있고, 추천사로 다른 책의 것을 복사해 올린 것도 능히 할 만한 인물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영탑無影塔, 그림자 없는 탑은 ‘석가탑’의 다른 이름. 불국사에서 한 시오리 쯤 떨어진 그림자 연못, 영지影池라고 있었는데, 석가탑이 완공이 되면 영지에 탑의 모습이 그림자로 보일 것이라고 한 썩은 중놈이 말한 것을 그대로 믿은 아사녀가 기다리다 지쳐 못에 빠져 죽었고, 큰 공덕으로 다보탑과 석가탑을 다 짓고는 지어미 아사녀가 영지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묘한 석수장인maestro 아사달 역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영지에 빠져죽은 비극적 전설을 가지고 있는 탑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설은 딱 여기까지다. 일제에 조금도 협력하지 않아 비참한 가난에 시달리다 1943년에 장결핵으로 운명한 소설가 빙허 현진건은 여기에 있지도 않은 당대 최고 귀족, 이찬 벼슬을 하는 유종唯宗의 외동딸 주만珠曼을 등장시켜 지고지순한 부부간의 사랑의 틈을 파고들어 아사달을 죽기 살기로 사랑하게 만든다. 그래야 짧은 전설을 소설이 될 만한 스토리가 엮어질 수 있을 테니.
  시대는 바야흐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도 근 한 세기가 흐른 경덕왕 만년. 앗, 경덕왕. 구라 아니고 우리나라의 역사책 <삼국유사>에서 틀림없이 나온 바, 경덕왕의 생식기가 무려 여덟 치. 익숙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8 * 3.3 = 26.4cm. 30cm 플라스틱 자 한 번 손에 쥐어 보시라. 얼마만한 길이인지. 놀랠 노자. 이게 그거냐? 작대기지. 그러나 이전 지증 마립간이 세운 한반도 최고 기록 한 자 다섯 치, 45cm에 비하면 이도 나지 않기는 했다. 지증 마립간은 참 고생했을 거 같다. 그걸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평생을 달고 다니냐고. 하여간 경덕왕 만년의 사월 초파일부터 한가위 팔월 보름까지 통일 신라의 수도 서라벌의 대찰 불국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지 백 년이 지났건만 옛 고구려, 백제 땅의 신민들을 우습게 아는 서라벌 사람들의 심리가 밑에 깔려 있어서, 부여 고란사 부근 출신으로 신라 최대의 명찰 불국사에서 탑 쌓는 일을 맡은 젊은 아사달을 우습게 알고, 차별하고 싶어 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까탈을 잡고 싶어 하는 불국사의 중들도 나오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갓집 따님 주만, 구슬아가씨도 나오고, 구슬아가씨를 얻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쓰는 시중 금지의 아들 금성金城도 나와 하는 일마다 족족 얻어터지는 전형적인 악당을 맡고, 옛 화랑의 기개를 이어받은 헌칠한 기상과 넓은 도량, 높은 무공을 갖춘 금경신도 등장하는데, 물론 이런 조연들은 전부 허구다.
  부여에서도 마찬가지. 아사녀의 아버지이자 아사달의 장인father in law이고 장인maestro이며 스승인 부석과 그의 불량하기 이를 데 없는 다섯 명의 제자들을 등장시켜 기어이 아사녀로 하여금 부여에서 남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온갖 억측을 안은 채 거지꼴을 해가면서 서라벌까지 천리 길을 가게 만든다. 그리하여 드디어 도착한 불국사에서 남편도 만나지 못하고 문전에서 쫓겨나 시오리, 약 6km나 떨어진 영지 위에 석가탑의 그림자가 보이리라는 말을 믿을 정도로 아사녀의 머리가 나쁘든지, 서라벌까지 오는 동안에 하도 먹지를 못해 뇌에 영양공급이 안 됐든지, 그래서 미쳤든지, 시절이 지금부터 1,300년 전이니까 전설의 시대라 온갖 미혹을 믿는 습성이 있든지를 정당화 시켜야 했을 것.
  빙허는 전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여러 정황을 타당하게 만들고, 동시에 신문 연재소설이라는 한계 때문이라도 1938년 조선의 독자로 하여금 말초를 자극하게 해야 했을 것이다. 이걸 21세기의 대학 교수이며, 시인이며, 소설가이며, 동화작가이며, 삼국지 번역자(암만해도 나관중의 한문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우리말로 번역한 거 같지만, 이건 엄연히, 확실히, 진짜 그랬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의문이 든다는 뜻이니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법에 호소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람)이며, 교과서 편찬위원인 박상률이 지난 시절의 우리나라 대표 소설작품이라고 추천을 했는지 그의 뇌 구조를 한 번 보고 싶다. 비록 빙허가 일제에 단 한 번의 협력도 하지 않고, 타협도 있지 않아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당대엔 출판 금지 처분을 당했을지언정 <무영탑>은 정확하게 2류 아니냐는 말이지. 다시 한 번 말 하건데, 대학교수이자,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이자, 한문 번역자이자, 교과서 편찬위원인 추천인 박상률은 정말로 이 작품을 읽어보긴 한 건가?
  현진건의 놀라운 작품들은 단편에 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박상률도 안다. <빈처>, <운수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술 권하는 사회> 등등. 빙허의 업적은 단편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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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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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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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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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1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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