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솔루트노 공장
카렐 차페크 지음, 김규진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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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렐 차페크. 그의 형 요제프는 체코 대표적 입체주의 화가였다는데, 동생 카렐의 책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의 삽화를 그려줄 정도로 평생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카렐 차페크는 자신의 작품 <곤충극장>, <도롱뇽과의 전쟁>, <RUR 로봇>, 그리고 <압솔루트노 공장> 등에서 당시 세계정세와 현실 세계를 비판하는 태도를 견지했으며, 결국 1938년 뮌헨 회의에서 서구 열강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내린 결론에 의하여 나치가 체코 프라하를 침공했을 당시 반 나치 활동의 혐의로 체포당하기 몇 주 전인 크리스마스에 숨을 거두고 만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가 형인 요제프에게 늘상 동생 카렐을 잘 보살펴주라고 했었다고 했는데 결국 먼저 가버린 것이다. 요제프 역시 서둘러 망명을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프라하에 체류하다 결국 나치에 의하여 체포당해 1945년 종전을 눈앞에 두고 베르겐-벨겐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는다.
  그의 또 다른 작품 <호르두발> 역시 매력적인 작품이다. 보헤미아의 평원에서 벌어지는 호르두발 가족의 이야기로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드는 안타까운 흐름이 절묘하여 일독을 권하고 싶으나 책값이 만만하지 않다. 그래 내가 거칠게 구분한 카렐 차페크의 작품은 <RUR 로봇> 류의 현실비판/풍자 내용, <호르두발>만 읽어본 차페크의 3부작, 그리고 삽화가 그려진 짧은 이야기나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집 정도이다. 그러면 <압솔루트노 공장> 이야기를 해보자.
  작품은 1943년 1월 1일에 시작한다. 차페크는 1938년에 죽었으며 이 책은 1922년에 쓴 작가 최초의 장편소설이니 애초에 20년 후를 내다본 미래소설이고, 1943년은 체코가 나치 치하에 있으며 세계대전 중인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체코 철강 산업의 선두주자로 10개의 공장에 3만4천 명의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거대 회사 MEAS의 회장 G.H. 본디가 인민일보를 읽고 있다가 조그만 광고를 발견한다.
  “모든 공장에 / 매우 수지가 맞고, 딱 어울리는 것 / 개인적인 사정으로 즉각 판매함 / 엔지니어 R. 마레크에 연락바람 / 브르제브노프 거리 1651번지”
  R. 마레크가 혹시 루데크 마레크? 본디 회장의 대학 동창으로 약칭 루다 마레크일까? 공대 출신으로 교활한 악마 같은 놈. 고결한 허풍쟁이 같은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과학적인 두뇌를 가졌으며 떠벌이이기도 하고, 천재적인 면이 있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나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실용적 발명이라고는 하지 않는 엉뚱한 천재, 음. 몰락한 모양이구나. 라고 지레짐작해 천 코루나 지폐 석장을 건네는 상상을 하며 직접 브르제브노프 거리 1651번지를 찾아간다. 그리하여 진짜로 루다를 만났는데 매우 여위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정도 기품 있어 보이는 루다가 한다는 말이, “난 자네를 기다렸네.”
  루다는 본디 회장이 직접 올 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풀어놓는 이야기.
  석탄을 태우면 석탄이 가지고 있는 효율의 십만 분의 일만 사용할 수 있단다. 그래 조금의 열을 얻고 재와 석탄 가스, 그을음 등의 부산물이 남는데, 만일 석탄이 가지고 있는 원자까지 모두 연소를 시킬 수 있으면 눈에 보이는 부산물은 전혀 남지 않게 된다. 학자 플루거의 계산에 의하면 석탄 1 킬로그램으로 230억 칼로리의 열량을 얻을 수 있단다. 그러나 플루거는 사실을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이 분명해, 루다의 계산에 의하면 70억 칼로리 정도인데, 이 정도면 1 킬로그램의 석탄으로 적당한 크기의 공장을 수천 시간 가동하는 게 가능하며, 자신이 이런 기능을 하는 원자력 보일러를 만들어 이름을 ‘카뷰레터’라 지었다고 한다.
  본디 회장은 카뷰레터를 보기 위해 직접 은행 방탄금고 같은 강화된 출입문을 지나 수도원의 지하실처럼 아치형의 시멘트로 된 깨끗한 지하실로 들어가 기다란 원자력 보일러 카뷰레터를 대면한다. 조금 후, 회장은 이상한 미풍을 맞은 느낌이 들고,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자신이 마치 무게가 없는 듯, 놀랍고도 선명한 황홀감에 싸여 소리치고 노래하고 싶은 지경에 이른다. 이때 헬멧과 마스크를 쓴 루다 마레크 박사가 본디를 거칠게 낚아 채 지하실에서 빼내온다. 실제로는 본디 회장에 지하실 바닥을 기어 다녔다나. 혹시 일산화탄소 중독일까? 석탄가스? 아니면 천국가스? 유독가스 포스진?
  조금 헷갈리고 있는 본디 회장에게 마레크 박사가 엉뚱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대신 신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과학이 조금씩 신을 밀어내거나 출현을 방해하고 있고 이것이 과학이 해야 할 가장 큰 사명이라 믿는다고. 그러나 스피노자, 페흐너, 라이프치히 등을 거론하면서, '물질은 정신적 원자들'이며, 성질이 신적인 실체인 모마드Momad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한다. 모든 물질의 저 근본, 즉 원자마저 연소시키게 되면 물질 내에 갇혀 있던 신적인 무엇, 그것을 루다 마레크 박사는 ‘압솔루트노’라 칭하기로 했는데, 원자 내의 신, 화학적 무無, 화학적으로 순수한 신神인 압솔루트노가 생산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레크 박사의 카뷰레터는 일종의 압솔루트노 공장이며, 가동을 시킬 경우 압솔루트노가 생성되어 인체에 흡수되면 정신적 효과로 이상한 들뜬 기분과 황홀감을 느끼게 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네 번째 카뷰레터를 만들어 가동을 시킬 때부터, 그동안 박사의 내부에 농축된 압솔루트노의 작동으로 예언을 시작했고 기적을 시행하여 이미 본디 회장의 방문도 미리 알았던 바이고, 선반 가공 중에 잘린 손톱 부근의 살점이 금세 자라나기도 했고 심지어 공중부양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카뷰레터가 완전 연소로 인해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큼의 열량을 사용하여 석탄 연료의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반면에 한 번 사용하면 아무것도 압솔루트노의 침투를 막을 수 없으며 그건 속박에서 풀려난 해악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본디 회장은 기업의 경영자이다. 석탄을 구입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야 하고, 운반하려고 레일을 깔아 기차의 통로를 확보하는 대신 작고 가벼우며 무한대의 열량을 보장해주는 카뷰레터의 유혹을 어찌 뿌리칠 수 있을까. 부산물로 세상에 신을 배출하고, 이 신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은 인간으로 새로 만날 신을 저평가 하지 말 것을 경고한 마레크 박사에게 카뷰레터 제조, 판매로 생기는 총 수입의 3퍼센트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발명품을 구입한다. 그리하여 MEAS는 원자력 자동차 공장, 원자력 항공기, 원자력 기관차 공장, 선박엔진공장,, 원자력 대포 등등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러 런던 주식시장에서 어제 주가가 720파운드였다가 오늘 하루 만에 1,470파운드로 치솟는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카뷰레터는 독일로 5천대, 일본으로 9백대, 러시아로 2백대 수출되는 동안 체코 국내 시장엔 달랑 세 대만 판매하였으나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카뷰레터가 작동하는 곳마다 부산물로 신들이 생산되어, 새롭게 등장한 신들이 현지에 성공적으로 적응을 하여 인간을 움직이기에 이른다는 것. 카뷰레터가 수출된 장소, 국가에 완벽하게 적응한 신은 각자 현지인들의 특징, 즉 지역주의, 국수주의 적 모델로 인간을 변화하게 하는데, 이럴 경우에 이들의 충돌로 발생하는 것은? 죄송합니다. 안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야 할까? 물론 읽으면 좋다. 내 생각은 만일 당신이 <도롱뇽과의 전쟁>을 이미 읽었다면 굳이 이 책을 구입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이 작품이 차페크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서 그랬는지 12부까지는 괜찮게 나가다가, 13부에서 느닷없이 작가가 작품에 개입을 하더니 이후엔, 차페크가 쓴 것임은 분명하지만 마치 습작을 읽는 것처럼 갑자기 중구난방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말인 13부에서 차페크는 13부를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을 거라고 얘기를 한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비록 스스로 카렐 차페크의 팬임을 자처하지만, 작품을 12부에서 끝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는 바, 감상하는 것이 독자의 권리이듯 작품을 쓰는 건 명백한 작가의 권리이니 책을 12부에서 끝내라 마라는 아무리 독자라도 요구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느끼고 말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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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8-1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약간 번역 문장도 굉장히 어설프지 않던가요? 이 책만큼은 카렐 차페크 작품 치고 별 감흥이 없었는데.... 번역 문장도 한몫 거들었던 거 같아요.

Falstaff 2020-08-14 09:28   좋아요 1 | URL
옙. 번역문이, 제 생각을 그대로 말하자면, 쉽지 않은 우리말로, 될 수 있으면 좀 있어보이려고, 물론 역자가 정말로 그럤겠습니까만, 그렇게 읽히더라고요.
그동안 번역문에다 대고 하도 징글징글한 평을 해 대서 쩝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