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개를 들여놓았나
마틴 에이미스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에서 유명한 유머 작가를 고르라면 제롬 K. 제롬과 킹슬리 에이미스를 꼽을 듯하다. 훨씬 선배인 제롬은 <보트 위의 세 남자>로, 에이미스는 <럭키 짐>으로 명성을 즐기고 있는데 이 에이미스의 아들이 또 블랙 유머의 펜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 <런던 필즈>를 비롯해서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를 재미있게,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누가 개를 들여놓았나>는 책 표지 디자인과 제목이 좀 오버스러워서 영 손이 가지 않아 여태까지 읽기를 미루어왔다가 이번에 ‘해치웠다.’ 원래 제목은 ‘Lionel Asbo’, 주인공 이름인 ‘라이오넬 애즈보’ 그대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다.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다른 한 명은 데스먼드 또는 데스 혹은 데시 페퍼다인. 라이오넬 애즈보가 외삼촌이다. 이 복잡한 가계를 먼저 소개해야 하겠다.
  먼저 그레이스 페퍼다인. 아주 어려서부터 비틀스의 광팬이었다. 근데 매우 조숙한 어린이여서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만 열두 살 때 그만 덜커덕 임신을 해 딸 실라를 낳아버렸다. 그리고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아래로 연달아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존, 폴, 조지, 링고, 다섯째에 와서 이제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옛 비틀스 멤버의 이름을 따 스튜어트라고 했고, 여섯 번째 또 아들은 낳으니 더 가져다 붙일 비틀스 멤버가 없어 신경질을 벅벅 내다가 안무가 라이오넬 블레어에서 따온 ‘라이오넬’이라 불렀다. 이 라이오넬의 아버지가 첫째 딸 실라의 아버지와 같을 뿐이고, 나머지 다섯 명의 친아버지는 스칸디나비아,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어떤 나라 출신인 ‘것 같았다.’ 쉽게 말해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씀.
  이런 환경에서 나온 아이들이 보통의 영국인처럼 자라기는 매우 힘든 일. 멀리 갈 것 없이 맏이 실라만 보더라도, 문제적 환경과 문제적 인간들의 집합소인 디스턴 타운에 하나밖에 없는 스퀴어스 프리 초중등학교, 영국에서 경찰출동이 제일 많고, 중등학교 자격시험 합격률이 제일 낮고, 무단 결석률이 제일 높으며, 정학, 퇴학, 청소년 범죄 선도회 정도인 PRU 강등 비율이 가장 높아, 자연스럽게 소년원을 거쳐 청소년 감옥의 코스를 따르는 경우도 제일 많은 학교에서 완벽하게 공부도 하지 않는데도 수업시간에 들은 것만 가지고 전 과목 A를 받는 천재성을 지녔음에도 나중에 노숙자로 떨어질 운명을 지닌 자신보다 몇 살 더 먹은 흑인 아이와의 사이에서, 자신의 엄마와 같은 나이인 열두 살 때 그만 또 다른 주인공 데스먼드 페퍼다인을 출산해버렸다. 데스먼드, 데스, 데니는 생전에 딱 한 번 친부를 본 적이 있는 바, 공원의 벤치 위에서 잠을 자던 광경이었으며, 어머니는 그것이 자기 생전 딱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본 자기 아들의 친아버지 모습이었단다.
  실라와 유일하게 같은 아버지를 둔 우리의 주인공 라이오넬 페퍼다인은, 문제아들의 집합소인 스퀴어스 프리에서도 눈에 띄는 말썽꾼이라서 PRU를 거쳐 소년원, 청소년 감옥을 밥 먹듯 들락날락 거렸고, 성인이 돼서도 삶의 반 정도의 세월을 주로 폭력과 장물취득의 범죄에 연루되어 교도소에서 보낸 인물이다. ‘반사회적 행동금지 명령 Anti-Social Behaviour Order’을 하도 많이 받은 라이오넬은 그것도 근사한데, 싶어서 이름 자체를 페퍼다인에서 애즈보Asbo로 바꾼 인간이다. 리오넬 메시와 같은 이름을 쓰는 라이오넬에게 누구보다 빠삭한 세 가지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직업 범죄자의 삼위일체’라 불리는 악행과 감옥과 형법이었다. 책을 열면 벌써 로즈 놀스라는 남자를 병원에 입원해 장기 치료를 받아야할 만큼 폭행해 고소를 당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결코 고소 같은 걸 당할 인간은 아니지만. 라이오넬은 조와 제프라는 이름의 미친 핏불 테리어를 (엘리베이터가 21층까지만 올라오는, 즉 고장난)아파트 33층에서 사업상 필요 때문에 용맹성 증강을 위해 갖은 학대를 가해가며 키우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은 주로 채권추심이나 경쟁자 협박, 때로는 처치용을 말한다. 이 정도면 그림이 그려지시지?
  근데, 독후감을 읽는 분께서는 불쾌하고 지저분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마틴 에이미스의 코믹한 필설로 인해 경쾌하게 그리고 있으니 너무 그쪽으로 생각은 하지 마시고, 그레이스 페퍼다인 할머니에게 새로운 애인이 하나 생긴다. 바로 외손자 데스먼드. 데스먼드는 이제 열다섯 살에 불과하다. 데스는 학교를 거의 빠지지 않고, 수업 중에 졸지도 않으며, 선생을 공격하거나 화장실에서 마약에 절어 있지도 않는데다가 공부도 엄청 잘 해서 학교 안에서 겉도는 아이로 찍혀 흉포한 괴롭힘을 당할 충분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불과 여섯 살 많은 막내 삼촌의 막강한 영향력의 그늘 아래에 잘 다니고 있는 모범생이다. 모든 과목을 잘 한다. 진짜다. 가끔 이런 재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하여 책 표지에 데스를 일컬어 “르네상스 소년” 즉, 다빈치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뛰어난 소년이라 씌어 있는 거다. 근데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배수관을 고쳐주러 갔다가 할머니가 슬슬 분위기 잡아가며 만지는 통에 정말로 성적인 접촉까지 간 것인데, 생각만 해도 징그럽지? 열두 살에 엄마를 낳고, 엄마가 데스를 또 열두 살에 낳아서 할머니와의 나이차이가 불과 24년, 이제 겨우 서른아홉 살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틀림없는 중범죄인데, 상대적 약자, 이 경우엔 손자인 데스에게 더 깊은 상흔이 남는다. 그는 남은 전 생애에 걸쳐 끔찍하지만 아물지 않은 상흔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관계가 끝이 나느냐고? 할머니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 학년 아래, 입술에 피어싱을 한 미소년 로이 나이팅게일과 관계를 시작하면서, 할머니도 손자와는 아무래도 좀 그래서 일찌감치 정리를 했던 거다. 그러나 아뿔싸, 막내 삼촌 라이오넬이 이 사실을 알아내고 로이를 납치해 모종의 장소에 팔아넘긴다. 쥐어뜯어 뜯긴 입술 살점이 붙은 피어싱을 데스에게 기념으로 준다. 나, 라이오넬의 엄마하고 했다면 이 정도는 각오를 하고 해야지.
  지금 데스는 삼촌하고 함께 산다. 몇 년 전, 슈퍼마켓에서 살짝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혔지만 금방 일어나 웃음을 지었던 엄마가 다음날 아침에 그만 숟가락을 놔버렸던 거다. 라이오넬도 그렇고 데스도 그렇고, 불과 여섯 살 많은 삼촌이 마치 아버지처럼 데스를 보살폈다고 주장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준 건 맞는 듯하다. 하여튼 삼촌이 시키고, 권하고, 가끔 강요하는 딱 반대로만 하면 세상사는 정답이 된다는 것을 일찍 깨친 데스먼드에게는.
  그런데, 크고 크고, 또 큰 사건이 벌어진다. 삼촌의 친구이자 사촌인 말론 웰크웨이와 한때 대외적으로 애인사이였던 지나 드래고의 결혼식 때 난리법석, 패싸움을 유도하여 크게 사고를 쳐서 또다시 교도소로 간 라이오넬을 면회 갔을 때였다. 평소 절대 복권 따위는 사지 않는 라이오넬이 단지 늙은 수감자를 괴롭히고 싶어서 복권 교환권을 강탈을 했는데 면회 온 데스먼드에게 로또 번호를 써 우편으로 보내라고 지시를 했었다. 근데, 데스먼드가 찍은 번호의 로또가 그만 무려 1억 4천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300억 원에 당첨이 된 거다. 와우!
  자, 여기까지만.
  이제 짧은 감상. 서양 유머 코드지만 요새 사람이라서 읽으면서 낄낄대는데 문제가 없다. 즐거운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지만, 내 경우에, 후반에 들어 불길하고 끔찍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고, 비슷한 유머 또는 말장난이 워낙 계속되니 나중엔 좀 질리는 감이 있었다. 그래도 이만한 블랙 유머를 선택하기 위하여는 행운이 필요하니 한 번 읽어봄 직도 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