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반생기 범우문고 80
양주동 지음 / 범우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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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올라가서 처음으로 교과서를 통해 양주동의 글을 배운다. <몇 · 어찌>. 지금 읽어보니 수필을 중학생 수준에 맞게 자르고 쉬운 말로 풀어쓴 글이었다. 양주동, 자칭 우리나라의 최고 천재이자 국보 1호이자, 연세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 이후로 꼭 ‘박사’라는 호칭을 가져다 붙이는 양주동 박사는, 지금 종편에서 출현하는 정도로 치면 원래 시를 썼다가 문화비평가라고 하기도 하다가 상당한 수준의 음악평론도 했다가, 이젠 별의 별 참견을 다 하는 김갑수 정도의 빈도로 TV에 출연을 해, 익히 이이의 입심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벌써 천국의 환희를 맛보고 계신, 편히 쉬시기를, 이주사께서 직접 양박사를 사사하셨는지라 흑백 TV에 양박사가 나오기만 하면, 이 양반의 말버릇이라든지, 혹시나 강의실에 간혹, 아주 간혹, 당시가 1950년대였으니 진짜 드물게 여학생이라도 한 명 있으면 지금 시절 같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은유법을 사용해 은근한 음담까지 곁들이기도 하고, 양복 윗저고리 호주머니에 든 땅콩을 까먹으며 특유의 구수한 입담을 풀어놓아,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전공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학교에 청강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시고는 했는데, 그중 백미는 워낙 수강신청 인원이 많아서 시험 본 후에 일일이 채점하기가 곤란하니, 1950년대의 일반 가정에서는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던 철제 선풍기 앞에 시험지를 올려놓고 선풍기 틀어 멀리 나가는 놈인지 아니면 가까이 떨어진 놈인지한테 A를 주었다나, 하여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아니 될 천만의 말씀을 하시어,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의심도 해본 적이 있는, 말 그대로 당대의 인물이기는 했다.  선풍기와 학점 주는 이야기? 그거 진실일 거다. 내가 군대 갔다가 와서 복학한 1980년대에도 어떤 선생이 리포트를 요구하는데, 주문이 ‘원고지 다섯 매 이내’였으며 선생한테 잘 보여 학점 좀 좋게 받으려고 다섯 매를 넘겨 작성해 제출했다가 장렬하게 D 학점을 받는 것도 봤으니 하물며 1950년대에랴. 하여간 당대의 문제 교수였던 양박사는 하도 인기가 높아 특강하러 다니지 않은 학교가 없어 내 부모 두 분 다, 편히 쉬시기를, 양박사의 강의를 들은 바 있어 TV에 이 양반만 떴다하면, 사마천의 <사기>부터 <삼국지연의>, <당시>를 거쳐 향가 스물다섯 편과 고려가요의 남녀상열지사를 에두르고 난데없이 세기말 프랑스 시인들으로 훌쩍 뛰어넘는가 싶은데 또 영미 시인 등등 그야말로 국경도 없고 시대도 없고 동서양도 없는 잡학다식의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나니, 오늘에야 알았다. 두 분이 양주동 박사, 국학에 관한 실력으로 말하자면 당대에 감히 누가 있어 양선생에게 ‘박사’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을꼬, 어쨌건 평생소원이었던 ‘박사’라는 말을 듣고 그리 좋아했다 하니 이렇게 불러도 실례는 아니렸다, 이이가 쓴 《문주반생기》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플레이 온play-on, 하셨던 것이었다.
  지금도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위에 거론한 <몇·어찌>가 무엇인가 하면 수학의 한 분야인 기하幾何라는 것을 처음 접한 양주동 소년이, 기하? 기하? 과연 기하란 것이 무엇일꼬? 기幾는 ‘몇’이란 말이고 하何는 ‘어찌’란 뜻이니 합하면 ‘몇 어찌?’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말이지? 기하란 놈의 정체를 한 열흘 넘어 고민하다가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 첫 기하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교사에게 “선생님! ‘기하’란 말이 대관절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라고 질문을 했겠다. 선생이 한참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너, 영어를 하느냐?” 그리하여 “모릅니다.” 이어 선생께서 못을 박는 말씀. “그럼, 영어를 좀 알게 되거든, 그때에 가르쳐주마. 그런데 이놈아, 그 모가지가 무엇이냐? 내일은 잘 씻고 와!”
  한 번 몰두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이 한 가지 궁리에 빠져버리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이 노상 그렇듯이 ‘기하’라는 것의 뜻을 간파하기 위해 소년 양주동은 세수고 뭐고 도통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거였다. 그래 목에 새까맣게 때가 앉았던 것. 어쨌든 나중에 기하는 중국말로 ‘지호’라고 발음하며 서양에서 넘어온 측지술, 지오메트리geometry의 ‘geo'를 중국어로 쓴 것을 다시 그대로 우리가 쓴 거란 설명이다. 이게 나 중학교, 아마 1학년 때이지 싶은데, 그때 교과서에 실린 내용.
  근데 더 재미있는 게 있다. 이이가 현해탄을 건너 동경엘 가서 와세다 예과에 들어가려 시험을 치는데, 영어 문제에 “영국 황태자 전하께서 모월일에 본방(本邦:본국, 우리나라)을 내방하시와…”을 영어로 쓰라는 문제가 나왔단다. 그때까지 영어 독학을 했다하나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 ‘황태자’나 ‘전하’ 같은 단어는 알지도 못하고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도 한문을 통해 배운 터여서 ‘연사피리순煙士披里純’으로 발음했던 수준이라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영어로 만들어 답안지를 메꾼 것이, “The First Son of English Emperor visited this country…"였단다. 하여튼 하바드, 아니, 와세다 영어과를 졸업하고 평양의 숭실전문에 교수로 재직할 때 영어 입시 문제를 낸 바,
  "조선은 6월에 비가 많이 온다."
  라는 시험문제를 내니, 어느 지원학생이 답안지에 쓰기를,
  “Korea six moon rain many come"
  이라 해서 0점을 주었단다. 마지막에 피리어드만 찍었더라면 1점은 주었을 거라 하면서. 근데 미국인 교장이 양박사에게 어찌어찌하여 이 학생을 반드시 입학을 시켜야 하니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더란다. 도대체 마땅한 설명이 없어 이 답안지를 보여주었더니 미국인 교장이 파안대소하며 이런 문장은 영시를 아주 잘 쓰는 해박한 영미 시인들이나 쓸 수 있는 수준이라 우겨, 0점 앞에다가 6자로 보태 60점을 주긴 주었는데, 미국인 교장의 권유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와세다 대학 입시를 칠 때 The First Son of English Emperor가 머리에서 삼삼해 그랬다나?
  이 책 《문주반생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난 척이다. 가히 당대의 혁명여걸 강경애와 1년을 동거할 만한 지적 수준의 재원인 것은 틀림없다. 이런 인간이 자기 자랑을 무려 책 한 권에 걸쳐 계속하면 대개 독자들이 짜증을 내다가 욕이나 한 바가지 쏟고는 책을 덮기가 십상인데, 천만의 말씀. 양주동 박사의 《문주반생기》을 읽다가 보면, 그가, “귀엽다.” 양박사의 우리나라 고전 해석에 관해서는 아직도 후학들이 그를 완전히 능가하지 못했을 정도로 탁월하고, 동서양과 시대를 초월한 지식과 정서와 문학적 요소 역시 지금 수준에서도 눈부실 정도에다가, 술에 관한 한 바탕 기행 역시 만만하지 않아 사실 이이가 할 말이 많기는 했을 거다. 그런데 어찌 이야기를 이리도 재미있게 하는지, 이이의 뻔뻔함이 오히려 무구하게 들려오는 것은 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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