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 - 돈 드릴로 장편소설
돈 드릴로 지음, 정회성 옮김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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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노이즈>와 <마오 II>를 재미있게 읽어 서슴없이 <리브라>를 골라 읽었다가 혼쭐났다. 작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대단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본명과 가명을 섞어 사용하며, 여전히 음모론에 휩싸여 혼돈을 자아내고 있는 JFK, 존 핏제럴드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노트에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좀 지나고부터 메모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작은 글씨로 무려 아홉 페이지를 노트했다. 당연히 읽는 시간도 보통의 작품보다 배는 더 들었을 듯.
  마거리트 클래버리 오즈월드라는 여인이 있었다. 에드워드와 결혼을 해 살다가 아들 존을 낳자마자 이제 영원무궁하도록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악몽에 시달리던 에드워드는 공포에 질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두 번째 만나 결혼한 로버트 E. 리 오즈월드 씨는 보험 모집원으로 둘째 아들 로버트를 낳고, 셋째이자 막내인 리가 태중에 있던 여름날, 불타는 더위 속에서 잔디를 깎다가 피식 쓰러져 발발발 팔 다리를 떨더니 그만 숨이 넘어갔다. 세 번째 남자 에크달 씨로 말하자면 나이가 지긋한 엔지니어로 한 달에 천 달러 이상을 벌어오는 괜찮은 남자였지만 마거리트의 눈을 속이고 바람을 피운 게 걸리는 바람에 이혼을 해버리고 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피우라고 해도 바람 같은 거 못 피울 터인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이혼을 해버려,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비록 구만리는 아니지만 구천리 정도 남은 인생을 어렵게 꾸려나가기에 이른다. 거 옛 말에도 있는데 말이지. 바람피우는 남편은 참아도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은 못 참는다고. (시대가 1940년대였으니까 말이지만.)
  첫 남편의 아들이자 맏이이며 착한 존은 결혼해서 엄마와 배다른 동생 리와 함께 대가족으로 살았다. 어려서부터 외톨이 기운이 있던 리가 하루는 형수한테 주머니칼을 들이밀고 다투는 바람에 엄마하고 리는 존에게서 떨어져 나와 둘만의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근데 미국이나 유럽의 저 피부색 허연 것들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한 번 찢어지면 그길로 영원히 안녕이라 맏이 존은 이걸로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로버트는 이꼴저꼴 보지 않으려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잘 적응하며 복무하고 있다가 책의 저 뒤편 결말 부분에 등장해 눈물바람을 한 번 하는 역할을 맡는다. 리는 집에 있던 해병 교범을 보면서 자신도 해병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열여섯 살 때부터 나이를 속이고 입대하려 시도를 하지만 사실 좀 어려보이는 외모라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결손가정에서 자랄 운명이었던 리는 거기다가 가난, 잦은 이사 등으로 점점 내성적 외톨이, 요새 말로 외로운 늑대의 심정을 차근차근 갖추게 된다. 무단결석이 넘치고 넘쳐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의하여 청소년의 집으로 넘겨지기도 하고, 청소년 상담사와 심리 테스트로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뉴욕 지하철역에서 “로젠버그 부부를 살립시다.”라는 유인물을 구경한 적이 있는 리는 엄마와 뉴올리언스로 이사를 하고 마침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지적 영역을 확장하니, <자본론>이나 <공산당선언>을 독파,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임은 선언한다. 근데 사실 이건 학교나 동네에서 리가 자신들과 달리 북부, 뉴욕 말씨를 쓴다고 아이들이 집단 따돌림, 속어로 ‘다구리’를 가하는데 반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런 경위를 거치면서 리 오즈월드는 자기가 앞으로 할 일로 부두 근처에 있는 미국 공산당의 세포조직에 가담하는 것하고, 해병대에 입대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리가 마르크스주의와 해병 교범을 읽기 전의 유일한 취미생활은 목요일마다 방영해주는 범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교범을 읽으며 살인의 요령을 외우게 된다. 사람이란 것이 하나를 알게 되면 그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정상이라, 데이비드 페리라는 이름의 주요 등장인물로부터 고장난 22구경 권총을 15달러에 사서, 결국은 고치지 못해 형 로버트 오즈월드에게 10달러를 받고 넘기기도 한다.
  드디어 리가 열여덟 살이 되기 한 달 전, 174cm, 62kg의 몸으로 해병대에 입대, 훈련을 받고는 미닫이문과 눈이 가늘게 찢어진 매춘부의 나라 일본, 그중에서 아쯔기에 있는 레이더 기지의 레이더실에서 근무한다. 아쯔기의 레이더 기지에는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정찰기 U-2기가 상공 24km까지 올라가 주로 소련과 중공을 촬영하고는 했으며 이게 상당한 비밀이었던 모양이다. 일본에서 리는 미쯔꼬라는 이름의 서른네 살 먹은 매춘부와 그녀의 관리인이자 사회주의자인 코노라는 남자와 유대를 갖는다. 그래 머리를 굴려보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군사비밀을 소련에 넘기면 소련에서 자신을 환대해줄 거 같은 거였다. 일본 생활에도 염증을 느끼기 시작해 코노에게 선물로 받은 작은 데린저 식 은도금 권총으로 자신의 왼쪽 팔을 쏘아 의병제대를 시도하지만, 팔뚝은 작은 수술로 탄알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나고, 자신은 허락받지 않은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군법재판에 넘겨져 28일 동안 영창에서 별 짓을 다 당한다. 1957년엔 미국 영창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근데 텍사스로 거처를 옮긴 엄마가 때마침 작은 사고를 당해 얼굴에 부상을 당한 것을 기회로 의가사 제대를 해 포트워스로 간 리는 일본에서부터 뜻을 세워 조금씩 러시아어를 공부하더니 스위스 쿠르발덴에 있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 합격한다. 원서에 학기가 끝난 후 핀란드 투르쿠 대학의 하계 세미나에 참석하겠다는 것을 처음부터 명백하게 밝히고. 그러더니 정말로 스위스, 핀란드를 거쳐 하루 만에 소련 비자를 받더니 모스크바로 망명해버리는 거다. 소련 땅에만 가면 술이고 음식이고 집이고 자동차고 다 해줄 줄 알았겠지. 그러나 천만의 말씀. 현재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있는 공장의 노동자로 보내버린다. 소련. 엄청난 대지와 풍광과 사람들의 스케일, 그리고 추위. 여기서 리는 미숙련 금속 노동자로 지내다가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수 없어 ‘마리나’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결혼해 딸을 하나 낳고, 다시 미국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귀국길에 오르는데, 소련은 알고도 못 본 척한다. 골치 아픈 인간 하나가 제 발로 땅에서 나가겠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던 거다.
  그리하여 이제 텍사스 댈러스 근방에 자리 잡은 리 오즈월드 부부. 리는 이곳의 교과서 창고 6층에서 1963년 11월 22일 링컨 컨티넨털 무개차에 분홍색 투피스를 입은 아내 재클린과 코넬리 텍사스 주지사 부부와 함께 타고 신나게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JFK에게 세 방의 총알을 발사하게 된다. 첫발은 케네디의 어깨와 목 부근에 맞았으나 치명상은 아니라고 판단해, 두 번째 총알을 날리는데 그건 엉뚱하게 코넬리 주지사를 정통으로 맞혀버리고, 세 번째 총알은 완전히 빗나간다. 그럼 한 순간 대통령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가 싶다가 뭔가가 퍽 물결치며 흩날리게 하는 총알은 누가 쐈을까? 이리하여 케네디 암살 사건을 둔 음모론은 여태까지 사라지지 않은 채 숱한 작가, 역사가들이 픽션 또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돈 드릴로도 <리브라>를 통해 음모론의 하나를 만들어낸 것. ‘리브라Libra'는 천칭자리라는 뜻으로 리 하비 오즈월드라는 이름의 인간, 바로 천칭자리, 암살자를 상징한다.
  무엇이 리 오즈월드로 하여금 대통령을 암살하게 만들었을까. 이게 이 책이 재미있는 핵심인데 내가 맨입으로 가르쳐드릴 수야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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