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왕국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0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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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듣는 작가지만 쿠바에서는 소위 국민작가로 불린다고 한다. 1904년 스위스 로잔 출생이나 쿠바의 아바나에서 유년시절부터 대학에서 건축학과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이이의 전공 때문인지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음악과 악기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음악을 알지 못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것을 이유로 이 작품을 피할 필요는 없다. 이후 쿠바의 독재정권에 맞서 반정부 운동을 하다 잠깐 투옥도 되고 유럽으로 피신해 한 십 여 년 살다 되돌아 왔다가, 아직 때가 아니다 싶어 또 베네수엘라로 도피하고는 1959년 쿠바혁명을 완수하고 곧바로 귀국해 신생 쿠바의 혁명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쿠바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이티를 무대로 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을 발견할 당시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1697년에 섬의 서쪽을 프랑스가 차지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를 거쳐 1804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빨리 독립을 쟁취한 나라가 된다. 책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고자 하는 아프리카인, 즉 흑인들을 중심으로 씌었는데,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1492년, 콜럼버스 일행이 이 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했을 때, 선원들과 함께 온 것이 있었으니, 천연두 정도로 짐작이 되는 전염병이었다. 아시다시피 구 멕시코 제국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 군대한테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굴복한 것이 용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유럽인들에겐 상당한 정도의 면역력이 있었던 천연두 때문이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이유로, 스파니올라 섬의 50만 명가량 원주민 거의 전부가 불과 6개월 만에 전멸을 하고 만다. 이런 상태로 식민지를 경영할 수 없으니 모자라는 노동력을 아프리카의 노예상인한테 조달을 받아 비옥한 토지에 사탕수수, 담배, 커피 등을 재배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아이티와, 오른쪽에 국경선을 맞댄 도미니카에는 다수의 흑인들을 포함한 유색인종과 극소수의 백인, 그리고 소수의 흑백 혼혈로 구성되고, 백인에 의한 유색인종에 대한 핍박과 박해와 수탈과 능욕과, 고문-죽음을 포함한 사형私刑이 지속되기에 이른다. 동시에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군에 편입하여 싸운 아이티 흑인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18세기 말부터 자생적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가 19세기 초인 1804년 드디어 유색인종에 의한 세계최초의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책에서는 므시외 르노르망 드 메지 씨가 경영하는 르노르망 드 메지 농장에서 사탕수수 압착 공정의 노예로 있었던 실제 인물(이라고 하는) 마캉달이 등장한다. 어느 날 작업 중에 마캉달의 왼손이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 크고 늙은 말이 돌리는 방아 돌에 어깨까지 갈려 상박 부분을 절단한 불구의 노예로, 원래 출신은 아프리카 노예 가운데 가장 다루기 힘들고, 불온하며, 악마 같은 존재이며 잠재적 도망자로 분류하는 만딩고 족 출신이다. 아니나 달라, 이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가축 돌보는 일을 맡게 했는데, 들의 모든 작은 생물들, 풀과 버섯, 작은 곤충을 포함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 자연의 맹독을 자유스럽게 사용하게 됐을 때쯤에 도망을 해버린다.
  팔이 하나밖에 없어 가격을 거의 매길 수 없는 싸구려 노예지만 다른 노예들을 경계하고자 사냥개들과 함께 마캉달을 추격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대신 개, 암소, 수소, 송아지, 말, 양 등 수 백 마리가 죽어 넘어져 드 메지 씨의 농장이 있는 플랜 뒤 노르(섬의 북쪽에 있는 대목장 지역) 전역에 시체들이 넘쳐난다. 여기에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넘어온 부두교와 유럽에서 온 가톨릭이 합쳐져 소위 말하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붐 경향’이 발생, 마담 드 메지는 나뭇가지에 달린 탐스런 오렌지 하나를 따먹고 그 자리에서 급사를 해버린다. 이에 흑인 노예들은 마캉달이 발굽달린 동물, 조류, 물고기, 심지어 곤충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으며 동시에 여러 아시엔다(농장)에 지속적으로 방문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빙의된 위대한 신으로 격상시킨다.
  그래 백인들은 흑인 노예를 차례로 고문해 그중 ‘안굽이 무릎의 사내’가 실토하기를, 최상의 권능을 부여 받아 백인들을 없애고 산토도밍고에 흑인들의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백인 박멸을 위한 성전을 선포했으며, 노예 수천 명이 마캉달을 신봉한다는 말과 함께 그를 잡을 수 있는 단서를 토설한다. 백인들이 이 안굽이 무릎의 사내를 내버려 두었겠는가? 열 받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정보를 주었음에도 배를 갈라 죽여 버린다. 다음해 1월, 플랜 뒤 노르의 모든 노예들이 도시 카프의 광장에 모인다. 흑인들을 위한 갈라 쇼가 열릴 예정인바 조금 뒤에 중무장한 경비 대원에게 호송되어, 허리에 줄무늬 바지가 달려 있고 밧줄과 매듭이 ‘반드시 필必 자’처럼 묶여 있는 마캉달이 입장해 나무 기둥에 다시 묶인다. 화형에 처하기 위한 것.
  그러나 흑인 노예들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마캉달은 파리, 지네, 나방, 개미, 거미, 무당벌레 또는 개똥벌레로 변신해 스르르 미끄러져 다시 모기로 모습을 바꾸어 사령관의 모자 위에 가뿐하게 앉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정말 다리 아래에 불을 붙이자 끔찍한 비명과 함께 몸이 타기 시작하고, 마캉달을 묶은 밧줄도 타기 시작해 까맣게 그은 몸의 줄이 툭 끊어지자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아 앞으로 움직이다가 푹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본 흑인 노예들은 틀림없이 이 순간에 마캉달이 변신해 어딘가로 숨었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고, 그리하여 전설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러, 다른 작가가 쓴 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 흑인노예들에 의한 백인에 대한 약탈과 살인과 린치에 이어 1804년 드디어 독립선언을 하게 되고, 장 자크 데살린이 초대이자 종신 총독에 등극한다. 하지만 2년 후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이티는 남쪽은 알렉상드르 페시옹이, 북쪽은 앙리 크리스토프가 대통령과 황제를 칭하면서 프랑스의 군복, 예복, 풍습 등을 그대로 복사하기에 이른다. 자,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책은 서문과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읽어본 자격으로 말씀드리자면, 본문을 다 읽은 후에 서문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서문은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 사람이 서문을 읽으면서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곤란할 것인데, 만일 본문을 다 읽은 상태라면 곧바로 이해가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금 작가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쩌면 책에서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늘 그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으면 독자 입장에서 난감할 수밖에. 물론 서문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유럽의 허망한 고딕문학이나 초현실주의 같은 건 공상을 통해 나타나는 인위적 모습인 반면, 라틴 아메리카는 삶 자체가 마술적, 경이적이어서 사는 모습만 그대로 써놓아도 그것에 필적할 것이라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알레호 카르펜티에르가 새로이 열기 시작했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4부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거기에 대하여는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씀만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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