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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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상한 작가다. 오랜 세월 동안 금지된 이름의 작가가 쓴 금서 <천변풍경>을 읽어보니 더욱 그렇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자진해서 남조선노동당에 들어가 월북을 했을까? 박태원. 광교쯤으로 보이는 청계천 상류에 사는 도시 소시민들을 섬세하고도 따뜻하게, 굳이 경향으로 치면 리얼리즘 작가가, 공산주의 독재 치하에서 정말 자기 뜻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을까? 1950년이면 이미 소련에선 레닌을 거쳐 스탈린이 철권을 휘두르며 거의 모든 예술가들을 질식시키고 있었을 당시였던 것을. 다른 건 아직 안 읽어보고, 단지 <천변풍경> 하나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박태원은 아무 생각 없이 옆에서 가자는 대로 그냥 가다보니 어, 어 하는 동안 자꾸 북쪽으로 가고 있었던 거 같다.
  더구나 박태원은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노골적으로 친일 문학에 힘을 써, 내신일체 사상의 고양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바 있거늘, 어찌 제 발로 북쪽을 선택했을 수 있었을지 못내 궁금하다. 무소의 뿔처럼? 이이의 외손자가 누군지 아시지?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탄 봉준호. 물론 봉준호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니 그가 박태원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한다. 그냥 그렇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원의 창작 유전자 일부가 봉준호에게 조금은 이어졌다는 것이 생물학적 진실이긴 하다는 거.
  근데 어째 박태원에게 리얼리즘 작가라는 딱지를 붙이기가 좀 어색하다.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아 우리나라 옛 작가들에게 미안한바 작지 않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 제목은 최인훈의 것으로 읽어서 상당히 오랜 동안 <소설가 구보....>는 그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세월이 좋아져 <소설가 구보....>가 원래는 자진해서 월북한 박태원의 중편소설이고 최인훈이 나중에 박태원을 본받아, 요새 쓰는 말로 패러디한 것임을 알게 됐으나 그렇다고 새삼스레 다시 찾아지지는 않던 거였다(조만간에 꼭 읽어보리). 하여간 박태원의 구보는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우리나라 모더니즘 문학의 한 기념비라고 하도 많이 들어서, 모더니스트가 월북을 해? 보나마나 가자마자 숙청당했겠군, 했더랬다. 뭐 그런데 잠깐 고생을 하고 난 다음 죽을 때까지 장편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했다고 하니 소설가로 천수를 누렸던 모양이다.
  경성의 광교 부근. 북악에서 흐른 맑은 물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곳엔 동네 아낙들이 빨래를 할 수 있게 샘터를 만들어놓고 샘터 주인이 한 번 빨래하는데 5전씩을 받아 호구를 한다. 샘터를 제외하고 유유히 흐르는 천에는 여지없이 생활하수 같은 것이 둥둥 떠다녀 발 한 짝이라도 집어넣으면 곧바로 썩어질 것 같다. 샘터에 동네 가겟집의 안집 살이, 드난살이 하는 아낙네 십 수 명이 입춘 지났다고 좀 덜 매운 개천 물에 빨래들을 척척 휘두르며 동네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주절이, 주절이 떠들어대는 것으로 이 재미있는 옴니버스 식 장편소설의 막을 연다.
  기생 취옥이는 원래 이름이 언년인데, 언년이 엄마가 딸을 권번에 보내 본격적으로 기생이 되니 이젠 딸 덕에 호사라, 같은 동네 최고로 어여쁜 이쁜이 엄마는 왜 그리 고운 이쁜이를 권번에 보내지 않는지 아무리 이야기를 해줘도 도통 씨알이 먹히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취옥이와 같은 권번에 있는 명월이는 이상하게 고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열 시간도 못 불려 다니지만 그래도 종로에 있는 은방 주인이 홀랑 반해서 해달라고 하는 건 웬만하면 다 해주니 기생팔자보다 더 좋은 게 세상에 몇이나 되느냐는 말이지.
  그러나 이쁜이 엄마 입장에서는 천만의 말씀. 열세 해 전에 남편 죽고 소녀과부가 되어 그거 하나 바라보고 키우는 재미로 살았는데 어딜 권번이 말이나 되는가. 이제 전매국 의주통 공장에 다니는 강석주라고, 키는 작지만 귀염성스럽게 잘 생긴 청년과 식을 올려준다. 신부화장을 한 이쁜이를 보고, 감히 이쁜이를 며느리로 삼기엔 자기 아들과 살림이 턱없이 척진다는 것을 아는 점룡이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옛적에 당명왕을 녹여낸 양귀비보다 못하지 않다.”
  했으니 독자들은 이쁜이의 어여쁨이 어떤 수준인지 짐작이나 하시라.
  그러나 그러면 뭐해. 쥐뿔도 없는 서방 아이는 옛적부터 조선의 고관대작은 일처양첩, 본처 하나에 첩을 둘은 두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30년대 전매국의 공원 신분으로 캐시미어 외투에 양복을 쪽 빼입고 구리개니 종로니에 있는 술집, 카페, 그것도 모자라 새문교회 동생까지 반반한 아가씨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반면, 취미생활로 광교 근동에 가장 고운 자태를 자랑했던 맘씨 좋은 어린 마누라 두드려 패기로 정해버린 것을. 여기다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가히 막장 수준이라, 원래 성질머리도 더러운데다가 자기 남편, 그러니까 이쁜이의 시아버지가 며느리 쳐다보는 눈길이 또 묘하다고 근거 없는 질투까지 섞여 며느리한테 해대는 바람에 세상에 그리 매운 고초당초가 있을까 싶게 시집살이를 사는 것을.
  천변에 앉아 빨래 주물러대는 여인들을 고용해 사는, 소위 방귀 깨나 뀌는 인물들로는, 첫째가 한약국집을 들 수 있을 터. 일찍이 결혼해 남편에게 두드려 맞기를 밥 먹기보다 더 자주 당하다가 남편은 그것도 모자라 시앗을 보고, 하나 있는 아들도 일찌감치 지긋지긋한 삶을 접어 혼자가 된 후 그길로 내빼 이 집의 안집 살이, 즉 대표 하녀로 취직해 죽기까지 함께 하기로 작정을 한 귀돌어멈이 고단한 머리를 뉘는 곳이다. 약국집 주인 내외는 여간만 하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안고 지내는 성질이지만, 새로 살러 들어온 만돌이네는 도무지 참아주지 못했다. 만돌 어멈은 사람이 그리 넉넉하고 수더분하고 얌전하고 일 하나 맵시 있게 야물딱진데, 아 그만 만돌 어멈의 부탁으로 함께 살러 들어온 만돌 아범이 술만 마시면 곧바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멍멍이가 되는 것은 봐주지를 못해 그만 내치고 말았다.
  또 먼 친척의 부탁으로, 사람의 새끼는 낳아서 서울로 보내랬다고 동네에선 똑똑하다고 소문 나 경기도 가평에서 애꾸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약국의 사환으로 취직한 창수는 서울살이 불과 몇 달 만에 아주 발랑 까진 도시내기가 되어버려 약국 주인 말씀 알기를 개떡으로 여겨 주인 영감 입에서 ‘당장 나가’라는 하명이 나오기 전에 자기 발로 때려치우고 잠깐 귀향했다가 다시 돌아와 종로의 당구장에 게임 보이로 활약한다. 그래도 약국의 노부부가 자식농사를 잘 짓고 마음도 넉넉하여 동경의 유명 사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아들이 결혼하기도 전에 일 년 동안 이화 나온 지금의 며느리와 자유연애를 하는 것에도 아무런 까탈도 하지 않았으며, 아들도 부모를 닮아서 그런지 결혼하고 삼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에 꼭 한 번씩 아내와 어깨를 나란히 천변을 산보하고는 하는 거였다.
  또 한 명의 문제적 인간이 ‘민주사’다. 돈푼깨나 있는 양반으로 아내와 아들아이 하나와 편안한 가정을 꾸렸음에도 관철동에 집을 하나 얻어 첩을 두었으니 그건 당시만 해도 이 정도는 해야 그래도 장안에서 행세한다고 믿었던 까닭이었다. 이 양반이 올해 천명을 아는 나이, 첩 안성댁은 딱 절반인 스물다섯. 그래 머리털에 희끗희끗, 흰 털이 자꾸 느는 것이 불만이긴 하나 세상에 어느 장사가 있어서 세월을 거스르나. 이 양반의 진짜 문제는, 국회의원이 아니고 당시 식민지 치하라서 경성부, 부회의원이 돼보고자 출마했다가 수천원만 쓰고 장렬하게 준우승을 해서가 아니라, 관철동 안성댁이 일편단심 늙은 자기만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안성댁이 자기를 공깃돌 놀리듯 손 안에 쥐고 흔드는 걸 도무지 인식하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낮에 관철동 집에 대문을 열고, 중문까지 열고 쑥 들어가 보니, 안성댁과 대학의 교복을 입은 청년 하나가 마루에서 전축을 틀어놓은 채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옆으로 자빠져 있는 거였다. 비록 옷고름 하나, 단추 하나, 양말 한 짝 흐트러지지는 않았지만 남녀가 유별한데 훤한 대낮에 눈을 맞춘 상태에서 연놈이 자빠져 있다 함은 세상에서 둘 사이에 해볼 것은 이미 다 해봤다는 증거 아닌가 싶은데도, 안성댁이 동향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너나들이 했던 터라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 초대했다고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걸, 1930년대엔 너무나도 흔했던 방식으로 옆구리나 한 대 쥐어박지 못하고 아무소리도 못 한 채 그냥 발길을 돌려 집을 나선 순간, 청요리 배달 소년이 커다란 음식 상자를 들고 인사를 꾸벅 하고는 자신이 방금 나온 집으로 쏙 들어가는 것까지 목격하고도, 그냥 집으로 왔다는 거 아닌가. 이런 인간을 우리는 흔히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한다. 원래 이리 나사가 좀 빠진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더 높으니 뭐라 하기도 좀 그렇다.
  이외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해 다 소개하려면 내일 아침 해가 뜰 때야 마칠 수 있을 터이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딱 한 명,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개하고 독후감을 끝내겠다.
  청계천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의 목격자는 이발소에서 사환으로 일하는 소년 재봉이의 눈을 통해 언급이 되는데, 이발소에서 천 너머로 카페가 있으니 옥호를 ‘평화’라고 했다. 평화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급은 하나꼬. 얼굴도 예쁘고 나긋나긋하고, 알고 보면 마음씨도 옹골찬데다가 매운 마음도 있는 괜찮은 ‘젊은’과 ‘어린’ 사이의 아가씨. 그러나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꼬가 아니라 무뚝뚝하고, 못생기고, 늙은 여급인 ‘기미꼬’다. 이런 여급이 아직도 평화 카페에 있을 수 있는 건, 다른 건 몰라도 술 하나 장하게 마셔 이이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남자들이 여럿 마신 술보다 기미코가 목구멍으로 부은 술의 양이 더 많아 매상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해주니, 주인 입장에선 감히 기미코를 외모가 안 된다고 함부로 내칠 수 없는 일. 거기에다가 이를테면 웬만한 불량한 남자는 말도 못 붙일 만큼 협기俠氣도 대단한데다 천성이, 이거 정말인데, 천사다, 천사. 소설 속이니까 이런 사람을 볼 수 있지 실제의 삶에서는 도무지 찾을 도리가 없는 의리의 여걸.
  책의 주인공은 없다. 청계천변에 사는 무수한 소시민과 소자본가와 광교 다리 밑 깍쟁이들까지 눈에 띄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구태여 힘주어 찬양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조금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박태원의 시선. 글쎄, 앞에서 말했듯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박태원은 이 작품을 써서 모더니즘과 작별을 고하려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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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6-15 14: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박찬순이라는 작가의 <암스테르담 완행열차>라는 소설모음집에 보면 ˝성북동 230번지˝라는 단편이 들어있는데 이곳이 예전에 박태원이 살던 곳 주소래요. 박찬순 소설가가 박태원에 대한 오마주로 쓰게 된 소설이라고 하더군요.
박태원이 다른 소설가의 오마주 대상이 되는 매력이 무엇일까요.
저도 그때 박태원의 소설을 찾아읽어보는 대신 작가의 이력만 훑어보다가 봉준호 감독과의 관계를 알게 되는데서 그쳤지요.
구보는 박태원의 호. 이번 기회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부터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0-06-15 14:57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박찬순을 검색해봐야겠습니다.
후세 작가들은 주로 그의 초기작, 모더니즘을 지향하던 작품들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우리나라 근대 소설 가운데 괜찮은 작품이 생각보다 제법 있더라고요. 그간 건방지게 우리 근대 소설을 멀리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