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대산세계문학총서 59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지음, 유진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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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처음엔 당대의 자연주의자 에밀 졸라와 뜻을 합쳐 서민들의 생활상을 소설로 풀어갔다고 한다. 그러다 졸라와 문학적으로 결별하고 위대한 벨 에포크 시대를 맞아 본격적으로 세기말 적 경향의 작품을 썼다는데, <거꾸로>를 읽어보면 이런 작가가 어떻게 졸라와 한 그룹을 이룰 수 있었는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게다가 이 <거꾸로> 또는 <역로逆路 A rebours> (1884)를 기점으로 위스망스 특유의 데카당스 문학을 쓰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단번에 이렇게 돌변할 수 있었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학, 특히 소설은, 만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크게 나누어 졸라 식 소설과 위스망스 식 소설로 구분한다. 졸라는 자연주의-사실주의-현대적 리얼리즘의 길을 가고 위스망스는 데카당스-초현실주의-모더니즘을 향한다. 물론 세기 말 프랑스의 두 거장을 예로 했을 뿐 전 세계의 문단에도 비슷한 대표선수들은 있었겠고, 위의 분류는 거칠게 나누었을 뿐 사실은 훨씬 더 많은 장르로 확장 번식했을 터이다.
  위스망스의 <거꾸로> 속에는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두 가지가 확실하게 눈에 보인다. 하나는 세기말적 퇴폐주의, 혼란, 폐허, 염세, 기타 등등과, 다른 하나는 프랑스 문학 특유의 댄디즘, 즉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것이 많은지 과시하고 싶은 충동, 여기서 나오는 무수한 상징, 은유, 상상의 체화 같은 것. 역자 유진현은 작품 해설 첫머리에서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수의 독자들에게서 애독되는 소설을 ‘컬트 소설’이라” 부르는 것이 가능하며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거꾸로>가 이 호칭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작품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1884년에 출판했고, 글을 쓴 약 20년 후에 위스망스가 직접 쓴 ‘출간 20년 후에 붙인 서문’ 스무 페이지가 앞에 달려 있다. 서문은 처음에 조금 읽다가 말았다. 잘 나가다가 종교적 논의가 내 이해를 넘어설 만큼 깊어지는 바람에. 서문 뒤에는 또 ‘일러두기’ 열 쪽이 붙어 있다. 대강 눈으로만 읽고 드디어 본문 제 1장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일러두기’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일러두기’가 아니라 주인공 장 데 제쎙트 공公과 가문의 내력이 망라되어 있었으니.
  프랑스 귀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진짜 귀족하고 야매 귀족. 야매 귀족이라고 하는 건, 나폴레옹 1세 시절에 전투에서 한 번 공을 세우면 아무 특권도 없이 호칭만 남작, 두 번 세우면 자작, 뭐 이렇게 던져주던 것이고, 진짜 귀족이라면 대개의 경우 데 제쎙트 가문처럼 체격 좋은 군인이나 험상궂은 용병 출신으로 프랑스 땅에 들어와 큰 공을 세워 광활한 영지와 더불어 세금 등에 관한 무시무시한 특권과 함께 작위가 주어진 가문을 말한다. 데 제쎙트는 무려 앙리 3세 이전부터 봉토와 더불어 루릅스 성에서 기거하며 작위를 유지한 공작 가문이며 우리의 주인공 장 데 제쎙트는 이 가문의 마지막 남은 적장자다.
  그래 원래 덩치만 큰 군인이나 용병 출신이지만 누대를 걸쳐 최상의 교육과 예절, 호의호식으로 단련이 됐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귀족 가문이 그렇게 했듯 무려 2백 년 동안 혈통의 순수함을 간직하기 위해 남매간 혼인을 유지해, 강건했던 체력의 마지막 남은 활력까지 모두 소진해버려 19세기 말에 접어들어 드디어 최고 귀족의 특징인 나약하고 선병질적이고 가느다란 골격을 갖고 만다. 이게 우리의 주인공 장 데 제쎙트.
  예수회 신부들의 학교에 입학해, 이제 남은 거라곤 괜찮은 지능 말고는 없는 데 제쎙트는 딱 하나 라틴어에 관한 한 아주 빠른 속도로 통달을 하고, 나머지 과목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워낙 떠르르한 가문의 자제라 예수회 신부들은 고이 졸업을 시킨다. 열일곱 살에 아버지가 운명하고, 어머니는 깊은 병에 들어 루릅스 성의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제 스무 살이 되어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자격이 생기자 처음에는 최상위 귀족들의 사교계에 입문했다가 곧바로 환멸을 느낀다. 이어서 젊은 귀족 자제들과 어울려 오페레타, 경마, 도박에 심취한 일 년을 보낸 끝에 또 싫증을 느끼고 다시 문인, 자유사상가, 부르주아지 이론가, 자유주의자등과 교류하지만 이들의 본질이 열등하고 탐욕스럽고 후안무치한 청교도에 불과하다는 결론은 내린다.
  여기서 주목. 진짜로 문인, 화가, 자유사상가, 부르주아 등과 함께 어울려 소설가, 미술비평가 등으로 활약한 조리스-카를 위스망스가 정말 이 부류의 후안무치하고 탐욕스러운 본질을 느껴 그들과의 연대를 깨고 이 <거꾸로>를 썼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위스망스는 <거꾸로>의 ‘일러두기’ 장章을 통해 적어도 문학적으로는 졸라 일당들과 완벽한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들과의 교류를 끝으로 데 제쎙트는 인류에 대한 경멸의 단계로 접어들어 은둔지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여자라는 열정만이 이런 총체적 멸시에서 그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에서 숱한 여성편력의 단계로 접어든다. 그래서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결핵인지 매독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끝날 때까지 아리송한 질병과 기진맥진, 결국 껍데기만 남은 무성욕, 무기력의 상태. 때마침 자기 재산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니 그간 무분별한 사치와 지출과 방탕한 생활로 상속재산을 거의 탕진한 걸 알고 이제 마지막 남은 루릅스 성을 팔아 파리 근교 퐁트네 오 로즈 마을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저택으로 이주해 그곳에 칩거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일러두기’다.
  본문이 시작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데카당스 적인 세기말적 묘사와 일찍이 위스망스 이전엔 별로 읽어보지 못한 노골적 댄디즘, 즉 잘난 척의 향연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1장에서는 저택의 데코레이션과 ‘일시적으로 죽어버린 정력을 기리는 부고만찬’에 관해서이며, 2장부터 끝날 때까지는 과학의 세기로 불리는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대답게 “인간은 나름대로 자신이 믿는 신 못지않게 잘 창조했다.”는 신념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한 찬사가 등장한다. 물론 다분히 엽기적이다.
  3장에서는 라틴어와 라틴어 문학에 관한 다양한 관심을 표명하는데, 만토바의 백조라고 불리는 베르길리우스를 고대 로마가 배출한 가장 끔찍한 현학자, 지독한 3류 문사라고 비난하는 반면에 페트로니우스를 예리한 관찰자, 섬세한 분석가, 대단한 묘사가이며 로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뚝 떼어낸 사실주의자라고 상찬하기도 한다. 그의 라틴어 문학에 관한 조예는 로마 멸망 후 기독교에 의하여 라틴어가 변질, 왜곡되고 급기야 성경 말고는 아무데도 쓰이지 않을 때까지 설파를 하는데, 이 화려한 댄디즘이라니.
  많은 이들은 4장에서 나오는 거북이 등가죽의 세공하는 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데 제쎙트는 거북이 등을 황금박피로 감싸고 그 위에다가 보통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갖은 보석으로 꽃 그림 모자이크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예를 들어 잎사귀는 진하고 선명한 녹색 보석으로 금록수 감람석, 녹색 감람석으로, 잎새는 검붉은 색의 철반 석류석, 우랄산 석류석, 다발 하부 원경의 꽃은 청회색 나는 구리성분 함유물이 침투한 서양옥, 중심부의 꽃은 실론 산 마노, 황록옥, 사피린 등등. 그런데 정말 육지 거북 한 마리를 사서 등껍질에 황금 바탕의 보석 모자이크를 만들었을까?
  내 생각은, 이 책은 전적으로 위스망스의 뇌 속의 화학적 반응의 결과로 나온 추출물이라서 표현된 내용을 전적으로 믿을 필요가 없다, 가장 화려한 댄디즘 적 표현인 라틴 문학에 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육지 거북 등껍질의 모자이크도 당연히 퐁트네 저택에 자진 유배된 데 제쎙트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읽었다. 심지어 데 제쎙트가 디킨스를 읽은 다음에 런던에 가보기 위해 파리 역까지 가서 영국식 식당에 들러 마치 런던을 경험해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배를 타러 가지 않고 다시 집으로 향한 것까지 모두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한다.
  이것들, 거북이 등껍질, 모로의 회화작품, 고야의 엽기 무궁한 판화, 판지공장 정원에서 만난 미소년을 상대로 벌인 범죄 실험 등이 데 제쎙트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라고 읽는 독자들은 이 작품 <거꾸로>를 가장 대표적인 컬트 소설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들의 의견 역시 존중한다.
  하지만 굳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묘사한 모든 것이 정말로 일어났던 것을 써놓은 것이라 믿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작가는 주인공 데 제쎙트를 만들었을 뿐, 그가 정말로 라틴어 문학에 통달을 한 것인지, 거북이 등에다 거금을 들여 장난을 했는지, 귀스타브 모로의 살로메 작품 두 점을 정말 가지고 있는지, 고야의 판화 초본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때는 세기말. 거기다 벨 에포크 시대. 세상에 상상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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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05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도전하기 쉽지 않아보여서 책장에서만 잠자고 있는데 ㅎㅎㅎ
줄거리 죽 읽어나가면서 음 이 정도면 재미나겠는데? 했는데 ‘-여기까지가 ‘일러두기’다.‘ ㅋㅋㅋㅋㅋㅋㅋ
졸라와 대척점에 있는 위스망스라니, 꼭 읽어보겠습니당. 심지어 별 다섯 개나 주셨네요!

Falstaff 2020-06-06 14:10   좋아요 0 | URL
책장에 있는 거라면 읽어보셔야지요.
ㅋㅋㅋㅋ 진짜로, 취향에 맞는 소수들을 위한 만찬이라 하겠더라고요. 저한테는 아주 딱이었는데 다른 분께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그리 좋은 독자서평을 얻지는 못했더라고요.
다 복불복이지요 뭐. ^^;;